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홍기원 기자]여성농민이 지역에서 농업주체로 자리잡으려면 일단 경제적 기반을 갖춰야 한다. 그러나 여성농민의 경제적 지위와 여건은 허약하다.정부는 2003년부터 5년마다 여성농업인 실태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최근 진행된 2013년 조사 결과를 보면 여성농민의 경제적 선택권이 매우 제한적임을 엿볼 수 있다. 2013년 여성농민이 본인 명의의 농지를 소유한 비율은 26.8%에 불과했다. 그나마 농지를 소유한 여성농민의 62%는 소유면적 0.5ha 미만이었다. 실태조사를 진행한 정은미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해 연구보고서에서 “연령이 높은수록 자신의 지위를 경영주로 인식하는 비율이 높지만 40~50대에서도 여전히 무급 가족종사자로 인식하는 비율이
[한국농정신문 홍기원 기자]여성농민을 농업의 주체로 육성해야 한다는 공감대는 넓어지고 있지만 구체적인 정책집행은 따라가지 못하는 모습이다. 정책 수립을 넘어 실효를 거둘 방안과 구체적인 정책 집행의 방법을 모색해야할 시점이다.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1월 제4차 여성농업인 육성 기본계획을 공개했다. 4차 기본계획은 양성평등, 여성농업인 직업역량 강화, 여성농업인 지역역할 확대, 복지·문화서비스 제고, 다양한 농촌여성 주체 양성 등 5대 전략을 골자로 하고 있다.이어 3월엔 농어업 경영체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을 개정해 여성농민을 농업경영의 보조자가 아닌 공동경영주로 인정하는 근거를 마련했다. 이를 통해 9월 기준 1만1,446명이 농업경영체 DB에 공동경영주로 등록했다. 이들은
갓 찌운 햅쌀로 밥을 해 먹는다. 뭐니 뭐니 해도 햅쌀밥은 요맘때가 제일 맛나다. 밥솥에서 나는 냄새부터 다르다. 이때쯤은 따로 반찬이 필요 없다. 밥맛만으로도 밥 한 그릇은 뚝딱이다.나는 이때쯤에는 밥할 때는 잡곡도 섞지 않는다. 햅쌀밥 그대로의 맛을 느끼고파서다. 늘 쌀밥만 해 달라는 막내는 햅쌀 밥맛에 자기 그릇으로 두 그릇이나 비운다. 이모작도 이렇게 맛있는데 하물며 일모작이야 말한들 무엇 하리.어릴 때 나는 아버지의 밥그릇만 보면서 밥을 먹었다. 친정어머니께서는 밥을 하실 때 많은 식구들을 대비해 항상 밑에는 미리 쪄둔 보리쌀을 안치고 쌀은 한 움큼으로 그 위에 올리셨다. 그래서 밥을 뜰 때 그 위의 쌀밥은 거의 아버지의 밥그릇에 담긴다. 우리 집에 유일하게 쌀이 많이 섞인 아버지의
우리 사회에서 여성들의 지위가 많이 향상 됐다고 하나 아직도 부족하다. 특히 여성농민들의 지위는 ‘부족’을 넘어 ‘취약’하다 할 것이다. 그래서 여성농민들은 지위를 보장받기위해 오랫동안 농가경영체 공동경영주 등록, 여성농민 전담 부서 설치를 대표적으로 주장했다. 물론 좀 더 구체적이고 다양한 정책적 요구들도 있다.이 중 농가경영체 공동경영주 등록이 올해부터 시행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좀 더디다. 여성농민의 공동경영주 등록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데, ‘배우자의 동의’가 가장 큰 장애물이 되고 있다. 남편 앞으로 하면 되는데 굳이 공동으로 할 필요가 있냐는 남성주의적 시각이 원인이다. 공동경영주 등록을 한다고 해서 특별한 혜택이 주어지는 것도 아닌 상황에 확산에 속도가 붙을지 예측하기 어렵다.
[한국농정신문 김은경 기자]영농비도 못 건지는 농촌현실에서 여성농민들은 어떻게 살림하며 살고 있을까? 여성농민들에게 경제란 곧 농가부채와 연결돼 있다. A씨(47)는 올해 농사경력 20년에 아이 셋을 둔 여성농민이다. 지난 1일 강원도 H군에 사는 그녀를 조르다시피 만났다. 먹고 사는 이야기를 해줄, 더군다나 살림살이를 이야기해줄 여성농민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A씨는 전날 밤 기자와의 통화 이후 1년간의 대차대조표를 정리해보며 심란했다고 했다.처음 인터뷰 섭외 시 “저희는 다른 집보다 빚이 별로 없어서요”라고 해서 사정이 나을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대차대조표를 보니 농촌 실정을 모르는 생각이었다. A씨의 1년 총 농가소득은 5,000만원, 지출이 7,000만원으로
[한국농정신문 김은경 기자] 1년간 일해도 영농비도 못 건질 때가 많은 농민들. 특히 가사노동과 농사를 병행하는 여성농민들은 경제적으로나 경제적 지위면에서도 한층 더 열악하다. 손에 돈을 좀 쥘라치면 영농비, 농협 빚이자, 교육비, 생활비로 줄줄이 다 들어가고 수중에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다. 그렇게 1년을 산다. 사는 게 더 힘들어지고 있다.경제적 권리 혹은 경제적 지위란 곧 인간다운 삶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다. ‘여성농민들은 왜 일한 만큼 경제적 권리를 갖지 못할까?’ 라는 질문에서 기획을 시작했지만 농가부채가 농가소득을 잡아먹는 작금의 현실에서는 요원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근본적인 농업의 환경이 변화되지 않고서는 여성농민들의 경제적 권리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할
[한국농정신문 심증식 편집국장] 언니네텃밭 봉강공동체 생산자로 `현역 활동' 세딸 합동결혼식 축의금, 심장병 어린이 치료비로 보태들판의 벼는 누렇게 익어 고개를 숙이고 있다. 이제 막 타작이 시작된 듯 이따금씩 벼베는 광경이 눈에 띈다. 집집마다 울타리 삼은 감나무에 붉게 익은 감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모습은 여기가 곶감의 고장 상주라는 것을 강조하는 듯했다.경북 상주시 외서면 봉강리 문달림 여성농민을 찾아 왔다. 우리나이로 79세. 문달림 여성농민은 어머니의 따스한 마음으로 살아오신 분이다. 농사짓고, 애들 키우고, 외조하고, 여기에 농민운동까지. 그야말로 삶 자체가 운동의 표상이다. 자신을 낮추는 겸손은 한 마디 한 마디 조심스레 하는 말투에까지
요즘 언론을 접하다 보니 어릴 적 생각이 절로 난다. 마을과 한참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외딴집 왠지 모르지만 나에겐 늘 무서움의 존재였다. 어쩌다 집으로 쌀을 얻으러 오곤 했던 당골래와 눈이라도 마주치게 될까봐 전전긍긍했었다. 아마 호환마마보다 현실에서 부딪친 무서움의 존재였지 않았을까? 내 또래의 여자아이는 학교도 다니지 않았었다. 언제부턴가 그 외딴집에서 살던 사람들은 다시는 우리 집에서든 우리 동네에서든 쌀을 얻지 못하게 되었고 직접 농사를 지으며 살던 것 같았지만 어느 순간 어디론가 이사를 가게 됐고 아무도 살지 않는 집은 허물어졌으며 내 기억에서조차 슬그머니 사라지게 됐다.쌀을 주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고 우리 집뿐만 아니라 온 동네에서 쌀을 얻을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해마다 정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지난 26일 충북 괴산군 칠성면 두천리의 비탈진 밭에서 한 여성농민이 광목천 위에 잘 말린 들깨를 가지런히 놓고 연신 도리깨질을 하며 들깨를 털고 있다.
지금 농촌은 올 한해 땀흘려 일했던 농작물을 수확해서 농민들의 마음이 푸근해야 되는데 올해는 마냥 기쁘지가 않다.한여름 찌는 듯한 폭염과 가뭄, 수확기 잦은 비와 높은 기온으로 가격폭락에 벼 베기도 늦어져 농민들의 애를 태우고 있다.내가 살고 있는 합천도 하루빨리 타작을 해서 볏짚을 거두고 양파를 심어야 하는데 예년 같으면 벌써 비워졌어야 할 논들이 잦은 비에 아예 타작도 못한 논들이 애타게 농민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일부지역은 잦은 비와 고온으로 서 있는 벼에서 싹이 트는 수발아 현상으로 타작을 하더라도 미질이 나빠 RPC에서 아예 받아주지도 않는다고 한다.여기에 40년 동안이나 농정에 몸담았다며 소위 대통령의 총애를 받는다는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조선비즈
[한국농정신문 김은경 기자]백남기투쟁본부 대표단이 영장집행기한 36시간을 앞두고 “온 몸으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을 맨 앞에서 지킬 것”이라고 결의한 후 대표자 전원 삭발 후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대표단은 “경찰의 손에 돌아가신 아버님의 시신에 경찰의 손이 닿게 하고 싶지 않다”는 유가족의 호소를 받들어 백남기 농민을 반드시 지켜내겠다는 투쟁본부의 의지를 박근혜 정권과 경찰당국에 확고히 표명한 것이다.백남기투쟁본부는 24일 오전 11시 30분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앞에서 ‘부검 저지를 위한 36시간 집중행동 선포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이 밝혔다.백남기투쟁본부와 연대단체는 36시간 고인의 시신을 지킬 것을 결의한 후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 조덕희 전국노점상연합회 의장, 최종진 민주
동네 앞들이 황금색으로 변해간다. 마늘을 캐내고 심은 이모작 나락이지만 나락은 충실하게 익고 있다. 참 보기가 좋다. 누런 황금색의 들판은 먹는 쌀로서의 역할이 크겠지만 이런 정서적인 영향도 크다. 이제 이 들판은 오늘 내일 정도면 수확이 끝나고 재빠르게 또 다른 색깔로 변신을 할 것이다. 벌써 일손 빠른 집은 나락을 베어내고 검은색의 거름을 내고 있다. 마늘을 심기 위해서다.우리 집도 오늘 나락을 벤다. 아직 아침 안개로 나락이 젖어 있어 콤바인은 논둑에서 기다린다. 그 사이 마늘 하우스에서는 남편은 콤프레셔로 마늘에 바람을 집어넣어 한쪽, 한쪽 분리가 쉽도록 한다. 나는 재빠르게 그 마늘을 까고. 예전에는 생으로 마늘씨를 까려면 손이 너무 아팠다. 그래서 동원된 것이 화투장, 작은 스푼 등 다양하
[한국농정신문 김은경 기자] 고 백남기 농민에 대한 부검 영장 집행만료시한(25일)이 코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시신탈취를 막기 위한 시민들의 연대발길에 총력이 모아지고 있다.지난 18일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앞에서 열린 ‘백남기와 함께 240시간 집중행동 기자회견’에서 시민지킴이단은 “국민 여러분, 모여 주십시오. 이 정권의 폭력에 맞서, 끝까지 고인을 지켜냅시다”며 “하루라도 좋고, 몇 시간이라도 좋고, 단 한 시간이라도 좋습니다. 이 정권의 잔인한 패륜과 몰염치를 종식시킵시다. 무너진 민주주의와 정의를 회복합시다”라고 간곡히 호소했다.경찰의 부검영장 강제 집행에 맞서 구성된 시민지킴이단 ‘백남기와 함께’는 지난 15일 23시 59분부터 오는 25일 23시 59분까지
[한국농정신문 신수미 기자] 순창 농민들이 백남기 농민 국가폭력 사태와 민중총궐기를 알리는 활동에 나섰다.순창지역 9개 농민단체 회원들은 지난 13일부터 16일까지 4일간 열린 순창장류축제에서 ‘백남기 농민 국가폭력 특별검사제 실시 서명운동’을 벌였다. 더불어 11월 12일 민중총궐기에 적극 참여해줄 것을 호소했다.이들은 앞서 11월에 개최되는 농업인의 날 행사 준비와 함께 공동행동을 하기로 결의한 바 있다. 백남기 농민 국가폭력과 쌀값 폭락 등 벼랑 끝에 선 농민들의 목소리를 모아보자는 것이다.이 활동을 처음 제안하고 앞서서 추진한 전농 순창군농민회 구준회 사무국장은 “순창뿐만 아니라 축제를 찾은 인근 지역 관광객들까지 서명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공동행동에 나
[한국농정신문 김은경 기자] “이제 일주일 남았습니다. 국민 여러분, 모여 주십시오. 이 정권의 폭력에 맞서, 끝까지 고인을 지켜냅시다. 하루라도 좋고, 몇 시간이라도 좋고, 단 한 시간이라도 좋습니다. 이 정권의 잔인한 패륜과 몰염치를 종식시킵시다. 무너진 민주주의와 정의를 회복합시다”18일 오후 1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앞에서 열린 백남기 농민을 지키기 위한 시민지킴이단 ‘백남기와 함께'는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이 간곡히 호소했다. 고 백남기 농민에 대한 부검 영장 집행만료시한(25일)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와 더 이상은 두고 볼수 없다는 심경으로 모인 국민들이 국민들에게 호소하는 말이다.경찰의 부검영장 강제 집행에 맞서 구성된 시민지킴이단 ‘백남기와
[한국농정신문 최용탁 소설가]남북한 정상이 평양에서 회담을 갖는다는 소식을 남북이 동시에 발표한 것은 2000년 4월 10일이었다. 회담 날짜는 두 달쯤 후인 6월 12일부터 사흘간이었다. 분단 이후 처음인 정상회담에 대해 국민들은 당연히 환영했지만 그 동안 어그러지기 일쑤였던 남북관계로 인해 성사되기까지 반신반의하는 분위기 또한 사실이었다.실제로 예정보다 하루가 늦어진 6월 13일, 평양 순안공항에 내린 김대중 대통령과 영접 나온 김정일 위원장이 악수와 포옹을 나누는 장면은 그야말로 감격적이었다. 반세기만에 이루어진 정상회담은 사흘간 이어졌고 역사적인 6.15선언이 발표되었다. 선언의 주요 4개 기본조항은 통일로 가는 징검다리로서 남북 민중의 염원이었다. 1. 남과
“휴~우” “지진난줄 알겄네. 뭔 놈의 한숨을 그리 크게 쉰단가” 두 분이서 주거니 받거니 한숨들을 쉬신다. 길모퉁이 나락을 널고 있다. “나락도 많이 나왔는디 왜 이리 한숨이 나올까잉” “긍게요. 풍년이믄 메구메고 춤한판 춰야하는 것인디 하도 기가 막혀 말은 안 나오고 한숨만 나오네 그려” “영감 먼저 보내놓고 요놈의 쌀농사 짓느라고 얼마나 고생했는디….” 몇 년 만에 나락을 말리려고 펼쳐놓으니 쥐새끼들이 구멍을 사방 군데 내놔서 하루온종일 바느질 하느라 눈이 시큼거리고 눈물이 난다며 코끝을 훔치신다.심어만 놓으면 저절로 큰다고 누가 말을 만들었을까? 올 여름 가뭄에 논이 마를까 싶어 동네 청년 막걸리 받아주고 양수기로 물을 퍼냈던 일, 물 관리 제대로 안 돼 피밭이 돼버린걸 여름내 뽑아내던 일,
[한국농정신문 한명철 기자]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는 ‘2016 곡성통일한마당’이 지난달 29일 저녁 6시 전남 곡성군 레저문화센터 야외무대에서 개최됐다. 올해로 아홉 번째를 맞이하는 곡성통일한마당은 곡성민주사회단체협의회(상임대표 안창순, 민사협)가 주관하는 대표적인 행사다.이번 행사는 안창순 대표의 개회사를 시작으로 여성농민 노래패 청보리사랑의 노래공연과 공립형 대안학교인 한울고 학생들의 페이스페인팅, 지역민과 학생들의 춤과 노래, 예술공연 등이 펼쳐졌다. 특히 평화와 통일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가족과 함께 풍등 날리기와 참가자들 모두 서로 손을 잡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 부르기는 곡성통일한마당에서 가장 인기있는 프로그램이었다. 무엇보다도 올해는 사드배치 문제로 남북간의 첨예한 갈등과
[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8일 오후 3시 서울 대학로 이화사거리 앞에서 고(故) 백남기 농민의 목숨을 앗아간 국가폭력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내용으로 ‘백남기 농민 추모대회’가 열렸다. 이날 집회는 ‘백남기 농민 국가폭력,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및 살인정권 규탄 백남기투쟁본부’에서 주최했다. 이날 집회엔 주최 측 추산 3,000여 명(경찰 추산 2,000여 명)이 모였다.추모대회의 첫 번째 발언은 천주교 전주교구 김회인 신부가 했다. 김 신부는 “국가에 대해 그 분(백남기 농민)을 물대포로 죽일 권리를 그 누구도 내어준 적 없다. 그럼에도 백남기 어르신은 국가가 물대포로 죽였다. 그를 죽인 물대포는 없어져야 한다. 뿐만 아니라 ‘불법 폭력시위는 엄단하세요’ 한 마디 남기고 외국으로 간 대통
오늘도 태풍 영향으로 비는 하염없이 내리고 있습니다. 이 가을 잦은 비에 추석대비용으로 우사를 치웠건만 얼마 지나지 않아 우사는 또 죽탕입니다. 어린 송아지들이 있어 맘이 많이 안 좋습니다. 남편에게 우사를 치우자고 닦달하지만 소똥이 퇴비장을 가득 채워 나갈 곳이 없다 하네요. 마늘 논에 이 퇴비들이 나가야 할텐데…. 소밥을 주고 마늘 하우스로 가니 낡은 하우스 비닐이 찢어져 군데군데 비가 샙니다. 응급처방을 하고 남편은 또 늦었다며 내달립니다. 서울행입니다.백남기 어르신, 저는 아직도 조문을 다녀오지 못했습니다. 이 말을 쓰고 나니 눈물이 왈칵 쏟아지네요. 다치신 이후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병원 앞을 지켰고, 지금은 또 장례식장 앞에서 어르신의 온전한 영면을 위해 애쓰고 있는지. 연일 부검 영장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