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총선을 앞두고 몇 가지 바란 것이 있었다. 그것을 지면을 통해서도 밝힌 바 있다. 그것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은 3가지였다.첫째, ‘농’을 국가정책의 최우선 순위로 하자는 논의가 필요하고, 둘째, 농촌·농업의 정치적 대표성을 확보할 수 있는 정치제도 개혁 방안이 논의돼야 하며, 셋째, 농업·농촌분야 정책 결정 과정의 민주주의를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이 논의돼야 한다라는 것이었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덧붙이자면, 농촌 난개발을 막고 농촌지역의 인구 증가와 활성화를 도모하기 위해서는 읍·면 자치권의 부활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강원도 삼척엔 50년 넘게 매일 새벽을 여는 시장이 있다. 동이 트기 전 5시에 열어 10시면 시장을 닫기에 ‘번개’라는 이름이 붙은 시장이다. 그래서 항간엔 도깨비시장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크지 않지만 있을 건 다 있는 시장이다. 전면엔 당일 새벽 경매로 넘어온 해산물들이 즐비한데 모두 다시 살아서 바다로 갈 것만 같다. 해산물가게 뒤편의 골목으로는 따끈한 어묵국물을 파는 가게부터 채소를 파는 가게들도 같이 있다. 새벽을 여는 만큼 아침을 먹을 수 있는 식당들도 몇몇 보인다. 아침밥을 먹을까 잠시 고민하다가 임연수만 한 바구니
몇 가지 사실을 확인하는 것으로 글을 시작하겠습니다. ‘하늘 아래 왕의 땅 아닌 데가 없고 땅끝까지 왕의 신하가 아닌 사람이 없다.’ 이것이 시경(詩經)에 보이는 왕토사상(王土思想)입니다.왕토사상은 역사적으로 이미 죽은 것이기도 하고 입때껏 산 것이기도 합니다. 왕토사상은 토지의 사적소유가 확대되면서부터 관념화 수준으로 약화되지만 농지는 공공재이며 농지이용은 적극적으로 공공선에 부합해야 한다는 아시아 수도작 문화권의 인식은 농지개혁과 토지공개념의 이념적 바탕으로 전승됩니다.우리 헌법 23조는 국민의 재산권은 보장된다면서도 공공필요에
이 글을 쓰는 마음이 편치 않다. 이번 총선에서 농업·농민단체들은 정책제안과 정책협약도 하고 있고, 소수이지만 농민·농촌을 대표하고자 하는 후보나 정당들이 열심히 뛰고 있다. 필자가 활동하는 도 지난달 14일 산업폐기물 문제로 피해를 입고 있는 농어촌주민들과 상경집회를 하고, 거대양당을 비롯한 정당들에게 정책질의 및 정책요구서도 전달했다.구도 중심 선거에서 ‘농’의 자리는?그러나 솔직히 총선 이후에 농촌·농업·농민들의 현실이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크지 않다. 선거에서 농촌·농업·농민에 관한 얘기는 주변적인 의제
곡성은 인구 2만명 정도의 작은 군 단위 지역이며 심청전의 발상지로 알려져 있다. 옆동네 남원시의 춘향전은 실속은 없어도 브랜드파워가 상당하지만, 곡성의 심청전은 실속도 없고 브랜드파워도 약한 형편이다. 춘향전과 남원은 사람들에게 제법 잘 알려져 있지만 그렇다고 춘향과 관련된 스토리를 만나러 외지에서 오는 일은 거의 없다. 옆동네 곡성의 심청이는 더욱 그렇다. 이름을 건 축제기간을 제외하면 조용한 작은 마을 같은 느낌이 든다. 늘 그랬다.곡성오일장은 기차마을전통시장이라 이름 붙은 곳에서 열린다. 시장의 규모와 시설은 여느 지역의 시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 요새는 땅값이 올라서 남자는 하늘하늘 눈치를 보며 살고/ 여자는 땅땅거리며 산다(박원철).’이런 시를 만나면 이름난 시인이 쓴 고색한 시들이 다 시시해 보입니다. 일단 너무 재미있습니다. 담백하고 재치가 넘칩니다. 시 첫 행에는 간이 몸 밖으로 나온 남자가 아니라면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불경한 언어가 박혀있습니다. 여자가 땅이라면 요새 땅값이 너무 올라 신분 상승한 여자 앞에서 남자는 하늘하늘 연체동물처럼 몸을 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여기서 ‘땅땅’은 시적으로는 총을 쏘는 모습으로도 해석이 가능합니다
총선이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정치권 상황을 바라보는 마음은 답답하기만 하다. 각 정당의 공천 얘기는 무성한데, 정작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 얘기는 찾아보기 어렵다. 간혹 나오는 정책들도 단편적인 정책 중심이다. 게다가 농지를 훼손할 난개발 정책이나 나오는 것이 현실이다. 선거를 계기로 사회가 더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더 나빠지지 않을까 걱정된다.총선 국면에도 소외되는 이슈들그리고 정말 안타까운 것은 우리 사회의 수많은 문제들이 총선 국면에서 아예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주로 농촌이 겪고 있는 현안들이
나는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 서울로 올라갔고 지리산으로 내려오기 전까지 서울이나 서울의 언저리를 맴돌며 살았다. 그러니 나에게는 제2의 고향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곳이 서울이다. 어떤 특정한 구역은 서울에 사는 사람들보다 더 구석구석 잘 알고 있기도 한데 그것이 바로 경동시장이다. 잘 아는 곳이기도 하고 서울의 부엌 같은 곳이라 오일장은 아니지만 소개하고 싶은 시장, 경동시장엘 두 차례에 걸쳐 다녀왔다.오일장이나 오래된 시장을 다니는 묘미를 꼽으라면 우선 명절 밑 대목장의 붐빔, 그리고 잔칫집 같은 풍요와 떠들썩함을 말하고 싶다.
발해와 통일신라시대 이야기를 먼저 하겠습니다. 발해는 옛 고구려의 유민들과 말갈족의 일부를 흡수해 대조영이 세웠는데 698년의 일입니다. 발해는 고구려를 계승했습니다. 고려 또한 고구려를 계승하고 있어 고구려와 발해, 고려는 한 통 속의 물과 같습니다. 대조영은 이렇게 말했습니다(협계태씨족보 발해국왕세략사).‘나라의 복이 길고 짧은 것은 민생의 고락에 의해 달려 있으며 민생의 고락은 전제의 균등여부에 달려있다. 오늘부터 반드시 10분의 1세제를 실시하여 밭 1부에서 곡식 3되를 받도록 할 것이며 백성들에게 3년간의 조세를 면제할 것
필자가 난개발이나 환경오염시설과 관련된 현안이 있는 농촌지역을 다니다 보면, 참으로 안타까운 경우들을 접하게 된다. 업체가 마을 이장 등 마을 임원이나 일부 주민들을 돈으로 회유하려고 하는 바람에 농촌 마을공동체가 깨어지려고 하는 경우들을 보게 되기 때문이다.얼마 전에도 어떤 업체가 산업폐기물매립장을 추진하고 있는 어느 지역에 갔는데, 업체 측이 마을주민들에게 ‘사업에 동의해주면 가구당 수천만원을 주겠다’고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대기업의 자회사가 추진하는 사업인데도 이런 식으로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다. 그 얘기를 들으니 과거의 기
동백꽃 진 자리가 꽃빛으로 물든다는 소리가 들리면 나는 제주엘 가고 싶어 온 신경이 제주에 가 있곤 했다. 코로나19를 겪으며 4년을 가보지 못하고 지낸 곳이라 그 갈증이 더 심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이번엔 무턱대고 제주의 오일장을 가기로 정했다.완도에서 떠나는 배에 차를 실고, 6층 높이의 배가 물살을 가르기 시작하고서야 비로소 제주행이 현실이 됐음을 실감했다. 제주는 주로 하늘길로 다니지만 뱃길을 이용해 가는 재미도 꽤 괜찮다. 완도에서 제주를 가는 배는 한밤중 2시 30분에 출발하는 배편도 있어 제주에서의 하루를 길게 쓸 수
보통, 지면(地面)에서는 농사를 짓고 신문 지면(紙面)에는 글자를 새깁니다. 저는 농사를 짓는 사람으로서 땅에 곡식을 심습니다. 저는 이 지면에 과거의 농지제도와 미래의 농지개혁에 대해 쓰겠습니다. 저에게 모내기하는 일과 글을 쓰는 일은 같은 일입니다. 한 달에 한 번, 일 년 열두 번 글을 쓰겠다는 뜻을 제가 먼저 신문사에 전했습니다. 땅 한 평 살 수 없는 아픔과 직불금을 받지 못하는 억울함과 지주가 원하는 대로 임차료를 지급해야 하는 농민의 가슴앓이를 세상에 내놓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정광훈 전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님은 새로운
2024년 새해가 밝았다. 2023년을 돌아보면, 정치에 대한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2023년 1년간은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언론의 자유’조차 위협받는 한 해였다. 농업과 관련해서도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으나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무산되는 일이 있었다.대통령의 거부권이 헌법상 보장된 권한이기는 하지만, 쌀값 안정을 위한 다른 실효성 있는 대안을 제시하지도 못하면서 거부권을 행사한다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3년 12월 15일 기준으로 쌀값은 정부가 약속한 80㎏ 기준 20만원에도 미치지 못
진부한 표현이라 해도 다사다난 말고는 달리 쓸 단어가 없을 2023년 한 해도 그 꼬리를 감추고 있다. 나라 안팎이 숨 가쁘게 돌아간 올 한 해, 숱한 사람이 들고 나기도 했던 지리산 자락에도 참으로 많은 일이 있었다. 풍운아처럼 지리산과 수도산을 넘나들던 반달가슴곰 오삼이도 그 파란만장했던 삶을 마감했다. 우리 초록걸음 길동무들도 변함없이 지리산의 실핏줄 같은 그 길들을 걷고 또 걸었다.2023년 지리산은 그 어느 때보다 위태로웠고 그 위태로움은 쉬 끝나지 않을 듯싶다. 산청과 함양의 케이블카, 남원 산악열차, 구례의 골프장과 양
오일장을 가다 보면 거기가 여기 같고, 여기가 거기 같은 느낌을 많이 받는다. 작은 나라이다 보니 행정구역이 다른 지역이라 해도 어디나 그저 그렇게 많이 비슷하고 아주 조금 다른 것이 당연하다. 주변의 동료들은 매번 원고를 쓸거리가 있느냐고 묻는다. 나도 매번 오일장으로 향하면서 이번에도 가면 뭔가 새로운 것이 있을까 하는 약간의 걱정을 한다.그런데 참 이상하다. 정말 늘 오일장에 들어서면 그 모든 걱정들은 사라지고 그저 신기하고 재미나고 다 좋다. 그리고 언제나 얘깃거리 하나는 건져낸다. 어쩌면 그건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어느
12월 15일(양력), 전봉준이 이끄는 농민군 본대가 후퇴를 거듭하여 전주에 이르렀다. 청주성 전투에서 패한 김개남은 논산에서 전봉준과 합류하여 함께 전주로 들어왔으나 곧 다시 헤어졌다. 손화중과 최경선은 나주를, 순천의 김인배는 전라좌수영을 차지하기 위한 전투를 치르고 있다. 이들에게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전봉준은 12월 21일과 23일 원평과 태인에서 마지막 전투를 치른 후 부대를 해산하고 잠행에 들어갔으나 28일 순창 피노리에서 피체되었다. 하루 앞선 27일 손화중과 최경선이 부대를 해산했다. 이날 태인에서 피체된 김
얼마 전 강릉에서 열린 지정폐기물매립장 공청회에 갔다가 황당한 얘기를 들었다. 강릉시 주문진읍에 무려 904만톤이나 되는 지정폐기물·사업장일반폐기물을 매립하겠다는 계획을 업체가 밀어붙이면서 개최된 공청회였다.그런데 업체측은 ‘지정폐기물 등 산업폐기물이 얼마 나오지 않는 강릉시 주문진읍에 왜 매립장을 추진하느냐’는 질문에, 지역소멸 얘기를 꺼냈다. 주문진읍의 인구가 줄고 있고 강릉시 인구도 줄어드는데, ‘인구를 늘리려면 지정폐기물매립장을 먼저 유치해서 산업단지가 들어오기 좋은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는 기막힌 주장을 편 것이다.난개발과
지난여름의 긴 장마에 잦은 가을비까지 더해져 올해 지리산의 단풍 농사는 영 시원찮다. 단풍나무류의 단풍은 그 어느 해보다 우중충한 민낯으로 가을을 맞았다.광합성에 최적화된 초록잎으로 화장을 하고는 햇빛을 열심히 흡수하던 나무들은 이제 동파 방지를 위해 물길을 닫았고 제 몸속에 지니고 있던 본색을 드러낸 뒤 제 가진 것을 하나둘 땅으로 돌려보내면서 긴 월동을 준비한다.단풍 농사가 흉작인 숲에서도 은행나무가 있어 그나마 지리산의 가을 풍경을 남길 수 있음에 여간 다행스럽지 않다.하지만 이 은행나무 단풍을 사진으로 남기기가 결코 쉬운 일
백마강, 낙화암 등 문화유산의 답사지로 기억되던 부여는 이제 내 기억에서 사라지고 없는 것 같았다. 다른 지역과 차별화되는 식재료나 특별한 음식 등으로 분류되어 언젠가는 꼭 가봐야 할 곳으로만 기록되고 남아 있었다. 오일장에도 꼭 가봐야지 하는 생각만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 찾게 된 부여오일장은 볼거리가 많지는 않았지만 나에게 또 하나의 잊지 못할 추억을 남기는 귀한 시장으로 남았다.이번 부여장에선 혹시라도 표고목을 이용해 재배한 질 좋은 생표고버섯이나 건조표고버섯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며 갔지만 허탕을 쳤다. 엄청난 양의 생표고
전봉준, 김개남, 손화중.세 분의 초상을 오래도록 들여다본다. 무릇 혁명에 있어 지도자의 역할은 무엇일까? 이분들은 어떻게 동학농민혁명 3대장군의 반열에 오르고 시공을 뛰어넘어 역사 속에 살아남게 되었을까?어찌 이분들 뿐이겠는가? 5대 장군, 10대 장군, 이름도 성도 없이 쓰러져간 무수한 농민군들을 그려본다. 스러져가는 한 시대와 더불어 기꺼이 사라짐으로 하여 새 시대를 열어젖힌 사람들, 자신의 흔적을 끊임없이 지워가며 온몸을 불살라 오히려 선명하게 역사에 각인된 혁명가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지조를 잃지 않았기에 유해조차 수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