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 강화 없는 국산밀 자급률은 모래성”

자급률 겨우 2%대 진입, 현장은 벌써 “팔 데 없다” 호소

주요 식품기업들 국산밀 쓰도록 다양한 지원 방안 필요

  • 입력 2023.07.16 18:00
  • 수정 2023.07.16 18:37
  • 기자명 김수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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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김수나 기자]

국산밀 관계자들은 2030년 밀 자급률 10% 달성을 위해선 밀 생산과 더불어 특단의 소비 강화 대책이 필요하다고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지난 10일 광주광역시 광산구 본덕동 한국우리밀농협에서 국산밀 정부 수매가 한창인 가운데 농민들이 가져온 밀이 담긴 톤백을 직원들이 지게차로 운반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국산밀 관계자들은 2030년 밀 자급률 10% 달성을 위해선 밀 생산과 더불어 특단의 소비 강화 대책이 필요하다고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지난 10일 광주광역시 광산구 본덕동 한국우리밀농협에서 국산밀 정부 수매가 한창인 가운데 농민들이 가져온 밀이 담긴 톤백을 직원들이 지게차로 운반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생산지표 반등 희소식에도 쏟아지는 계약 외 물량 ‘난감’

정부는 2020년부터 국산밀 수매량, 계약재배물량, 가공지원량을 지속 늘리고, 밀산업 육성 예산도 계속 증액해 올해는 전년보다 67% 늘어난 403억원으로 책정했다. 이에 밀 자급률은 지난 4년간 0.8%(2020년)에서 2.2%(2023년)까지 반등했다. 밀 재배면적과 생산량도 각각 129%, 194%(5월 1일자 농림축산식품부 발표 기준)로 뛰어올랐다. 어느 때보다 국산밀에 대한 정책 의지가 발휘되는 모양새다.

하지만 현장엔 이에 대해 우려와 기대가 혼재한다. 가속도가 붙은 생산량 증대에 견줘 소비대책이 따라주지 않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김경아 (사)우리밀살리기운동본부 사무총장은 “정부 기조는 ‘몇 년도까지 밀 자급률을 높이겠다, 생산단지 늘린다, 비축하겠다’까지다. 그다음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대책은 거의 없다. 정부의 밀 정책이 성공하려면 장기적·근본적 소비 방안 구축은 필수다”라고 지적했다. 수매 조합, 식품제조업체, 연구자 등 국산밀 관계자들은 “지금보다 더 강력한 소비 방안이 없다면 국산밀의 성장세는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 10일 장맛비가 주춤한 틈을 타 밀 알곡이 담긴 톤백을 실은 화물차들이 연달아 한국우리밀농협(조합장 천익출, 우리밀농협)에 들어섰다. 광주광역시 우리밀농협은 연평균 밀 수매량이 8,000~9,000톤 정도로 전체 국산밀 생산량을 감안할 때 전국적 규모다. 이 가운데 1,000여톤을 정부가 수매한다.

천익출 조합장은 “올해 수확량은 6만톤이 좀 넘는 것 같다. 평년 소비량이 2만~2만5,000톤, 정부 수매량이 2만톤, 주정용 2만톤 나가면 6만톤까진 괜찮지만, 계약 외 물량이 너무 많이 나와 걱정이다. 팔 데가 없다”면서 “계수에 안 잡혀 정확하진 않지만 100톤 넘게 생산한 농민도 있다. 우리도 계약 외 물량은 1,000톤까진 비축할 수 있지만 그 이상은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고 털어놨다. 결국 우리밀농협 이사회는 계약 외 물량을 2만5,000원~3만원(40kg당, 계약물량 1등 수매가는 3만8,000원) 선에서 수매하기로 했지만, 판로는 막막하다.

천 조합장에 따르면, 계약 외 물량 증가는 정부의 밀 생산단지 확대 정책이 한 원인이다. 우리밀농협 조합원들이 대거 정부가 조성한 생산단지에 들어가면서, 조합원들이 생산단지에서 정부 수매로 넘기고 남은 물량을 조합이 떠맡게 됐기 때문이다. 조합원의 이익을 반영해야 하니 감당하긴 했지만, 정부가 수매량을 늘리거나 확실한 소비책을 마련하지 않는 한 오롯이 조합이 짊어져야 할 짐이 되는 셈이다.

천 조합장은 “계약 외 수매량이 계속 불어나면 조합은 물론 정부도 감당하기 어렵다. 무조건 생산단지만 늘리지 말고, 기존 생산지 지원 등으로 내실을 기해 달라”면서 “무엇보다 농식품부가 밀 파종 전 생산단지별로 정확한 수매량을 제시하면 그에 맞게 생산량을 조절할 수 있다. 남는 밀을 주정용으로 쓰는 것도 근본 해결책은 아니다. 주정용은 수매용보다 싸서 농민들이 내놓고 싶어 하지 않는다. 한번 과잉 생산돼서 수매가 안 되거나 헐값에 가져가면 결국 밀 생산까지 줄어드는데 이런 악순환을 타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업체 국산밀 사용 유도책 시급 … 단, 형평성 등 고려해야

국산밀 관계자들은 결국 근본 해결책은 “국산밀 소비를 대폭 늘리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들은 정부의 소비대책에 대해 “새발의 피, 거의 없다고 본다, 하나도 없다”고 냉정하게 평하면서 “대책이 없는 건 아니지만 너무나 미약하다”고 지적했다.

국산밀 식품제조업체 한 관계자는 “밀은 쌀과 달리 대부분 가공식품으로 소비자에게 전달된다. 소비를 늘리려면 대부분 수입밀을 쓰는 가공식품 제조업체들이 국산밀을 쓰도록 다양한 지원 방안이 있어야 한다”면서 “수입밀과 국산밀의 가격 차로 큰 의지를 갖지 않는 이상 가공업체가 국산밀로 바꿀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이들이 국산밀을 쓰도록 유도하는 정책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도 시범적으로 국산밀을 싸게 지원하는 가공사업 확대책이 있지만, 부작용이 많다. 국산밀로 전환을 유도한다는 취지지만, 기존에 국산밀을 써온 가공업체들(보통 대부분 수매업무도 병행)도 싼 물량이 풀릴 때까지 기다리게 되면서 이듬해 수매량을 줄여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면 결국 생산자들에게도 피해가 간다. 다른 방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국산밀 소비 활성화를 위해 정부 비축분을 시중 가격보다 저렴하게(수입밀 가격과 비슷한 수준) 공급하고 있는데, 이것이 국산밀 시장에서 업체 간 가격경쟁을 일으키는 상황으로 이어져 취지와 달리 국산밀 수매량과 생산량 감소에까지 영향을 미친 것이다.

천익출 조합장은 “우리는 CJ랑 거래하는데 CJ는 대기업이라 정부 지원이 없고 SPC 같은 더 작은 회사는 지원한다. 그래서 국산밀 가격경쟁에선 CJ가 불리하다. 실제로 올해 우리농협의 CJ계약 물량이 1,500톤이나 줄었다”면서 “어느 기업이든 국산밀 쓴다고 하면 정부가 똑같이 지원해야 한다. 기업 간 형평성이 없으면 우리처럼 계약이 안 되는 상황까지 생긴다”고 토로했다.

이어 천 조합장은 “어떤 기업은 aT에서 싸게 줘서 좀 더 싼 제품을 내보내고, 우리같은 수매업체에서 가져다 쓴 기업은 그보다 비싼 제품이 나가면 그 불이익을 보고 싶은 기업이 어딨겠나”라며 “어느 업체든 균일한 가격에 공급해야 불필요한 경쟁이 없어진다. 국산밀은 수입밀과 경쟁 자체가 어려우므로 비축분 공급은 균등하게 지원해야 소비도 늘어난다”고 강조했다.

김경아 (사)우리밀살리기운동본부 사무총장은 “지금 가장 많은 밀을 소비하는 대기업이 국산밀을 사용해야 소비처가 큰 규모로 확장되고 그래야 자급률이 제고되는 건 분명하지만, 넘어야 할 과제가 많은 문제”라면서 “대기업에 국산밀을 싸게 준다면 그동안 해왔던 업체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동일한 조건으로 시장에 뛰어들었을 때 지금까지 힘겹게 1%를 유지하며 1만톤 내외의 소비를 뒷받침하던 사업체들과의 형평성에 대한 대책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산밀 시장 확대 위한 큰 그림 필요”

국산밀 소비 활성화를 위한 기업 지원 대책이 섬세해야 하는 이유다. 아울러 소비 대책에 대한 근본적 시각 조정도 필요하다.

송동흠 우리밀세상을여는사람들 운영위원장은 “정부가 목표로 한 밀 자급률에 아직 한참을 미치지 못하는 데도 벌써 생산 현장에선 팔 데가 없다고 말한다. 게다가 현재 생산량도 모두 소비되지 못하고 있는데, 정작 정확한 시장수요가 얼마인지도 알 수 없다는 게 핵심 문제”라면서 “이러니 생산도 획기적으로 늘지 못할 뿐더러 농가들도 정부 수매에만 매달릴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송 위원장은 “자급률은 국내 소비량 중 국내 생산량이 차지하는 비율이다. 여기서 생산량은 실제로 밥상에 올라야 하는 것이다. 지금 국산밀은 밥상에도 못 오르는데 생산만 늘었다고 하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선 생산량이든 자급률이든 언제든 주저앉는다. 2011~2012년에 생산만 늘다 주저앉은 역사가 있지 않나”라며 “왜 우리밀 수요가 늘지 않는지, 소비시장을 어떻게 뚫어야 하는지, 이를 위해 가격과 품질 문제를 어떻게 조절해 나가야 하는지 정부가 강한 의지로 면밀한 시장조사부터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7년 뒤 밀 자급률 10%를 목표로 잡았다면 급한 불 끄는 식이 아닌 더 큰 그림이 필요하다.

김경아 (사)우리밀살리기운동본부 사무총장은 “2만톤 소비 규모에선 현재의 시스템이 큰 무리가 없겠지만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규모로 생산이 늘어나면 그에 맞는 소비처가 필요하다. 이 숙제를 정부가 풀어야 하는데, 정부가 시장에 직접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적으므로 전폭적인 예산 투입이 이어져야 한다. 전체 농업 예산은 물론 밀 예산을 대폭 늘려야 한다. 0이 1로 가기 위해선 국가의 투자가 절실하고 늘어나는 생산에 걸맞게 뒷받침이 필요하다”면서 “밀뿐 아니라 농업문제는 큰 그림 속에서 추진돼야 한다. 국제 곡물가 급등처럼 급박해져야 대응하니 앞뒤가 안 맞고 유기적이지 않은 정책들이 양산된다. ‘정부가 책임질 수 있는 건 생산량, 생산면적을 늘리는 것이다. 소비처는 시장이 알아서 해야 한다’는 태도여선 안 된다. 쌀과 함께 국민의 주곡으로서 밀을 국가가 끝까지 관리한다는 자세여야 희망이 있다”고 말했다.

정부의 국산밀 주요 소비대책

업체에 가공·제분·매입 비용 및 비축밀 공급 확대
(사)한국중식요리협회 등 민관 협력으로 소비 촉진

현재 정부는 2030년까지 밀 자급률 10% 달성을 목표로, 5대 분야 14개 과제가 제시된 ‘제1차 밀 산업 육성 기본계획(2021~2025)’과 이에 대한 세부 계획인 ‘2023년 국산 밀 산업 육성 시행계획’에 따라 관련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 가운데 국산밀 소비시장 확보 방안은 다음과 같다.

―가공·제분 시 톤당 40만원 지원(2022년부터 국산밀을 원료로 쓰는 업체 대상)
―제분업체에 제분·매입비용 지원 확대(지난해 16억원에서 올해 20억원)
―정부 비축밀 공급 확대로 국산밀 사용 유도(국산밀 사용량이 증가했거나 수입밀을 국산밀로 전환하는 업체에 테스트용으로, 신청 업체당 3년간 할인가로 100톤 공급, 400~500원/kg, 수입밀은 300~400원/kg)
―가공업체에 안정적 공급을 위해 계약재배 물량 확대(2022년 6,000톤에서 2023년 8,000톤)
―국산밀 제품을 식단으로 제공하는 학교, 단체 등에 제품 구매비용 일부 지원(총 1억원, 50개소, 식수 인원당 500원)
―국산밀 블렌딩으로 제품에 최적화한 밀가루 개발(계획 중)
―국산밀 제품에 인증 마크 표시(계획 중)
―식품업체와 국산밀 소비 확대를 위해 민관합동 다자간 업무협약 체결(SPC그룹, 아이쿱생협, (사)한국중식요리협회, (사)한국쌀가공식품협회 등과 협력해 제분, 홍보 사업 등 추진)
―남는 물량 주정용 매입 지속 검토
―2024년 신규 사업으로 국산밀 신제품 개발 준비 중(미확정)

김보람 농식품부 식량산업과장은 “2019년「밀산업육성법」제정 뒤 밀 예산이 많이 늘었지만 전문단지 육성, 시설·장비 지원, 비축·계약재배 확대 등 생산을 지원하는 사업이 대부분이라 생산은 늘어나는 반면 소비가 부진하다”면서 “밀은 대부분 가공품으로 소비되므로 기업을 더 지원함으로써 소비를 늘리는 방향으로 구체적으로 계획 중이다. 기업체가 국산밀을 쓰는 데 있어 가장 힘든 게 수입밀과의 가격 차인데, 가격 자체를 낮추긴 어려워 직불제를 강화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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