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부송댁의 넋두리

  • 입력 2016.10.14 16:30
  • 수정 2016.10.14 16:32
  • 기자명 심문희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심문희(전남 구례군 마산면)

“휴~우” “지진난줄 알겄네. 뭔 놈의 한숨을 그리 크게 쉰단가” 두 분이서 주거니 받거니 한숨들을 쉬신다. 길모퉁이 나락을 널고 있다. “나락도 많이 나왔는디 왜 이리 한숨이 나올까잉” “긍게요. 풍년이믄 메구메고 춤한판 춰야하는 것인디 하도 기가 막혀 말은 안 나오고 한숨만 나오네 그려” “영감 먼저 보내놓고 요놈의 쌀농사 짓느라고 얼마나 고생했는디….” 몇 년 만에 나락을 말리려고 펼쳐놓으니 쥐새끼들이 구멍을 사방 군데 내놔서 하루온종일 바느질 하느라 눈이 시큼거리고 눈물이 난다며 코끝을 훔치신다.

심어만 놓으면 저절로 큰다고 누가 말을 만들었을까? 올 여름 가뭄에 논이 마를까 싶어 동네 청년 막걸리 받아주고 양수기로 물을 퍼냈던 일, 물 관리 제대로 안 돼 피밭이 돼버린걸 여름내 뽑아내던 일, 막판 가을비에 논이 수렁 될까 싶어 논 가장자리 넓게 혼자서 삽 들고 도구 친 일까지 쉴 틈 없이 보낸 세월 덕에 한 살을 꽁으로 더 먹어버린 기분이라고 하신다.

정작 베고 나니 생나락 매상은 올해 없어서 다 말려야 한다는데 건조기까지 사용하면 하나도 남지 않을 것 같아 이리 길가에 말릴 수밖에 없다. 오늘도 비가 오면 어쩌나 걱정이 더해진다. 작년엔 벼 베고 밀을 심으셨는데 올겨울은 그냥 묵혀두고 내년에 또 심을지는 다음에 생각해 보시겠단다.

“꽁으로 한 살을 더 먹었어” 한숨소리에 목소리가 기어들어가지만 허리가 더 굽어지신 건 틀림없다. 해마다 요맘때쯤이면 장판에 어엿한 손님으로 갈치 몇 토막에 돼지고기 한 근 정도는 장바구니에 거침없이 담아오곤 했는데 호박순 끄트머리 맺힌 호박만 짝꿍 못 찾아 무색해진다.

쌀농사 지어서 갚겠다했던 논갈기, 모심기, 비료값, 농약값, 나락벤 삯을 어찌 갚을지 막막하다. 시중 상인은 80kg에 9만원 준다하고 나락 찧는 값도 쌀이 아니라 돈으로 달라고 한다는데…. 뭔 놈의 세상이 쌀값만 30년 전 값으로 떨어지니 살라는 것인지 죽으라는 것인지, 농사를 지으라는 것인지 말라는 것인지 헷갈릴 정도라 하신다. 살다살다 쌀이 이리 천덕꾸러기가 돼버렸을꼬 또 한숨이다. 자식들 주고 내먹을 것 조금 남겨두고 나머진 농협에 내든 공공미로 내든 해야 하는데 그것도 코딱지만큼 받아주니 어쩔 수 없이 상인들에게라도 팔아 돈을 만들어야 한다. 언제쯤이나 농부가 맘 놓고 편히 농사 질 날이 오려나!

“나라가 점점 거시기 해부러” “쌀도 거시기 돼부렀고” “세상도 거시기 돼불면 좋겄네” “한숨소리가 함성소리가 돼야 거시기가 된당께요” “쌀값 지가 약속한대로 올려주라고 했더니 물대포 쏴서 죽여분 세상인디 무솨서 어찌케 서울간다냐” “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 어차피 죽을 목숨 요렇게 한숨만 쉬다가 갈 순 없제”

한숨소리에 땅이 꺼지는가 싶더니 땅이 흔들리고 갈라진다. 뒤엎어지는 게 논밭뿐만 아니라 세상이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