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장을 맛보다㉟] 서울의 텃밭·서울의 바다, 경동시장

  • 입력 2024.02.25 18:00
  • 수정 2024.02.25 18:14
  • 기자명 고은정 제철음식학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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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이 커서 입구가 여러 곳이다. 그중 청량리 시장으로 연결된 통로의 입구다. 사진 류관희 작가
시장이 커서 입구가 여러 곳이다. 그중 청량리 시장으로 연결된 통로의 입구다. 사진 류관희 작가

 

 

고은정 제철음식학교 대표
고은정 제철음식학교 대표

나는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 서울로 올라갔고 지리산으로 내려오기 전까지 서울이나 서울의 언저리를 맴돌며 살았다. 그러니 나에게는 제2의 고향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곳이 서울이다. 어떤 특정한 구역은 서울에 사는 사람들보다 더 구석구석 잘 알고 있기도 한데 그것이 바로 경동시장이다. 잘 아는 곳이기도 하고 서울의 부엌 같은 곳이라 오일장은 아니지만 소개하고 싶은 시장, 경동시장엘 두 차례에 걸쳐 다녀왔다.

오일장이나 오래된 시장을 다니는 묘미를 꼽으라면 우선 명절 밑 대목장의 붐빔, 그리고 잔칫집 같은 풍요와 떠들썩함을 말하고 싶다. 사람에 치여 떠밀려 다니는 느낌도 없지 않지만 어쩐지 그런 곳에 가면 명절에 고향집에 갔을 때와 감정선이 겹쳐진다. 일가친척 모두 모여 목소리 높여가며 안부를 묻고 서로의 앞날을 덕담으로 채우는 시간 같은 느낌이랄까, 아무튼 무지하게 좋다.

경동시장은 골목길을 반으로 갈라 서로 마주보고 있는 가게를 청량리시장이라고 부르는 이상한 행정구역 안에 있다. 길 하나 건너에 제기동 약령시장이 있고 청량리시장 옆으로는 청량리청과시장이 있다. 제기동과 다른 길을 건너면 수산시장도 있다. 그렇다고 경동시장 안에 약재나 청과, 수산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 나와 있는 모든 것이 다 있고 없는 게 없는 시장이다. 없다면 다만 돈이 없을 뿐이란 생각이 들 정도로 대한민국의 모든 살만한 것들이 다 있는 그런 시장이 경동시장이다.

 

 

청년몰과 이어지는 경동시장 입구. `스타벅스 경동'으로 가는 이층통로와 연결돼 있다. 사진 류관희 작가
청년몰과 이어지는 경동시장 입구. `스타벅스 경동'으로 가는 이층통로와 연결돼 있다. 사진 류관희 작가

 

 

경동시장 안에서 만나는 사람들도 그렇다. 오래 그곳에 터를 잡고 생계를 꾸려온 노인들이 있는가 하면 청년몰에 스타벅스 커피까지 들어와 있어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리기도 한다. 멀리서 지하철을 이용해 찾아오시는 어른들의 굽은 등과 느린 걸음을 만나기도 하고, 억척스럽게 무거운 짐을 들고 인파를 헤치고 나가는 중년의 그만그만한 주부들도 만난다. 그리고 외국에서 우리 음식에 관심을 가지고 찾아온 낯선 얼굴의 젊은이들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경동시장은 서울의 모습과 비슷하게 온갖 식재료들과 다양한 사람들이 어우러져 하나의 풍경이 되는 매력적인 공간이다.

 

 

시장 앞 횡단보도는 시장의 혼잡함을 그대로 보여준다. 사진 류관희 작가
시장 앞 횡단보도는 시장의 혼잡함을 그대로 보여준다. 사진 류관희 작가

 

 

원고를 쓰기 위해 한 번은 설 명절 전에 다녀왔고 또 한 번은 대보름 전에 다녀왔다. 두 번 모두 인산인해를 이루는 장터였지만 상인들은 예전 같지 않다는 말씀들을 하신다. 나라 전체가 살림이 어렵다고 하니 이곳도 영향을 받나보다. 명절 전에는 전을 부칠 재료들과 차례상에 오를 식재료들이 산더미를 이루고 있었다. 대보름을 앞둔 경동시장은 부럼과 오곡밥 재료, 갖가지 나물들이 얼마나 많은지 사고 싶은 마음을 누르느라 힘들었다. 서울은 내 집이 없는 곳이라 며칠 후 귀가할 내가 장을 볼 것이라고는 기껏해야 호두, 땅콩 정도여서 한 봉지씩 샀다. 봄을 부르는 성급한 나물들도 여기저기 보인다. 아마도 다음번 방문에는 아랫녘에서 올라오는 봄나물들이 지천으로 널려있을 것이다. 갈 수 없는 지역의 수많은 식재료들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특혜를 누리는 곳이 바로 경동시장이라는 생각이 든다.

 

 

대보름 나물을 파는 상점에 손님이 찾아왔다. 사진 류관희 작가
대보름 나물을 파는 상점에 손님이 찾아왔다. 사진 류관희 작가

 

 

가장 빨리 계절을 느끼고, 가장 늦게까지 계절이 이어지는 곳이 경동시장이지만 그곳에 가면 365일 언제나 좋은 재료를 마음 놓고 살 수 있는 것들도 많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뿌리채소이다. 우엉, 도라지, 더덕, 연근, 토란 등을 파는 시장이 별도로 형성되어 있을 정도다. 약재시장이 가까이 있기도 하지만 수삼이나 홍삼을 파는 가게들이 줄을 선 곳도 있다. 소나 돼지를 통으로 한 마리 살 수 있을 것 같은 정육점이 있는가 하면 고추장, 된장, 간장을 담아서 조금씩 덜어 파시는 분들도 계신다. 작은 오일장에 손수 키운 농산물을 한 줌 들고 나오신 어르신처럼 팔 것을 앞에 놓고 계신 분이 계신가 하면 기업 같은 규모의 견과류 가게나 버섯가게도 있다.

 

 

온갖 장들이 다 나와 있다. 원하는 만큼 덜어서 파시는데 자부심이 대단하다. 사진 류관희 작가
온갖 장들이 다 나와 있다. 원하는 만큼 덜어서 파시는데 자부심이 대단하다. 사진 류관희 작가

 

명절에는 역시 육류가 필요하다.  신선하고 저렴한 육류를 파는 가게 앞에 사람들이 줄 서있다. 사진 류관희 작가
명절에는 역시 육류가 필요하다.  신선하고 저렴한 육류를 파는 가게 앞에 사람들이 줄 서있다. 사진 류관희 작가

 

잡화점만큼이나 다양한 해산물을 판매하는 수산물 코너.

 

대보름날 깨물, 부럼 등 견과류를 팔고 사는 사람들. 사진 류관희 작가
대보름날 깨물, 부럼 등 견과류를 팔고 사는 사람들. 사진 류관희 작가

 

 

시장을 둘러보고 나오는데 내 앞을 천천히 가고 계신 노인의 뒷모습에서 어머니가 보였다. 딸을 만나러 지리산에 오시겠다고 날을 잡으시면 이른 시간에 경동시장에 가셔서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잔뜩 사오시던 모습이다. 몸집 큰 것들은 택배로 보내시고 가볍고 자잘한 것들은 여행용 캐리어에 담아 끌고 동서울터미널로 가서 지리산행 버스에 오르셨을 어머니를 생각나게 하는 곳, 그래서 먹먹해지는 곳. 경동시장은 서울 사람들의 텃밭이며 바다이지만 나에게는 어머니 생각에 울컥하게 되는 늘 그리운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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