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난관에 봉착한 여성농민들의 생활

“경제권 가지면 뭐하나? 쓸 돈이 없는데”
영농·가사노동에 시급알바까지 이중삼중 노동

  • 입력 2016.11.04 13:16
  • 수정 2016.11.04 13:42
  • 기자명 김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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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김은경 기자]

영농비도 못 건지는 농촌현실에서 여성농민들은 어떻게 살림하며 살고 있을까? 여성농민들에게 경제란 곧 농가부채와 연결돼 있다. A씨(47)는 올해 농사경력 20년에 아이 셋을 둔 여성농민이다. 지난 1일 강원도 H군에 사는 그녀를 조르다시피 만났다. 먹고 사는 이야기를 해줄, 더군다나 살림살이를 이야기해줄 여성농민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A씨는 전날 밤 기자와의 통화 이후 1년간의 대차대조표를 정리해보며 심란했다고 했다.

처음 인터뷰 섭외 시 “저희는 다른 집보다 빚이 별로 없어서요”라고 해서 사정이 나을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대차대조표를 보니 농촌 실정을 모르는 생각이었다.

강원도 H군에 사는 여성농민 A씨네 1년 대차대조표. 총 농가소득보다 지출이 약 2,000만원 가량 높게 나타난다. 남편이 번 농외소득 2,000만원이 없으면 빚을 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여성농민들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시급아르바이트 등 이중삼중의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A씨의 1년 총 농가소득은 5,000만원, 지출이 7,000만원으로 소득보다 2,000만원 더 높다. 몇 년째 상환하지 못한 고정 부채는 4,000만원. 남편이 농외소득으로 번 2,000여만원이 없으면 계속 빚을 질 수밖에 없는 구조에 놓여 있다. 그녀 말대로 딱 한해 벌어 한해 겨우 먹고 사는 것. 살림에 대해 물어볼 것이 없었다. 월 75만원의 생활비는 전기세, 통신비 등 각종 공과금이 전부다. 어디에도 자신을 위한 지출도 없고, 빚을 안 만드는 게 최종 목표다.

20년 전, 처음 결혼할 당시엔 빚이 1억 6,000만원이었다. 대부분이 영농 빚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때가 좋았다는 그녀는 “어쨌든 죽어라 일하면 수입이 어느 정도 남아 빚을 갚기도 했다”며 “최근 5~6년에는 수입이 없어 거의 꼴아박는다”고 말했다. 빚을 없애기 위해 무조건 안 쓸 수밖에 없었다는 그녀에게 경제생활 내지는 경제적 지위를 말하기조차 어불성설이었다. 영농수입이 보장되지 않으니 허리띠를 졸라맬 수 없을 때까지 졸라맸다. 그래서 빚을 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보기로 한 것.

이에 손이 많이 가는 농사를 다 정리하고 할 수 있는 만큼 농사를 지었다. A씨는 “부부가 하는 농사량 중에선 저희가 출하량이 가장 많다”며 “거의 극한까지 농사를 짓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그녀의 말대로 ‘빚갚고’ ‘살았고’다. 그래도 빚이 있다. 1년 중 가장 힘들 때는 4~6월. 생활비가 바닥을 치는 시기라고 한다.

특히 “다른 건 괜찮은데, 올 봄에 아이들 학교공과금이 못 빠져나가 되게 민망했다”며 “스쿨뱅킹이라 문자로 바로 ‘잔액을 확인해주세요’라고 통보가 오니까. 어쩔 수 없이 몇 백만원을 빌려 통장에 넣기도 했다”며 말끝을 흐렸다.

채소가 출하되기 전인 7월에 농협에 출하선금을 신청하는데, A씨네는 최대 1,000만원 빚을 낸다. 하지만 다른 농가의 경우엔 3,000만원인 경우가 허다하다. 그 출하선금을 못 갚아 빚이 산더미처럼 불어나는 것. 그래서 경제권을 안 갖고 싶다는 여성농민들이 많다고 했다. 그녀도 올 3월부터 시행한 공동경영주등록은 일찌감치 했지만 대출을 받는 것에 대해선 고개를 저었다. 한 예로 “지난번에 (여성농민들에게) 조합원이 돼서 뭐가 좋냐고 물으니, 누군가 내 이름으로 빚이 많아진다며 남편 이름으로 다 빚내고 나머진 내 이름으로 빚지는 거라고 했다”며 심각한 우려감을 표시하면서 “또 경제권을 가지면 뭐해요? 쓸 돈이 없는데…”하며 말끝을 흐렸다.

"빚이 늘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위안을 삼는 여성농민에게 본인을 위한 지출은 생각지도 못할 일이었다. 강원도의 한 여성농민이 하우스의 작물을 살펴보고 있다. 한승호 기자

A씨는 이렇게 영농수입만으로는 생활이 어려워진 이웃 여성농민들은 학교 급식소, 청소, 농협의 가공·유통분야에서 일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취업이라고도 할 수 없는 시급제아르바이트로 한 달 70~80만원을 번다. A씨는 “(농가부채에 허덕이는 여성농민들이) 그렇게 하지 않으면 현금을 만지기가 힘들다”면서 “집에 와선 영농부담과 가사노동부담까지 더 해진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또 다른 취업전선에 뛰어든 현실이 이해되면서도 안타깝다”고 전했다.

인터뷰 말미에서야 자신을 위해 사용하는 돈이 얼마나 되냐고 묻는 질문에 그녀는 “올해 처음 바우처카드(10만원)를 받아서 ‘이건 꼭 나를 위해 쓸 거야’ 했는데, 결국 딸이 파마하는데 바우처카드를 줬다”며 웃었다. 또 “내가 나를 위한 일에 지출했을 때 굉장히 망설여지는 게 있다”며 “형식적일 수 있지만 모든 명의가 남편으로 돼 있기 때문에 모든 경제활동이 남편에 종속돼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도 현실적으로 위축감이 드는 한 요인으로 꼽았다.

빚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여성농민들의 일상을 엿보며, 빚을 늘리지 않기 위해서든, 당장의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든 여성농민들은 이중삼중의 강도 높은 노동에 시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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