“많은 농민들이 저처럼 행복해졌으면 좋겠어요.”

[행복을 만드는 농민⑤] 충남 논산 더불어농원의 토종지킴이 권태옥씨

  • 입력 2016.05.20 10:28
  • 수정 2016.05.20 10:37
  • 기자명 박경철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농정신문 박경철 기자]

WTO, FTA 등 개방농정으로 인해 암울한 먹구름이 드리워진 농업·농촌의 현실 속에서 대안 경제와 패러다임의 전환, 새로운 철학 등의 해법이 절실하다. ‘희망’을 만들기 위해 애쓰는 농민을 찾아 농업·농촌이 행복해지기 위한 대안을 모색하려 한다. 매달 1회씩 게재할 예정이다. 편집자 주

▲ 친환경자연농법으로 농사를 짓는 권태옥씨가 지난 17일 자신의 하우스에서 갓 수확한 딸기를 기자에게 “맛보라”고 건네며 환하게 웃고 있다. 한승호 기자

벌은 물론이요 참새와 작은 새들이 수시로 날아들고, 개구리에 뱀까지. 생태계의 보고가 된 논과 밭. 충남 논산 상월면에서 권태옥(52)씨가 친환경자연농법으로 일궈온 더불어농원의 모습이다.

지난 17일 만난 권씨는 논과 밭을 돌며 쉴 새 없이 목소리를 높여 설명하면서도 연신 웃음을 잃지 않았다. “내가 농사짓는 걸 좋아해서 농사 얘기하면 목소리 톤도 올라가고 말도 빨라져요. 좋아하는 것 얘기하면 다들 그러지 않나요. 이해해주세요(웃음).” 그의 모습에서 토종작물과 친환경자연농법, 농업에 대한 애정, 그리고 그로 인한 행복감이 온전히 전해졌다.

논둑에 심은 콩과식물인 헤오르비치는 보라색 꽃을 피워 벌들을 불렀고, 여름이면 생명을 다해 자연스럽게 논둑을 덮어 잡초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게다가 자연거름도 된다. 토종벼 농사로 생산한 쌀은 이름을 ‘동그라미’로 정했다. 자연순환의 중요성을 담은 작명이다. “다른 논하고는 다르죠. 헤오르비치도 있고 풀도 있죠. 제초제 등 농약을 뿌리면 가장 먼저 농민이 그걸 먹고, 땅도 썩잖아요. 무엇보다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땅인데. 사람들이 바보같이 산다고 뭐라고 하죠.”

13년 전 주변의 10개 농가와 시작한 친환경자연농법. 주변 농가들은 돈도 안 되는 데다 절차도 복잡해 포기했지만 그는 주변의 만류에도 고집스럽게 지켜왔다. 그의 든든한 우군은 농사를 함께 짓고 있는 남편 신두철(52)씨다. 남편이 있어 친환경자연농법이나 토종종자모임에도 나가고 SNS, 관련 다큐멘터리까지 찾아보며 용기와 열정을 갖고 집중해 토종작물 도서관까지 꿈꿀 수 있게 된 것이다.

그가 작업장이라고 부르는 하우스 앞엔 흑갱, 자치나, 버들벼, 천주도, 불도, 홍색나, 갈색미, 붉은차나락, 대궐도, 다마금, 충북흑미, 금도, 궐나도, 자광도, 올벼, 북흑조, 대관도 등 토종벼 17종을 전시하기 위한 논이 있고 그 앞으로는 직접 만든 거름더미가 작은 언덕처럼 쌓여있다. 먹다 남은 음식물과 팔고 남은 농산물도 비료로 만들어 10개의 드럼통에 담았다.

핵심은 작업장이다. 그가 소개한 2동의 하우스엔 200여 종의 토종작물을 혼작해 토종박물관이 따로 없었다. 그의 친환경자연농법 예찬이 이어졌다. “다 토종작물이죠. 곰취, 시금치 등을 섞어서 심고 부추만 있는 게 아니라 완두콩도 같이 있고, 감자 사이에 고추를 심고 그러면 서로 도와주죠. 가족이 있으면 더 좋은 것처럼. 진딧물이 끼는 아이도 있는데 옆에 아이들을 도와주는 것이죠. 잡초도 있어요. 농작물만 있으면 벌레가 농작물만 먹는데 풀이 있으면 풀도 먹어서 좋죠.”

권 씨가 “딸기가 언제 나오는 작물인지 아느냐”고 다짜고짜 묻는다. “겨울”이라고 답했지만 “초등학생 수준”이라며 웃음기 섞인 타박이 돌아왔다. 제철농산물을 키우기 위해 주력해왔다는 권 씨가 딸기는 4~5월이 제철이라며 60년을 이어온 토종딸기를 따서 건넸다. 친환경자연농법에 정성까지 들어간 만큼 맛 또한 일품이었다.

“무거운 흙을 머리에 이고 싹이 나는 게 신기하지 않냐”며 “새싹 날 때 농사짓는 기쁨이 최고가 된다”는 권 씨. 그가 자신이 행복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털어놨다. “안중근 의사가 독립운동을 왜 했겠어요. 그냥 살면 되는데 자신의 목숨까지 바쳐가면서. 나라를 위해서잖아요. 토종종자도 내가 안 심으면 없어진다고 생각해요. 누가 시켜서 하면 못하는데 내가 좋아서 하니까 하죠. 그러니까 행복하고요(웃음).”

토종작물에 대한 애착을 가져온 만큼 GMO에 대한 우려가 크다는 권 씨. “GMO가 들어오면 토종도 끝이죠. 미국, 그 큰 나라에서도 없애고 나서 20~30년 뒤에 다시 나왔다고 하잖아요. 나는 안 먹을 거다라고 생각하는 건 위험한 발상이에요. 정보도 다 차단돼 있는데 어떡해서든 더 알아보려고 노력해야죠.”

그는 끝으로 “언젠가 한 기자가 ‘전 세계에서 행복한 사람 1% 안에 든다’고 자신을 소개한 말이 참 좋았다”며 농민들에게 당부의 말을 남겼다. “사명감이라고 하면 거창하지만 토종종자를 지킨다는 작은 사명감이 있어요. 저도 친환경자연농법을 하면서 생각도 바뀌고 행동도 바뀌었거든요. 작물에도 사랑한다고 할 수 있을 정도죠. 농사를 지으면서 힘든 것들이 치료된 거에요. 많은 농민들이 저처럼 행복해졌으면 좋겠어요.”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