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61건) 리스트형 웹진형 타일형 [통일농업] 북한은 왜 농업기술에 집착할까 [통일농업] 북한은 왜 농업기술에 집착할까 북한의 협동농장이나 국영농장을 방문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농장 곳곳에서 담벼락이나 게시판에 붙어 있는 구호와 포스터(선전화)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농장 곳곳에 새로운 구호와 포스터가 붙었다는 소식이 국내외 일부 언론매체를 통해 들려온다.과거 식량부족 문제가 심각했던 시기에는 그 내용이 대부분 농업과 식량의 생산 증대를 촉구하는 구호로 채워졌고, 포스터는 주로 종자혁명이나 두벌농사방침, 감자농사혁명, 콩농사방침 등에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었다.식량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기 위한 북한의 노력은 크게 농업기술 개선, 농업구조 개선, 생산기반 정비, 농업관리방식 개선, 영농자재 공급 증대 등과 같은 다섯 분야로 구분할 수 있다. 이 가운데 농업구조, 생산기반, 영농자 통일농업 | 장경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부소장 | 2015-05-24 09:20 [통일농업] 농기계·비료 등 영농자재 공급 개선 [통일농업] 농기계·비료 등 영농자재 공급 개선 전국 곳곳에서 모내기 소식이 들려오면서 바야흐로 본격적인 영농철이 시작되었음을 알게 된다. 한반도 북쪽에서도 조만간 ‘모내기 전투’를 알리는 소식이 전해져 올 것이다.북한은 모내기철에 일손이 매우 부족하기 때문에 당과 행정기구는 물론 학생, 군인, 도시 직장인들에게도 모내기 참여를 독려하는 캠페인이 집중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은 농번기 일손이 부족하기 때문이며, 이는 농기계의 공급이 충분하지 않은데서 비롯된 것인데, 근본적으로는 경제 전반의 위기가 영농자재 산업부문의 축소를 초래했기 때문이었다.1980년대까지는 트랙터, 이앙기 등과 같은 농기계 공급이 충분했기 때문에 일손 부족이 큰 문제는 아니었다. 그러나 1989〜1991년 동구 사회주의권의 붕괴로 에 통일농업 | 장경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부소장 | 2015-04-24 16:17 [통일농업] 농업용 물 공급이 좋아지고 있다 [통일농업] 농업용 물 공급이 좋아지고 있다 모처럼 단비가 한반도를 촉촉하게 적셨다. 그동안 가뭄에 애타던 농심을 조금이나마 달래주었다. 단비를 반기기는 휴전선 이북의 농민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특히나 농업용수 공급이 완전히 정상적으로 회복된 상태가 아니라서 가뭄에 대한 그들의 걱정은 더욱 컸을 것이기에 한 해 농사를 준비하는 근심도 한결 가벼워졌을 것이다.1960년대에 정립되어 수십 년 동안 일관되게 추진돼 왔던 북한의 증산정책은 기계화, 과학, 전기화로 집약할 수 있다. 협동농장이라는 사회주의 대농경영을 위해 1958년부터 자체적으로 트랙터를 생산하여 보급할 정도로 농업의 기계화에 역점을 두었다. 그리고 당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막론하고 녹색혁명(식량증산)의 열풍이 불었던 세계적 조류를 받아들여 종자개발과 화학농법에도 통일농업 | 장경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부소장 | 2015-04-03 11:34 [통일농업] 북한의 최근 식량사정이 궁금한가 [통일농업] 북한의 최근 식량사정이 궁금한가 지난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시작되면서 남북관계는 과거 냉전 시대와 같은 적대적 대결관계로 되돌아갔다. 화해협력을 위한 다양한 교류가 사실상 중단되면서 북한 관련 정보는 정부가 독점하게 되었고, 국민들의 관심에서도 점차 멀어지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북한의 식량사정에 대한 세간의 인식도 그 당시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당시 북한의 식량생산량은 대략 450만 톤 정도였다. 소위 ‘고난의 행군’으로 불리는 1990년대 중후반에 비해 생산이 크게 증가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약 70〜80만 톤 정도의 식량이 부족해 남한으로부터 제공되는 쌀 차관과 국제기구의 지원 등으로 우선 충당하고, 그래도 모자라는 것은 중국이나 베트남 등으로부터 수입해 조달했다.그런데 주지하다시피 2008년부터 남한 통일농업 | 장경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부소장 | 2015-03-07 12:40 처음처음이전이전1234끝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