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당골래 추억

  • 입력 2016.10.29 11:46
  • 수정 2016.10.29 11:50
  • 기자명 심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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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문희 (전남 구례군 마산면)

요즘 언론을 접하다 보니 어릴 적 생각이 절로 난다. 마을과 한참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외딴집 왠지 모르지만 나에겐 늘 무서움의 존재였다. 어쩌다 집으로 쌀을 얻으러 오곤 했던 당골래와 눈이라도 마주치게 될까봐 전전긍긍했었다. 아마 호환마마보다 현실에서 부딪친 무서움의 존재였지 않았을까? 내 또래의 여자아이는 학교도 다니지 않았었다. 언제부턴가 그 외딴집에서 살던 사람들은 다시는 우리 집에서든 우리 동네에서든 쌀을 얻지 못하게 되었고 직접 농사를 지으며 살던 것 같았지만 어느 순간 어디론가 이사를 가게 됐고 아무도 살지 않는 집은 허물어졌으며 내 기억에서조차 슬그머니 사라지게 됐다.

쌀을 주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고 우리 집뿐만 아니라 온 동네에서 쌀을 얻을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해마다 정월이면 온 동네의 1년 운세를 봐주고 정월엔 불을 조심하고 여름은 물을 조심하라는 하나마나한 운세를 시작으로 집집마다 돌아가며 액을 푸는 굿을 하는 모습이 점점 없어지기 시작하며 그 당골래의 신기도 차츰 신뢰를 잃어버린 것이었을까? 무엇이 그녀가 야반도주하듯 떠나게 된 것일까? 나이 먹어 오만가지의 상상과 함께 떠오르는 그녀의 모습이 새삼스럽기만 하다.

하늘이 절반의 농사를 짓는다는 말이 있다. 늘 풍년이어서 걱정할 것이 없으면 좋으련만 흉년에 보낼 겨울을 생각하면 그 결과물을 어떻게라도 바꿔보고 싶은 마음이 인지상정일 것이다. 가뭄이든 긴 장마에 태풍이든 자연의 현상에 속수무책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다면 기우제든 천도제든 바꾸고 싶은 마음이 꿀떡 같았을 것이다. 그런 마음들은 하늘에 의지하고, 때로는 자연의 현상마저 바꾸어 낼 것 같은 누군가에게라도 기대고 의지하고 싶은 마음으로 지극히 정상적인 마음이었을 것 같다. 당골래도, 그를 믿었던 사람들도 그 때는 누구라도 그렇지 않았을까? 지금이야 풍년이면 풍년인대로 흉년이면 흉년인대로 걱정투성이 농사지만, 농민이기에 그 마음이 그대로 이해가 된다.

2016년 10월 대한민국 온천지가 당골래이야기로 횡행하다.

말도 안 되게 진행된 모든 일들이 당골래와 그를 믿는 사람으로 비교했을 때만이 앞뒤가 이해되고 맥락이 설명된다는 게 참으로 민망하기 그지없다. 국정운영 방향만 돌리기 민망해서 쌀값을 덩달아 30년 전으로 되돌린 것일까?

봄비는 일비, 여름비는 잠비, 가을비는 떡비라던 옛말이 무색해진다. 기후변화가 일상화된 요즘 가을비가 여름 장맛비처럼, 멀쩡히 알곡을 채우던 나락에서 싹이 나니 이럴 때 하는 것이 굿 아닐까? 자연현상을 제대로 돌릴 수만 있다면 국가적 차원에서도 농민들 잘살게 크게 굿판 한 번 벌여야 하지 않을까? 하야의 굿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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