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주민들이 SK·태영·여의도로 가는 이유

  • 입력 2024.03.03 18:00
  • 수정 2024.03.03 19:12
  • 기자명 하승수 대표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하승수 대표. 변호사 및 공인회계사. 1990년대 중반부터 다양한 시민사회운동에 참여해 왔다. 현재는 농촌·농업·농민을 옹호하는 공익법률단체인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 예산감시운동 단체인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하승수 대표. 변호사 및 공인회계사. 1990년대 중반부터 다양한 시민사회운동에 참여해 왔다. 현재는 농촌·농업·농민을 옹호하는 공익법률단체인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 예산감시운동 단체인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총선이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정치권 상황을 바라보는 마음은 답답하기만 하다. 각 정당의 공천 얘기는 무성한데, 정작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 얘기는 찾아보기 어렵다. 간혹 나오는 정책들도 단편적인 정책 중심이다. 게다가 농지를 훼손할 난개발 정책이나 나오는 것이 현실이다. 선거를 계기로 사회가 더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더 나빠지지 않을까 걱정된다.

총선 국면에도 소외되는 이슈들

그리고 정말 안타까운 것은 우리 사회의 수많은 문제들이 총선 국면에서 아예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주로 농촌이 겪고 있는 현안들이 더욱 그렇다. 올라가는 생산비에 불안정한 농산물 가격, 난개발로 인해 날로 축소되는 농지, 농촌으로 몰려드는 산업폐기물과 환경오염시설들은 총선 국면에서도 주요 관심사가 되지 못한다.

특히 대기업이나 사모펀드의 이해관계가 걸려있는 문제라면, 더욱 이슈가 되지 않는다. 언론이나 정치가 이런 문제들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산업폐기물 문제이다. 지금 전국 곳곳의 농어촌이 산업폐기물 문제로 고통을 겪고 있다. 이미 들어선 시설로 인한 환경이나 주민건강 피해도 심각하다. 민간업체들이 이윤만 보고 무분별하게 사업을 추진하면서 지역 내부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혼란도 매우 심각하다.

정확한 정보도 제공하지 않고 ‘자원순환 시설’로 포장해서 사업을 추진하는 경우도 많고, 상대적으로 반감이 덜한 산업단지와 묶어서 산업폐기물 시설을 추진하는 ‘꼼수’도 종종 등장한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부 업체가 지역에 돈을 뿌려서 지역공동체가 분열과 갈등을 겪는 일도 종종 보게 된다.

오는 14일 산업폐기물매립장 문제로 고통을 겪고 있는 농촌주민들이 SK 본사, 태영 본사 앞에서 집회를 연다. 이윤만 추구하면서 농촌의 환경과 마을공동체를 위협하고 있는 대기업들의 행태를 규탄하려는 것이다. 2021년 12월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전국산업폐기물매립장대책위원회 발족식 및 주민 피해 증언대회'에서 피해지역 주민들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산업폐기물의 국가관리 책임 및 사후관리 강화 등을 정부에 촉구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오는 14일 산업폐기물매립장 문제로 고통을 겪고 있는 농촌주민들이 SK 본사, 태영 본사 앞에서 집회를 연다. 이윤만 추구하면서 농촌의 환경과 마을공동체를 위협하고 있는 대기업들의 행태를 규탄하려는 것이다. 2021년 12월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전국산업폐기물매립장대책위원회 발족식 및 주민 피해 증언대회'에서 피해지역 주민들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산업폐기물의 국가관리 책임 및 사후관리 강화 등을 정부에 촉구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산업폐기물하면 SK·태영 떠올라

필자가 처음 농촌에서 벌어지는 산업폐기물 문제를 접한 것은 10여년 전부터다. 그런데 그 이후에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SK, 태영 같은 대기업들이 산업폐기물 사업에 뛰어들었다. 산업폐기물로 돈을 쉽게 벌 수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일어난 현상이다.

또한 사모펀드들도 눈에 많이 띈다. 이미 산업폐기물 업체를 사고팔아서 돈을 많이 번 사모펀드도 있다. 그리고 지금도 사모펀드가 관여된 산업폐기물 소각장, 매립장 업체들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태영그룹과 KKR이라는 외국계 사모펀드가 50:50으로 손을 잡고 설립한 ‘(주)에코비트’라는 업체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서 확인해보면, ‘(주)에코비트’는 여러 지역에 자회사를 두고 있다. 경주, 경산, 청원, 청주, 충주 등에 산업폐기물매립장, 의료폐기물 소각장 등을 운영하는 자회사들이 있는 것이다. 태영건설이 부채를 갚지 못해 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이런 산업폐기물 사업들이 어떻게 되는지도 관심사이다.

그런데 태영그룹은 KKR과 합작해서 하고 있는 산업폐기물 사업 이외에도 자체적으로 산업폐기물매립장을 추진하고 있다. 강릉 주문진읍에 어마어마한 규모의 지정폐기물매립장을 추진 중이고, 천안시 동면에도 대규모 매립장을 추진하고 있다. 이 사업은 태영건설이 100% 지분을 가진 자회사를 통해서 추진하고 있는 사업이다. 도시계획권을 가진 지방자치단체도 반대하는 사업이지만, 태영그룹은 사업을 밀어붙이고 있다.

태영그룹과 함께 눈에 띄는 대기업이 SK이다. SK는 산업폐기물 사업에 뛰어들면서 기존의 매립장, 소각장 업체들을 인수·합병했다. 그래서 태영그룹과 함께 산업폐기물 매립·소각 시장의 선두를 다투고 있다. 그리고 SK는 최근 전국 곳곳에서 산업폐기물매립장, 소각장, 재활용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필자가 파악하고 있는 것만 해도 충남의 다섯 군데에서 산업단지와 산업폐기물매립장을 패키지로 추진하고 있다. 경기도 화성시에서도 지정폐기물매립장을 추진하고 있고, 경남 사천시에서는 아예 산업폐기물 처리단지를 만들겠다고 하고 있다.

농촌주민 고통에 빠뜨리는 대기업의 ‘그린워싱’

SK가 사업을 추진하는 것을 보면 ‘대기업이다’, ‘친환경이다’라는 것을 내세운다. 태영그룹도 ‘에코’라는 단어를 기업 명칭에 쓰고 있지만, SK도 산업폐기물 사업을 추진하는 계열사는 ‘SK에코플랜트’이다. ‘SK건설’의 명칭을 이렇게 바꾼 것이다.

그러면서 ‘친환경’이나 ‘자원순환’을 내세운다. 충남에서는 산업폐기물매립장을 산업단지와 묶어서 추진하면서 ‘그린 콤플렉스’라는 사업명을 쓰고 있다. 내용을 보면 농지와 임야에 유해물질을 배출하는 공장과 산업폐기물매립장이 들어선다는 것인데, ‘그린’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이다.

2021년 ‘SK건설’의 이름을 ‘SK에코플랜트’로 바꿀 때, SK에코플랜트 대표이사는 “(건설업이) 환경을 파괴하고 지역사회에 공헌하지 못하고 생태계를 이롭게 이끌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은 뼈아프게 받아들여졌습니다. 저희는 고심했고 변하기로 하였습니다. 지구를 지키는 환경업. 지난 60여년처럼 우리가 신명을 다해 노력할 새로운 영역입니다”라는 말을 했었다.

그런데 산업폐기물을 농촌의 땅에 묻는 것이 지구를 지키는 것이고, 생태계를 이롭게 하는 것인가? 인근에 사는 주민들이 결사적으로 반대하는 데도 사업을 밀어붙이는 것이 ‘지역사회에 공헌’하는 것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산업폐기물 사업에 뛰어든 SK 등 대기업들이 하고 있는 행태를 보면 전형적인 ‘그린워싱(Greenwashing)’이다. 실제로는 환경을 오염시키는 일을 하면서, ‘친환경’으로 포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폐기물 처리의 원칙부터 확립해야

산업폐기물이 발생하는 이상, 어딘가에서 처리를 해야 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이것을 민간기업의 돈벌이 수단으로만 맡겨놓을 것인지는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생활폐기물 처리는 지방자치단체가 책임지도록 돼 있는데, 산업폐기물은 민간업체들에게 맡겨져 있는 구조는 납득하기 어렵다.

이 구조에서는 더 많은 폐기물이 발생해서 더 많이 묻고 소각하면, 민간업체들이 더 많은 이윤을 벌어들이게 된다. 이런 식으로 해서는 산업폐기물 양을 줄이는 것도 제대로 될 수 없다. 대한민국에서 발생하는 전체 폐기물의 90% 가까이가 산업폐기물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정부가 손 놓고 있으면서, 국민들에게 생활폐기물을 줄이라고 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게다가 산업폐기물 업체가 제대로 사후관리를 못하거나 환경오염을 일으키면, 결국 국민세금을 들여서 문제를 수습해야 한다. 충북 제천의 산업폐기물매립장에서 발생한 사고를 국민세금 100억원 가까이 들여서 복구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런 사례가 전국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또한 어느 한 군데에서 산업폐기물 처리 인·허가를 받으면 해당 지역뿐만 아니라 전국의 폐기물을 다 가져올 수 있는 것도 심각한 문제이다. 그러다 보니 폐기물이 별로 발생하지도 않는 농촌지역에까지 산업폐기물이 몰려들고 있다. 생활폐기물에는 적용되는 ‘발생지 책임의 원칙’이 유해성이 더 강한 산업폐기물에는 적용되지 않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뿐만 아니라 산업폐기물 처리시설은 주민감시도 불가능하다. 생활폐기물 처리시설은 주민감시가 가능하도록 법에 규정돼 있지만, 민간기업이 운영하는 산업폐기물 처리시설은 ‘사유지’라는 이유로 주민들의 접근도 불가능하다. 최소한의 투명성과 신뢰성도 보장되지 않는 셈이다.

3월 14일 농촌주민들이 SK·태영·여의도로 간다

산업폐기물 문제가 해결되려면, 결국 대기업들의 행태가 바뀌어야 하고, 정치권이 제 역할을 해야 한다. SK에코플랜트가 추진하는 산업단지와 산업폐기물매립장에 반대하는 충남 예산군 신암면 주민은 ‘SK 같은 대기업이 왜 좋은 제품 만들어서 돈 벌려고 하지 않고, 농촌에 산업폐기물을 묻어서 돈을 벌려고 하느냐’고 말한다. 게다가 대기업이 주민들의 반대도 무시하고, 환경 등에 대한 우려도 무시하면서 사업을 밀어붙이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도 어긋나는 것이다.

또한 산업폐기물을 둘러싼 문제가 이렇게 심각한데도, 국회가 입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는 것도 큰 문제이다. 울산광역시, 충청남도 같은 지방자치단체도 ‘앞으로 산업폐기물매립장은 공공영역에서 책임지고 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도대체 국회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래서 농촌주민들이 3월 14일 서울로 가서 SK 본사, 태영 본사 앞에서 집회를 가지려고 한다. 이윤만 추구하면서 농촌의 환경과 마을공동체를 위협하고 있는 대기업들의 행태를 규탄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여의도에 있는 거대양당 당사로 가서 산업폐기물 처리의 공공성 확보, 발생지 책임의 원칙 도입, 주민감시권 보장을 요구하는 공동 정책요구안을 전달하려고 한다. 부디 농촌주민들의 이런 목소리가 더 이상 무시당하지 않기를 바란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