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기후에 멈춰버린 밀 파종

  • 입력 2024.11.17 18:00
  • 수정 2024.11.18 06:47
  • 기자명 김수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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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김수나 기자]

가을철 이상기후로 국산밀 파종이 차질을 빚고 있는 가운데 지난 12일 전남 구례군 광의면 들녘에서 홍순영씨가 밀 파종에 나서기 전 계속되는 비에 젖어 있는 논을 말리기 위해 트랙터로 로터리를 치고 있다. 한승호 기자
가을철 이상기후로 국산밀 파종이 차질을 빚고 있는 가운데 지난 12일 전남 구례군 광의면 들녘에서 홍순영씨가 밀 파종에 나서기 전 계속되는 비에 젖어 있는 논을 말리기 위해 트랙터로 로터리를 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전국의 밀 생산단지들이 유례없는 파종기를 맞고 있다. 지역에 따라 사정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평년 같으면 파종이 한창이거나 이미 끝나야 했는데 사실상 파종이 멈춘 상태다. 강우와 폭염으로 역대 기록을 갈아치운 ‘이상한’ 가을 날씨 때문이지만, 올해 이같이 유난히 이상한 기후는 지난겨울부터 계절마다 이어져 왔다.

겨울에도 습한 기후가 계속됐고, 지난봄엔 급기야 ‘봄장마’란 표현이 나올 정도로 비가 잦았다. 밀 생산량이 평년에 견줘 반토막 난 지역들도 생겨났다. 이에 최용범 구례밀영농조합법인 본부장은 더 이상 ‘장마’가 아닌 ‘우기’라는 표현이 적확하다고 말한다.

“지난 2~4월 우리 구례에는 비가 약 700mm 정도 내렸다. 일 년 강우량이 1300mm인데 그 절반이 봄에 내려버리니 밀의 뿌리가 썩어버려 절반도 수확하기 어려웠다. 수확량 감소뿐 아니라 품위도 낮아 전부 등외 판정을 받았다. 법인은 농가에 1등급으로 수매해 줬지만 정부 비축밀 수매에서는 등외가 난 거다. 다행히 농가 손해는 거의 없었지만 법인의 손실은 상당했다. 농가들도 ‘우리가 애국자도 아니고 돈도 안 되는데 적자 보면서 짓느니 (밀 농사) 안 하겠다’는 분위기다.” 최 본부장이 전한 현장 상황이다.

정부는 올해 4.2%, 2025년까지 5%로 밀 식량자급률을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내세우고 있지만(2023년 2%) 현장 상황을 보면 이에 대한 전망은 어두울 수밖에 없다. 생산단지들은 농가들의 밀 농사를 견인하기 위해 손실을 감수했고, 농가들은 타 작물에 견줘 현저히 낮은 직불금에 최하위 소득작물임에도 밀 농사를 지켜 가고 있지만, 최근의 기후 양상은 이들의 어깨에 더 큰 짐을 얹고 있다.

월동작물이라 파종 시기가 다소 늦춰지더라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란 전망도 있지만, 마음을 놓기는 쉽지 않은 상태다. 농가들은 땅을 말리기 위해 추가 경비를 들여 굴삭기로 배수로를 내고, 땅을 여러 번 고르는 등 평년이라면 하지 않을 농작업을 하며 날씨 상황에 온 신경을 모으고 있다. 올해 밀 농사의 고비가 여기서 멈출지 또 다른 악재가 찾아올지는 현재로선 누구도 장담하기 어렵다.

특히 밀은 대부분 벼와 콩, 가루쌀 등의 후작으로 생산되는 만큼 이들 작물이 겪고 있는 기상재해의 영향에서 비켜서기 어렵다. 아울러 절기가 무색할 만큼 포근함이 왔다가도 극강의 한파가 찾아오는 등 오락가락하는 겨울 기후가 월동작물인 밀 생육에 어떤 영향을 몰고 올지도 예측할 수 없다. 그간 국산밀 정책은 품질 제고와 생산성 향상에 몰두해 왔지만, 몰려오는 변화의 파고를 맞을 준비는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현장의 목소리다. 열악한 생산기반 속에서도 국산밀 자급을 향해 혼신을 다해 내달려 온 각계의 노력이 기후위기의 파도에 휩쓸려 가지 않으려면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 현장(구례·김제·논산·상주·장흥·합천)의 목소리를 모아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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