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김수나 기자]
경기 양평군(군수 전진선)이 역점으로 추진해 왔던 ‘밀 산업 밸리화 시범단지 조성 사업(밀 산업 밸리화, 국비+군비 총 30억원, 2024~2025년)’이 사업대상자 선정 취소를 둘러싼 소송전으로 격화한 가운데 전격 무산됐다. 지난 3일 양평군이 주무 부처인 농촌진흥청(청장 권재한, 농진청)에 사업을 반려했다(국비 15억원 반납). 계획대로라면 올해 양평군 단월면에 제분소가 건립돼야 했지만, 제분소 예정부지는 현재 잡초만 무성한 상태다.
지역 국산 밀 산업 활성화는 민선 8기인 전진선 양평군수의 공약사업(지역활성화 및 소득기반 구축 공약 중 ‘우리밀 보급 확대 및 산업화’)인데다, 밀 산업 밸리화는 해당 공약사업 이행을 위한 중요 사업으로 양평군농업기술센터(소장 조근수, 센터)가 지난 2023년부터 공들여 추진해 온 터다. 이에 수도권 농업의 선도지인 양평군의 농정이 퇴보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사업 추진이야 여러 이유로 불발될 수 있지만 이번 사안은 사업 무산을 당국인 센터가 자초했다는 점이 문제다.
센터는 지난해 6월 제분업체인 ㈜오가그레인(대표이사 우기성, 오가)을 사업대상자로 선정했으나, 같은 해 12월 10일 사업대상자 선정을 취소하는 행정처분을 내렸다. 이유는 「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보조금법)」 등에 따른 ‘거짓 신청 또는 기타 부정한 방법으로 보조금을 신청한 경우’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2024년 3월 사업대상자 선정 공모에 신청할 당시 첨부서류로 서명 완료된 밀 농가와의 재배-수매 약정서를 제출해야 했는데, △명단(145농가, 68.9ha)만 있고 약정서에 서명이 없었던 점 △추후 보완요청으로 받은 약정서상 농가 명단(2025년 수확 예정 농가 포함)이 공모 당시 제출 명단(2024년 수확 예정 농가)과 불일치하고 약정 규모(145농가 68.9ha → 9농가 8.1ha, 실제 수매약정 성립 농가 기준)도 불충분한 점 △수매를 이행하지 않은 점을 이유로 들었다.
즉 선정업체가 농가와 약정도 하지 않은 채 허위로 서류를 제출했고, 보완서류도 요건에 충족하지 않는다는 취지다. 행정처분의 귀책 사유가 오롯이 선정업체에 있다는 결론인 셈이다.
업체로 선정해 놓고, 갑자기 ‘허위 문서’라며 선정 취소
그러나 지난 14일 <한국농정>의 현지 취재를 종합하면 이는 사실과 다르며, 선정업체 취소와 사업 무산의 책임은 센터에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먼저 사업대상자 공모 신청 당시 제출된 약정서에 서명이 없었음에도 업체 선정까지 진행된 것은 당시 센터의 판단이었다. 당시 센터는 약정서를 구비 서류에 넣긴 했지만, 이후 업체 선정 불발 시 농가와의 약정이 무효가 될 수 있는 사안인 만큼 책임 소재에 대한 논란 우려로 업체 선정 절차부터 끝낸 뒤 약정서를 첨부하는 것으로 진행했다. 추후 보완 서류로도 가능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후 보완된 약정서가 신청 때 명단과 일치하지 않은 것은 그 새 재배 의향이 있는 농가가 급감한 점(2023~2024년 습해 등으로 생산량 저조), 아울러 센터의 보완요청 시기가 수매 완료 이후였던 점, 소장의 ‘사업(밀 밸리화) 전면 재검토’ 발언의 영향으로 확인됐다. 문제는 이것이 취소사유인가에 대해선 해석이 엇갈릴뿐더러 우기성 오가 대표는 신청 때 제출한 농가 명단과 보완 약정서상 농가가 반드시 일치해야 한다는 사실도 몰랐다.
우 대표는 “보완서류 요청 공문에 신청 때 명단에 한해야 한다고 돼 있었다면 알았겠지만 몰랐다. 또 보완요청이 9월 13일에 왔는데 그땐 이미 수매까지 다 끝난 상태라 신청 당시 농가와는 계약서를 쓸 수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라며 “수확을 앞두고 있으면 모를까 신청 당시 농가 명단으로 보완하라고 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이에 2025년도에 생산할 농가를 넣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수매하지 않은 이유로는 “지난해 9월 4일쯤(보완요청 이전), 신임 센터 소장(같은 해 7월 부임)과 처음 만난 자리에서 소장이 ‘지역 민원도 있으니 사업을 전면 재검토해야겠다’고 했다. 이에 ‘그럼 사업을 안 할 수도 있나’라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했다”라며 “작년에 건조가 8월에야 끝나 추석 전까진 다 수매하기로 하고 자금까지 준비했는데 그 와중에 소장이 그렇게 얘길 하니, 굳이 수매에 나서지 않았다. 그 뒤라도 사업 지속 의사를 확인시키고 수매하라고 했다면 수매를 왜 안 했겠나”라고 말했다.
즉 사업의 최종 수장인 소장의 ‘사업 전면 재검토’ 및 철회를 시사하는 발언과 동시에 수매 의무를 거론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란 것이다. 무엇보다 보완요청 이후 허위 서류 제출자라는 오명까지 안긴 것에 대해 우 대표는 분노했다. 특히 행정소송을 통해 선정 취소가 무효가 되지 않으면 우 대표는 보조금법상 일정 기간 동안 보조사업에 참여할 수 없게 될 수 있다.
오락가락 행정, 결국 피해만 양산
사업 취소로 인한 피해는 이뿐 아니다.
먼저 최대 피해자는 업체다. 2022년 양평군농업기술센터와 밀 산업 협력을 위해 기존 거래처까지 모두 끊기면서 인천 강화군에 있던 사업지를 양평군으로 옮겨 왔고, 밀 산업 밸리화를 위해 2024년 3월 공장부지(사업 신청 요건)까지 매입하는 등 시간과 자산을 투입했지만, 결국 날아든 건 ‘허위 문서’ 제출에 따른 사업대상자 선정 취소 소식이었던 거다.
지역 농가들 역시 군수의 공약사업이자 최우선 농업 과제였는데 사업 자체를 중단했다는 사실 자체에 충격적이란 반응이다. 무엇보다 어떤 사전 설명도 없이 사업을 중단한 것에 대해 “농가들을 무시한 처사”라는 문제 제기도 이어지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에 대해 센터 농업기술과(과장 주성혜)는 “신청 당시 명단에 있는 농가를 대상으로 보완 서류를 내야 했다. 그게 선정 요건에 맞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 이를 충분히 안내했고 고지가 안 되거나 인지하지 못했다고 말할 부분은 아니다”라며 “수매 요청도 계속했는데 수매를 왜 안 했는지도 모르겠다”라고 밝혔다. 아울러 주 과장은 “사업체 신청 당시 무조건 약정서를 받아야 하는 게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는 센터의 행정적 해석으로 신청 당시 받지 않고 진행한 것이므로 이 말은 곧 ‘센터가 원칙대로 하지 않았다’는 말이기도 하다. 또한 이미 수매가 끝난 때에야 보완요청이(2024년 9월 13일) 된 것도 문제다. 업체 선정 뒤 약정서를 보완하기로 했다면, 수매가 한창인 시점에 약정서 보완이 완료됐어야 한다. 약정 서명은 선정 완료 뒤 하면 되는 것으로 진행했다가 수매 시점도 지난 때에서야 보완하라고 해서 겨우 보완했더니 정작 ‘허위 서류’라고 몰아버린 셈이다. 이에 대해 주 과장은 “관리·감독을 제대로 하지 못한 부분이 있어 보인다”라고 인정했다.
업체 선정 취소에 대해 지난 6월 행정감사에서 문제를 제기한 바 있는 여현정 양평군의원(더불어민주당)은 “보완서류로 제출된 18농가(오가 쪽 자료)의 약정서는 신청 당시 서류와는 별개로 이미 충분한 자료라고 본다. 처음 자료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취소할 거였으면 애초 보완을 요청해서도 안 되는 거다”라며 “보완했고, 요건이 되는데도 취소한 건 결국 취소하겠단 의지로 요식행위를 한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2024년 밀 경작 상황이 매우 안 좋아 재배 의향이 있던 145농가 대부분이 재배에 회의적인 시점에서 보완 요구가 들어갔고, 이는 농가 의향이 바뀐 것임에도 이를 조작이라며 업체 선정을 취소한 것 자체가 취소를 전제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여 의원은 “업체 최종 선정 심사 당시 주성혜 과장도 심사위원이었다. 당시 주무과장이 아니었으니 꼼꼼히 못 봤을 수도 있지만 결국은 본인도 업체 선정에 참여한 것이니 책임이 있다. 당시 약정서 문제를 몰랐다고 해도 문제다”라고 말했다.
이어 “행정소송도 진행 중인데 적어도 그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사업 중단 결정을 미뤄야 했다”라며 “만약 센터에 책임이 있고, 원상회복하라는 판결이 나온다면 어떻게 할 건가. 올해까진 예산을 집행할 수 있고 지난 6월 행정감사에서 보완 조치하라는 의견도 줬는데, 더 이상의 어떤 조치도 없이 센터의 바뀐 입장대로만 처리한 거다”라고 꼬집었다.
한편 양평군이 여러 논란을 불사하며 어렵게 따낸 정부 사업을 반려한 것을 두고 국산 밀 산업에 대한 의지를 저버린 것이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센터 농업기술과는 이번 사업 철회는 양평군 밀 생산 기반 현실과 맞지 않은 데 따른 것이며 전진선 양평군수의 밀 산업에 대한 철학은 변함없다고 밝혔다. 아울러 올해 사업 취소로 집행되지 않은 15억원(군비)은 내년 예산에 반영해 군에 맞는 규모로 밀 산업 활성화 사업을 지속하겠다는 취지를 밝혔다.
밀산업 밸리화는 농진청이 국산 밀 산업 및 소비 활성화를 위한 공급 기반을 조성하기 위해 지난 2022년부터 전국 5개 지자체와 추진 중인 사업이다. 재배 농가 단지화 및 규모화를 통한 품질 관리 체계 강화와 주산지별 중소형 제분시설 구축이 주요 사업 과제다. 대형 제분 기업이 소농가가 대부분인 국산 밀 농가의 생산량을 수용할 수 없는 상황에서 생산과 저장, 제분과 유통, 제품화를 연계해 국산 밀 자급률을 높이는 게 목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