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밀 파종기가 2~3개월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올해의 극심한 흉작 피해가 농민들의 파종 의욕을 저하시키고 있다. 자급률 목표 달성을 위해 가뜩이나 갈 길이 구만리인 상황에서 설상가상의 악재가 드리운 것이다.
2020년 「밀산업 육성법」 제정으로 국산밀 육성은 법률에 근거한 국책사업이 됐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제1차 밀산업 육성 기본계획(2021~2025년)’을 세우고 ‘2025년 밀 자급률 5%’ 목표를 향해 다방면의 정책을 시도해 왔다.
하지만 성적은 처참하다. 기반이 전무하다시피 한 국산밀 분야에서 소기의 성과를 내기엔 정책 역량의 집중이 아쉬웠고, 생산·유통·소비 할 것 없이 정책은 제자리걸음에 그쳤다. 정부 비축에 의존해 간신히 자급률을 끌어올리고는 있지만 매년 연도별 목표치를 크게 밑돌고 있다. 8만톤을 목표로 했던 2023년산 생산량 역시 5만여톤(자급률 2.2%)에 그쳐 있다.
올해는 더 심각하다. 재배면적이 지난해보다 2000여ha 감소한 데다 봄철 냉해, 여름철 일조량 부족 등 기후피해로 흉작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지역마다 예년 대비 30~40%의 생산량 감소를 호소하고 있는데, 사실이라면 자급률이 1%대로 회귀할 가능성이 있다.
더 큰 문제는 내년이다. 2025년은 ‘자급률 5%’ 목표를 설정해 놓은 ‘제1차 밀산업 육성 기본계획’의 마지막 해며 올가을이 그 성패를 가를 마지막 파종기다. 현재로선 극적인 자급률 반등은 고사하고 현상유지조차 쉽지 않으리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전병철 경북 예천 우리밀애영농조합법인 대표는 “(2024년산) 수확량 감소도 감소지만 밀이 제대로 여물지 못해 대부분 등외 판정을 받을 것 같다. 정부 수매가를 인상해줘도 안 될 판에 수매가는 자꾸 낮아지고, 올핸 등급마저 안 나오니 올가을 농민들의 밀 파종면적이 정말 심각할 것 같다”고 걱정했다.
생산기반부터가 미미한 밀의 특성상, 자급률 제고의 1차적 조건은 ‘농가소득 보장’이다. 밀 전략작물직불금이 미미(ha당 50만원, 타 전략작물은 100만~430만원)한 이상 밀 농가에겐 판매소득이 절대적인데, 가격 논쟁은 차치하고라도 올해 같은 재해 상황에선 소득을 보장받을 길이 없다.
정부 대책과 민간보험이 농가의 재해 피해를 온전히 구제하지 못하는 게 단지 밀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재해 이후의 양상은 전혀 다르다. 일반적인 작목은 농가마다 전문적인 재배기술과 노하우가 축적돼 있어 피해를 입더라도 다른 작목으로 전환하길 꺼리지만, 대다수 생산자가 걸음마 단계인 밀은 언제 다른 작목으로 돌아서도 이상할 것이 없다.
관건은 정부의 역할이다. 기반이 취약한 산업을 새로 구축하는 데는 정부의 손길이 필수적이기도 하거니와 전술했듯 국산밀 육성은 법률이 부여한 정부의 ‘책무’다. 농식품부는 당장 올해 피해에 대한 구제를 논의하고 있진 않지만, 대신 내년도 전략작물직불금 개선 논의를 진행 중이다.
김철희 농식품부 식량산업과 사무관은 “(재배의욕 고취를 위해) 적어도 내년에 소득이 나아진다는 걸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전략작물직불단가 인상에 많은 힘을 쏟고 있다. 내년도 예산에 반영될 수 있도록 8월 말~9월 초에 정부안을 확정해 국회에 제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