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쌀과 농민 그리고 햇반

  • 입력 2016.10.28 11:43
  • 수정 2016.10.28 11:50
  • 기자명 이춘선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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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선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정책위원장

지금 농촌은 올 한해 땀흘려 일했던 농작물을 수확해서 농민들의 마음이 푸근해야 되는데 올해는 마냥 기쁘지가 않다.

한여름 찌는 듯한 폭염과 가뭄, 수확기 잦은 비와 높은 기온으로 가격폭락에 벼 베기도 늦어져 농민들의 애를 태우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합천도 하루빨리 타작을 해서 볏짚을 거두고 양파를 심어야 하는데 예년 같으면 벌써 비워졌어야 할 논들이 잦은 비에 아예 타작도 못한 논들이 애타게 농민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일부지역은 잦은 비와 고온으로 서 있는 벼에서 싹이 트는 수발아 현상으로 타작을 하더라도 미질이 나빠 RPC에서 아예 받아주지도 않는다고 한다.

여기에 40년 동안이나 농정에 몸담았다며 소위 대통령의 총애를 받는다는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조선비즈 인터뷰를 통해 농민에게 주는 쌀 직불금이 많아서 다른 사업을 못하니 직불금을 개편하겠다며 농민들의 가슴에 기름을 들이 부었다.

내가 시집 올 때만 해도 우리 지역은 거의 쌀농사가 주된 작목이었다. 그만큼 쌀농사는 농민들에게는 중요한 작물 중 하나였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지금, 쌀농사 보다는 양파, 마늘농사, 축산, 하우스나 특작 등으로 바뀌면서 농사를 짓더라도 쌀을 사먹는 농민이 생겨났다. 이제 쌀은 농민들에게도 어느새 기본농사가 아닌 일부가 돼버렸다. 점점 더 농정으로부터, 국민들로부터, 이제는 농민들로부터도 외면을 받고 있다.

또한 쌀을 사먹는 우리 국민들의 쌀 소비도 계속해서 줄고 있다. 예전에는 세끼 모두 밥을 먹었지만 각종 언론매체들에 의해 밥을 먹으면 살이 찐다는 오해가 점점 더 밥을 기피하게 만들고 집에서 밥을 해먹는 사람들도 줄어들고 있다.

요즘 우리는 해외여행이나 캠핑 등 야외활동을 할 때면 햇반을 필수품으로 챙겨 가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나도 가끔은 먹었지만 얼마 전 우연찮게 매일 햇반을 먹은 적이 있었다.

햇반은 전자레인지에 돌리거나 물에 끓이기만 하면 누구나 데워먹을 수 있고, 바쁜 직장인들에게는 편하게 먹을 수 있는 정말 매혹적인 상품이었다. 또한 처음 먹어보는 나에게도 햇반은 참 맛이 좋았다. 그런데 한번 먹을 때는 몰랐는데 웬일인지 먹으면 먹을수록 허기가 지고 배가 채워지지 않았다. 처음에는 밥맛도 좋은데 왜 그럴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보니 반찬과 함께 먹기보다는 라면과 같이 먹게 되고 밥보다는 라면을 더 찾게 되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다.

주위에 물어보니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모두들 햇반만 먹고 나면 허전하다는 것이었다.

얼마 전 그 비밀을 깨달았다. 보통 쌀은 10~12분도 정도를 깎는 백미쌀인데 반해 햇반은 15~16분도로 깎는 백미중의 초백미였던 것이다. 이유는 밥이 빨리되고 좀 더 윤기가 나게 하기 위한 상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보니 밥에 끈기가 부족해 빨리 허기가 지는 것이었다.

아마도 일반 소비자들이나 바쁜 직장인들도 그러했으리라. 결국에는 장기적으로 먹으면 밥은 맛이 없다! 먹어도 먹은 것 같지 않기에 라면이나 다른 패스트푸드로 대체되고 점점 더 쌀을 멀리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우리가 집에서 갓 지은 밥은 김치 하나만 놓고 먹어도 정말 맛있고 배가 부르다. 하지만 햇반은 공장에서 찍어낸 규격화된 제품이기에 늘 밥맛이 똑 같다.

또한 우리가 집에서 해먹는 밥은 때로는 진밥, 된밥, 퍼진 밥, 설익은 밥 등 밥을 할 때마다 매일 똑같은 밥이 아닌 엄마의 그날 솜씨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매일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 밥을 먹게 되지만 마트나 편의점에서 파는 밥들은 모두가 한결같이 똑같은 양질의 밥이 나오기에 며칠만 계속해서 먹으면 질리게 된다. 이것은 비단 햇반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리라. 매 끼니마다 빵만 먹고 햄버거 등만 먹는다면 매일 먹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집에서 먹는 밥은 그때마다 다르니 우리들은 매일매일 즐겨 먹었던 것이다.

수입쌀은 계속 들어오고 쌀 소비는 계속 줄어들어 재고미는 계속 쌓이고 쌀값이 폭락하는 현실에서 농민들이 쌀농사를 짓지 않을 경우를 상상해 보라!

결국 우리 국민들은 앞으로 매일 똑같은 햇반을 사먹을 것이고 밥은 맛이 없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게 될 것이다. 한번쯤 농민들, 국민들도 생각을 해봐야 하는 대목이다. 이런날은 오지 않아야 하고 만들지 말아야 할 것인데. 앞으로 우리 쌀이 천대받지 않는 그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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