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 생산환경 악화에도 무신경한 정부…생산 의지 잃는 농민들

생산량 감소·품질 저하·생산비 폭등에 맞서는 농민 위한 `정책적 신호' 절실

  • 입력 2024.09.08 18:00
  • 수정 2024.09.08 19:34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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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기후위기로 인한 밀 생산량 감소와 품질 저하, 폭등하는 생산비, 그럼에도 근본적 생산환경 개선방안엔 무신경한 채 말로만 ‘2025년 밀 자급률 5%, 2030년 10%’를 공언해 온 정부…. 현장 밀 재배 농민들은 이상과 같은 악재를 겪으며 점차 밀 생산 의지를 잃어가고 있다. 밀 자급률 향상에 모든 것을 걸어온 농민들을 위한, 정부의 근본대책이 절실한 시점이다.

갈수록 악화되는 생산환경…최대 고민거리는 ‘농가 사기 저하’

지난 3일 전북 부안군 하서면에 위치한 부안우리밀영농조합법인 저온저장고에서 유재흠 경영이사가 올해 수확한 밀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품질을 확인하고 있다. 유 이사는 “이상기후의 여파로 밀알이 예년보다 작아졌다”고 말했다. 한승호 기자
지난 3일 전북 부안군 하서면에 위치한 부안우리밀영농조합법인 저온저장고에서 유재흠 경영이사가 올해 수확한 밀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품질을 확인하고 있다. 유 이사는 “이상기후의 여파로 밀알이 예년보다 작아졌다”고 말했다. 한승호 기자

전북 부안군 하서면 소재 부안우리밀영농조합법인은 밀 자급률 향상을 위해 앞장서 온 영농조합 중 한 곳이다. 2011년 설립된 부안우리밀영농조합은 ‘우리밀 살리기 운동’ 차원에서 지역 농가 조직화를 통한 국산밀 생산 및 품질 관리 노력을 기울였다. 이와 함께 국산 밀 소비 촉진을 위해 부안 관내 제빵소, 중국집 및 로컬푸드 매장 등 소비처를 만들어왔다.

그러나 기후위기의 파고는 밀 농가들에도 들이닥쳤다. 올해 밀 재배 농민들은 향후 농사 여부를 판가름할 수준의 악재를 이중, 삼중으로 겪고 있다.

첫째, 흉작으로 밀 생산량이 감소했다. 2022년 2604톤, 지난해 3164톤을 기록했던 부안우리밀영농조합의 밀 생산량은 약 1946톤으로 크게 줄었다. 전년 대비 생산량이 약 40% 감소한 셈이다. 재배 품종 중 제빵용으로 많이 쓰이는 금강밀의 생산량은 2022년 830톤, 지난해 1923톤에서 올해 603톤, 즉 3분의 1 이하로 줄었다.

이는 부안만의 상황이 아니다. 유재흠 부안우리밀영농조합 경영이사는 “전남의 경우 전년 대비 생산량이 50%, 즉 반타작을 기록했으며 전북 또한 30%의 생산량이 줄었다”며 “2020년 이후 가장 심각한 흉작”이라고 설명했다.

둘째, 그나마 수확한 밀의 전반적인 품질도 악화했다. 올해 초 나타난 이상 고온과 과도한 습도는 등숙(밀알이 여무는 것)을 방해해 밀알이 작아지는 결과를 초래했으며, 밀의 품질을 좌우하는 핵심 요인인 단백질의 형성 과정에도 악영향을 끼쳤다.

부안우리밀영농조합에서 생산한 금강밀의 경우, 2022년엔 830톤 물량 중 밀 품질 등급제 기준 1등급이 648톤, 2등급이 182톤이었으며 지난해엔 1923톤 물량 중 1등급이 1620톤, 2등급이 303톤이었다. 그러나 올해는 생산량 자체도 603톤으로 감소했지만 그중 1등급 밀은 없고, 2등급 116톤과 3등급 481톤, 그리고 몇 년간 나타나지 않았던 등외 등급 물량 약 6톤이 발생했다. 올해 수확한 밀의 평균적인 단백질 함량은 지난해 대비 약 5% 감소했다는 게 유재흠 이사의 설명이다.

수확량 감소와 품질 저하는 자연스레 소득 감소로 이어졌다. 2022년 443만9667원이었던 1ha당 평균 조수익은 지난해 431만9333원에서 올해 300만6000원으로 격감했다. 이런 와중에 셋째, 생산비는 생산비대로 증가했다.

유 이사는 “4~5년 사이 기름값이 계속 오르면서 전반적인 생산비가 다 올랐다. 밀 생산 과정에서 파종 등 농기계 작업이 필연적으로 동반될 때가 있다 보니 임대작업을 신청하려 해도 (농기계 사용 과정에서의 비용 증가에 따른 기계 보유자의 우려 때문에) 요즘은 누가 임대작업을 해주지도 않는다”며 “콤바인 작업비 등 수확 과정에서 들어가는 비용만 해도 4~5년 전엔 1ha당 20만~25만원이었는데 지금은 35만원으로 올랐다”고 밝혔다.

유 이사가 올해 부안우리밀영농조합의 1ha당 밀 생산비를 산출해 본 결과(생산량 4톤 기준), 1ha당 생산비는 최소 609만4000원에서 최대 789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술한 대로 1ha당 평균 조수익은 300만원대로 하락한 상황에서, 그 2배에 달하는 생산비가 들어간 셈이다.

이상과 같은 악재 속에서 밀 재배 농민들의 전반적인 사기가 저하되고 있다는 것이야말로 어떤 면에선 가장 큰 고민거리다. 유 이사는 “최근 1차로 내년 (파종) 물량 신청을 받았는데, 예년 대비 절반의 농민만 신청했다. 그동안은 (밀산업 육성 기본계획 추진을 통해 만들) ‘좋은 날’에 대한 기대심리가 밀 농사를 자극했고 농가들이 기대감과 자부심을 갖게 했으나, 올해는 여러 악재가 겹치면서 농민들도 그 자부심에 상처를 입은 것”이라고 진단하며 “악화된 생산 여건 속에서 사기가 저하된 농민들을 향해 정부가 명확한 정책적 신호를 던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말하자면 △기후위기 대응 고품질 밀 생산을 위한 정부 차원의 관리 △악화되는 농가 생산환경에 대한 정부의 구체적 진단 △현행 ‘쌀 생산량 감축’ 목적과 연계된 수준의 전략작물직불제를 넘어 ‘밀 농가를 위한 직불제’ 편성 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국산밀 위한 자리 10% 비워놔야”

지난 4일 장명진 아산제터먹이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이 충남 아산시 음봉면의 아산제터먹이 사무실에서 토종 앉은키밀로 가공한 과자 `앉은뱅이 통밀쌀'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 4일 장명진 아산제터먹이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이 충남 아산시 음봉면의 아산제터먹이 사무실에서 토종 앉은키밀로 가공한 과자 `앉은뱅이 통밀쌀'을 보여주고 있다.

충남 아산시 음봉면 소재 아산제터먹이 사회적협동조합(이사장 장명진, 아산제터먹이)의 생산자 조합원들은 앉은키밀(옛 앉은뱅이밀) 등 각종 토종작물을 재배하며 토종작물 가공 활성화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러나 기후위기는 토종밀 생산자들에게도 난관이었다. 올해 봄 아산엔 예년보다 비가 많이 왔고, 온도도 예년보다 일찍 뜨거워졌다. 이상기후는 앉은키밀 수확량에도 악영향을 끼쳤다. 평년엔 40톤 안팎으로 수확했던 앉은키밀의 올해 수확량은 약 20톤이었다.

장명진 아산제터먹이 이사장은 “아산제터먹이에선 콩·밀 2모작 체계를 운영해 왔는데, 기후위기로 인해 콩 수확 시기도 늦어지다 보니 적정한 밀 파종 시기도 놓치게 됐다. 이로 인해 밀을 더는 재배하지 않고 콩농사만 택하는 농가도 늘었다”며 “그러다 보니 (아산제터먹이의) 앉은키밀 재배 면적도 지난해 약 4만평에서 2만평 가량으로 줄어들었다”고 토로했다.

생산비는 생산비대로 들어간다. 장 이사장은 “(앉은키밀을 생산하는) 1000평 밭에 들어가는 생산비만 해도 종잣값 10만원에 트랙터 사용 과정에서 드는 비용 20만원, 콤바인 임대료 30만원, 건조비 10만원, 비룟값 15만원으로 도합 85만원이 들어간다. 아산제터먹이의 경우 1000평 밭 기준 대략 120만원의 수익을 거두는데 그중 85만원이 생산비로 빠져나가고 35만원이 남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생산환경 악화로 인해 1년간 가공용으로 쓸 원료 자체가 부족해졌다. 아산제터먹이에선 지역 농민들이 생산한 앉은키밀을 국수·밀가루·튀김가루·부침가루 등으로 가공해 아산제터먹이 소비자 조합원 및 아산시 학교급식, 로컬푸드 매장 등 지역 내외의 필요한 소비처에 공급해 왔는데, 전년 대비 반타작인 수확량을 갖고는 소비자들이 원하는 양만큼 가공식품을 만들어내기 어렵다.

그나마 앉은키밀을 활용해 농민가공을 실천하는 타공동체들과의 교류 과정에서 부족분을 받거나, 반대로 타 공동체가 부족할 시 아산제터먹이의 잉여 물량을 나눠주는 식으로 ‘상생’하고 있다는 게 장 이사장의 설명이다. 그럼에도 아산제터먹이는 현재 예년 대비 약 10톤의 가공용 물량이 부족하다.

장 이사장은 “점차 밀 파종을 기피하는 농민이 늘어나는 추세임에도 정부의 밀 육성정책은 사실상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그 원인으로 ‘수입밀에 대한 무방비 상태’를 지적했다. 그는 “저가 수입밀에 대한 제재 대책을 세우지 않는 한 아무리 육성계획을 세운다 해도 소용없다. 기업마다 쿼터제를 통해 밀 수입 물량을 조절하든, 국산밀 사용량을 늘리는 기업에 인센티브를 부여하든, 어떻게든 (국산밀을 위한) 최소 10% 자리는 비워놔야 그 자리가 국산밀로 채워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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