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밀 육성, 정부와 생산자의 ‘동상이몽’

국산밀 재배면적 확대 위한 직접적 유인장치 절실한데
직불금 찔끔, 수매가 인하하면서…농가에 협조 요청만

  • 입력 2024.09.08 18:00
  • 수정 2024.09.08 19:34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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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농림축산식품부(장관 송미령)는 2019년 제정된 「밀산업 육성법」에 따라 5년 단위의 ‘밀산업 육성 기본계획’을 운용하고 있다. 국내 밀 자급률을 2025년까지 5%, 2030년까지 10%로 끌어올리는 것이 궁극 목표다. 현재 생산기반 확대, 정부 수매비축, 시설·유통 증강 등 포괄적 대책을 담은 제1차 기본계획(2021~2025년)이 진행 중이다.

대부분의 사업 지표(수매비축 물량, 계약재배 면적, 생산단지 수, 보급종 물량 등)가 목표를 착실히 달성하고 있지만 최종 결과물은 신통치 않다. 밀 자급률과 재배면적은 매년 목표치를 크게 밑돌아 지난해 기준 자급률 2%(목표 3.3%), 재배면적 1만1600ha(목표 2만ha)에 그치고 있다. 올해의 재배면적·단수 감소와 농가 재배의향 저하를 고려하면 2025년 1차 목표인 자급률 5%는 ‘반타작’도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정부의 법정 사업이 시작됐음에도 밀산업이 제자리걸음인 이유를 다수의 업계 관계자들은 ‘품질 미흡’에서 찾는다. 생산 단계에서 아직은 국산밀(가루)의 품질이 들쭉날쭉해 기업들이 선뜻 달려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자연히 제품화는 지지부진하고 소비는 늘어나지 못한다. 국산밀이 태생적으로 수입밀과의 가격경쟁에서 열세에 있긴 하지만, ‘가치소비’를 이야기하기조차 민망할 정도로 품질 안정화가 미흡하다는 평이다.

생산·유통 현장에서 제시하는 해결책은 하나로 수렴된다. 국산밀의 생산량을 일단 비약적으로 늘려 놓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생산량이 많아지면 지역별·품종별·품위별 국산밀을 필요한 양만큼 비축해 놓고 일정한 배합비로 밀가루를 생산할 수 있다. 한 해 한 해 생산량 자체가 적기 때문에 지역별 재배면적이나 풍흉에 따라 밀가루 품질이 요동칠 수밖에 없고 이것이 국산밀의 근본적 약점이다.

문제는 정부의 밀산업 육성 정책이 재배면적 확대를 직접적·공격적으로 유도해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교육·컨설팅, 시설·장비, 사업다각화 등 다방면으로 정책이 진행 중이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보조적인 유인책일 뿐이다. 가장 효과적인 유인책은 수매단가와 직불금인데, 40kg 3만8000원대의 수매단가는 생산자들에게 늘상 불만의 대상이며 전략작물직불금 또한 ha당 50만원에 불과한 실정이다(타 전략작물은 최대 430만원).

농식품부도 일부 공감대를 갖고 있어서, 올해 흉작 피해 이후 농가 재배의향 고취 방안으로 직불단가 상향을 예고해 왔다. 하지만 내년도 예산안(정부안)에서 밝힌 밀 직불단가는 ha당 100만원. 생산자들이 요구하는, 영농 지속을 위한 최소한의 단가(250만원)에조차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다. 전폭적 증액에 대한 기획재정부(기재부)의 저항이 작용한 결과로 보인다.

심지어 직불단가 증액 액수만큼 2025년산 수매단가는 낮아질 예정이다. 예산안에 적시된 2025년산 밀 40kg당 수매단가는 3만4200원(종전 3만8480원)인데, 단위를 환산하면 수매단가 인하액(kg당 107원)과 직불금 증액분(ha당 50만원)이 거의 맞아떨어진다.

손주호 국산밀산업협회 이사장은 “이번엔 직불금 인상에 기대를 좀 했는데 말도 안 되는 결과가 나왔다. 같은 전략작물이라도 조사료를 재배하면 큰 힘 들이지도 않고 ha당 250만원의 수익을 얻는데 올해 밀 농가는 ha당 250만원의 손해를 봤다. 지금 내년산 파종 의욕이 완전히 상실돼서 종자를 신청하는 농가가 없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정부는 밀 전략작물직불금을 국산밀-수입밀 시장가격 격차를 메우기 위한 우회적 차액지원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는 농식품부가 기재부에 직불예산 증액을 요구하는 핵심 논리이기도 하다. 반면 생산자들은 전략작물직불금이 밀농사 지속을 위한 소득보전 장치이자 양파·마늘 등 대체재들의 유입을 도모할 유도장치라 인식하고 있다. 직불제를 둘러싼 근본적 인식 차이가 농식품부-기재부 이전에 생산자-농식품부 단계에서 이미 큰 간극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농식품부는 오는 12일 국산밀 생산자·유통업자들과 간담회를 준비하고 있다. 예산 투입의 효과를 증명하고 정책 성과를 내기 위해선 내년산 수매단가 인하와 재배면적 확대가 절실하기 때문에, 생산자들에게 이에 대한 협조를 구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생산자 입장에서 바라보면 앞뒤가 크게 뒤바뀐 정책 행보며 이에 따라 향후 작지 않은 마찰이 발생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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