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이후, 지역 조례·예산·행정·정치부터 바꾸자

  • 입력 2024.04.28 18:00
  • 수정 2024.04.28 20:29
  • 기자명 하승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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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수 대표. 변호사 및 공인회계사. 1990년대 중반부터 다양한 시민사회운동에 참여해 왔다. 현재는 농촌·농업·농민을 옹호하는 공익법률단체인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 예산감시운동 단체인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하승수 대표. 변호사 및 공인회계사. 1990년대 중반부터 다양한 시민사회운동에 참여해 왔다. 현재는 농촌·농업·농민을 옹호하는 공익법률단체인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 예산감시운동 단체인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번 총선을 앞두고 몇 가지 바란 것이 있었다. 그것을 <한국농정> 지면을 통해서도 밝힌 바 있다. 그것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은 3가지였다.

첫째, ‘농’을 국가정책의 최우선 순위로 하자는 논의가 필요하고, 둘째, 농촌·농업의 정치적 대표성을 확보할 수 있는 정치제도 개혁 방안이 논의돼야 하며, 셋째, 농업·농촌분야 정책 결정 과정의 민주주의를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이 논의돼야 한다라는 것이었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덧붙이자면, 농촌 난개발을 막고 농촌지역의 인구 증가와 활성화를 도모하기 위해서는 읍·면 자치권의 부활도 필요하다는 생각이었다.

이 같은 의제들은 기후위기를 맞고 있는 상황에서 식량자급률과 곡물자급률이 바닥까지 떨어져 있는 국가라면 당연히 논의돼야 할 의제라고 생각했다. 또한 국가적으로는 초저출생 문제가 심각하고, 농촌의 인구 유출과 고령화 현상이 심각한 상황이다. 그런데도 기존의 행정과 정치가 제대로 된 대책도 내놓지 못하고 있기에, 총선 국면에서라도 반드시 이 의제들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총선 과정이 보여주는 것

그러나 총선 과정에서 필자의 기대는 헛된 것임이 드러났다. 물론 예측하지 못한 것도 아니다. 대한민국의 총선에서 정책의제는 선거 이슈가 되기도 어렵고, 간혹 이슈가 되는 것도 개발 공약이나 선심성 정책 정도이기 때문이다.

물론 아무런 성과가 없는 것은 아니다. 농업·농촌·농민 관련해서 많은 단체들이 노력해서 정당들과 정책협약이 체결된 부분도 있고, 공약으로 약속된 부분도 있다. 그런 부분들은 잘 챙겨서 22대 국회에서 실현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소수이지만 농촌·농업·농민들의 현실을 개선하는 데 관심이 있는 국회의원들의 역할도 중요할 것이다. 그러나 그 정도로 지금의 위기적 상황이 근본적으로 해결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안타까운 것은 아까운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는 것이다. 기후위기에 대비할 시간도 흘러가고 있고, 수도권 일극 집중 문제와 초저출생 문제를 풀 시간도 흘러가고 있다. 농업을 지키고 있는 고령화된 농민들의 시간도 흘러가고 있고, 활력을 잃어가고 있는 수많은 농촌지역의 시간도 흘러가고 있다. 농촌의 시간만 흘러가고 있는 것도 아니다. 삶이 팍팍하고 불안한 모든 사람들의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더 이상 국가만 쳐다보고 있어 봐야 답이 잘 나오지 않는다. 대통령이나 국회가 제 역할을 하는 때가 언제 오기라도 할까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아마도 이번 총선에서 투표장에 나오지 않은 33%의 유권자들은 그런 생각을 했을 것 같다.

그렇다고 포기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래서 지역에서부터 다시 주권자다운 실천을 해 가는 것이 필요하다. 누가 문제를 대신해서 해결해 주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문제 해결의 주체로 나서는 수밖에 없다. 하루하루 일상을 살아가기 바쁜 사람들이 많지만, 그래도 잠깐씩 시간을 내 나의 삶을 규정하고 있는 사회를 바꾸는 것이 더 나은 삶을 위해 필요할 것이다.

최근 농촌 곳곳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산업폐기물시설, 환경오염시설이나 난개발 문제만 하더라도, 광역지방자치단체와 기초지방자치단체의 조례를 바꾸면 상당 부분 규제를 강화할 수 있다. 지난 2일 강원 홍천군 홍천군청 앞에서 열린 ‘농촌파괴형 난개발 저지 홍천군민대회’에서 홍천 주민들이 골프장, 송전탑, 석산 등 관내 곳곳에서 진행 중인 농촌파괴형 난개발 사업의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최근 농촌 곳곳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산업폐기물시설, 환경오염시설이나 난개발 문제만 하더라도, 광역지방자치단체와 기초지방자치단체의 조례를 바꾸면 상당 부분 규제를 강화할 수 있다. 지난 2일 강원 홍천군 홍천군청 앞에서 열린 ‘농촌파괴형 난개발 저지 홍천군민대회’에서 홍천 주민들이 골프장, 송전탑, 석산 등 관내 곳곳에서 진행 중인 농촌파괴형 난개발 사업의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역에서부터 변화를 만들었던 경험들

국가가 움직이지 않을 때, 지역에서부터 변화를 만든 경험이 그동안에도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학교급식 조례 제정운동이었다. 지방자치가 부활하고, 지방자치법에 ‘조례 제·개정청구제도’가 도입됐다. 지금은 주민발안으로 명칭이 바뀌고 제도가 더 강화됐지만, 2000년부터 도입된 ‘조례 제·개정청구제도’가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된 사례가 학교급식 조례 제정운동이었다.

당시에 주민들이 서명을 해서 학교급식 조례 제정을 발의한 건수가 2003년 40건, 2004년 19건, 2005년 31건에 달했을 정도이다. 당시에 발의된 ‘학교급식 조례’의 주요 내용은 국내 농산물 또는 친환경농산물을 학교급식에 공급하도록 하고, 이에 들어가는 재원을 지방자치단체가 지원하게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학교급식 조례 제정운동을 통해 실제로 많은 지방자치단체에서 ‘학교급식 조례’가 제정됐다.

학교급식 조례 이후에도 사례는 여럿 있다. 지금 전국의 농촌지역에서 시행되고 있는 농민수당도 각 지역에서 조례 제정운동을 해서 도입된 것이다. 지방자치단체의 재정능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액수가 1년에 60만~80만원 정도 수준이지만, 농민들에게는 도움이 된다. 또한 지역상품권으로 지급되면 지역경제에도 도움이 된다.

그리고 이런 흐름은 지금도 지역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농산물가격안정 지원 조례의 실효성을 강화하거나 필수농자재 지원 조례를 제정하려는 움직임이 그런 사례이다.

이런 지역에서의 움직임이 단지 개별 정책을 바꾸는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런 움직임들은 정책의 우선순위에 문제제기를 하고, 그것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사람들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것이 정책의 최우선 순위에 있어야 하고, 농업을 지지하고 살리는 것이 정책의 최우선 순위에 있어야 한다는 문제제기를 한 것이고, 그것이 지역에서는 수용된 것이다.

국가적으로는 변화가 매우 더디지만, 지역에서는 주민들의 요구가 있으면 충분히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런 지역에서의 노력이 쌓이면 국가정책의 변화도 이끌어낼 수 있다.

민주주의는 시끌벅적해야

그래서 총선이 끝난 이후에는, 더 이상 중앙정치만 쳐다보고 있을 것이 아니라, 지역에서부터 조례·예산·행정·정치를 바꾸기 위한 노력이 곳곳에서 벌어질 필요가 있다.

농업과 관련된 조례뿐만 아니라, 농촌과 관련된 조례들도 바꿀 부분들이 많다. 예를 들면 최근 농촌 곳곳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산업폐기물시설, 환경오염시설이나 난개발 문제만 하더라도, 광역지방자치단체와 기초지방자치단체의 조례를 바꾸면 상당 부분 규제를 강화할 수 있다.

광역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는 환경영향평가조례를 제정 또는 개정하면, 지역 차원에서 환경영향평가를 확대하고 강화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런데 17개 시·도 중에 환경영향평가 조례가 아예 제정되지 않은 곳이 6개나 된다. 아이러니한 것은 가장 환경영향평가조례가 필요한 지역, 즉 농촌지역이 광범위하게 분포해 있는 도(道)지역에서 조례가 제정돼 있지 않은 곳들이 있다는 것이다. 충남, 충북, 경북, 전남은 현재 환경영향평가 조례가 제정되지 않은 곳이다.

사업자 입장에서 보면, 아무래도 환경영향평가를 받아야 할 부담이 적은 곳을 찾아서 사업을 하려고 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이런 지역은 조례 제정이 시급하다. 또한 조례가 제정됐더라도 실효성이 약한 곳도 있다. 그래서 환경을 보전하기 위해서는 광역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환경영향평가 조례부터 점검할 필요가 있다.

기초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도 환경정책위원회 조례나 군계획(도시계획) 조례를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현재 지방자치단체별로 환경정책위원회 조례가 제정돼 있는데, 실효성이 매우 약하다. 단순히 정책에 대한 심의·자문 역할에 그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라북도 익산시의 경우에는 환경오염 우려가 있는 시설에 대해 개별적으로 환경정책위원회가 심의·자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조례가 돼 있다. 전문가나 시민단체의 참여도 보장돼 있다. 이런 조례가 확산될 필요가 있다.

군계획(도시계획) 조례를 통해서 특정 개발행위에 대해서는 주거지역, 도로, 저수지, 하천 등과 이격거리를 설정하는 것도 가능하다. 많은 지역에서 그런 내용으로 조례가 제정돼 있지만, 지역의 실정에 비춰봐서 실효성을 강화할 방안이 있는지를 더 따져 볼 필요가 있다.

이런 조례는 하나의 예시이다. 농촌 주민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필요한 조례들은 무궁무진할 수 있다. 지역을 바꾸고자 한다면, 자기 지역의 조례부터 챙겨볼 필요가 있다. 조례뿐만 아니라 예산과 행정, 정치를 바꾸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예산감시, 행정감시 활동이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 실효성이 약하다는 비판이 있지만, 주민감사청구나 주민소환 같은 제도도 있다. 정보공개제도는 그래도 정착이 많이 돼 있어서 누구나 활용할 수 있다.

지역정치가 바뀌려면, 경쟁구도가 만들어져야 한다. 특히 일당 지배가 고착화돼 있는 지역이거나 거대양당이 나눠 먹다시피 하는 지역일수록 지역정치의 변화가 필요하다. 그러나 선거 때에 갑자기 어떤 개인이나 정당이 지지를 호소하는 것은 지역 유권자들이 신뢰하지 않는다. 지역정치의 변화를 바라는 세력이나 사람들이 있다면, 지금부터라도 지역의 조례, 예산, 행정을 바꾸려는 활동을 해야 한다. 그래야 지역의 유권자들이 신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올해 하반기부터는 지역에서의 이런 활동들이 가시화되면 좋겠다. 민주주의는 좀 시끌벅적해야 한다. 침묵만 흐르고, 이해관계만 작동하는 지역에서 희망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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