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농’을 위한 정치는 어떻게 가능할까?

  • 입력 2024.01.01 00:00
  • 수정 2024.01.01 00:26
  • 기자명 하승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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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수 대표. 변호사 및 공인회계사. 1990년대 중반부터 다양한 시민사회운동에 참여해 왔다. 현재는 농촌·농업·농민을 옹호하는 공익법률단체인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 예산감시운동 단체인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하승수 대표. 변호사 및 공인회계사. 1990년대 중반부터 다양한 시민사회운동에 참여해 왔다. 현재는 농촌·농업·농민을 옹호하는 공익법률단체인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 예산감시운동 단체인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24년 새해가 밝았다. 2023년을 돌아보면, 정치에 대한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2023년 1년간은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언론의 자유’조차 위협받는 한 해였다. 농업과 관련해서도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으나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무산되는 일이 있었다.

대통령의 거부권이 헌법상 보장된 권한이기는 하지만, 쌀값 안정을 위한 다른 실효성 있는 대안을 제시하지도 못하면서 거부권을 행사한다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3년 12월 15일 기준으로 쌀값은 정부가 약속한 80㎏ 기준 20만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다.

오른 생산비 등을 감안하면 80㎏ 기준 20만원을 쌀값 목표치로 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지만, 그마저도 지켜지지 않는 약속이 되고 있는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쌀값 안정’이 아니라 생산비와 적정소득을 보장하는 ‘쌀값 보장’이지만, 정부는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의지도 방안도 없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예산, 그리고 농식품부의 자화자찬

이런 와중에 2024년 농림축산식품부(농식품부) 예산이 국회를 통과했다. 농식품부는 2024년 농식품부 예산이 전년 대비 5.7% 증가했고, 최초로 18조원을 돌파했다고 자화자찬한다. 그러나 과연 이 예산이 어려움에 처한 농업·농촌·농민에게 얼마나 힘이 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다.

소농직불금을 120만원에서 130만원으로 10만원 인상한다고 하는데, 그동안 오른 물가와 생산비 등을 생각하면 이것을 ‘인상’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하다. 재해에 대비한 예산을 늘렸다고 하지만, 점점 더 빈번해지고 강도도 거세지는 재해를 생각하면, ‘과연 이 정도로 대비가 될까?’ 라는 의문이 든다.

전국농민회총연맹은 지난해 9월 정부예산안이 발표됐을 때, FTA 피해보전직불금이 대폭 삭감되고 농산물 수입예산은 늘어나는 등 수입 개방농정을 더욱 노골화하는 예산이라고 비판했는데, 그런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았다.

더 근본적으로 보면, 농식품부 예산은 가짓 수는 많지만 농업·농촌·농민이 처한 현실을 개선할 수는 없는 예산이라는 데 있다. 현실을 직시하고 실질적인 문제해결책을 내놓는 예산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그동안 추락해 온 곡물자급률, 식량자급률이다. 국민의 생존권이 달린 이 지표야말로 농식품부 예산이 과연 효과적으로 사용되고 있는지를 평가할 수 있는 핵심적인 지표라고 할 수 있다.

농식품부는 지난해 4월「2023~2027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 발전계획」을 발표하면서 식량자급률 55.5%, 곡물자급률 27%를 2027년까지 달성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렇게 설정된 자급률 목표를 농식품부 고시 제2023-32호로 고시했다.

「농업·농촌·식품산업 기본법」제14조 제3항에서는 농식품부 장관이 자급률의 목표치를 5년마다 설정·고시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목표는 달성될 리가 없다. 이전의 경험을 보면 그렇다.

농식품부는 2018년에 자급률 목표를 고시하면서, 2022년까지 식량자급률 55.4%, 곡물자급률(사료용 포함) 27.3%를 달성하겠다고 제시했었다. 그런데 실제로는 어떻게 됐는가? 농식품부 통계에 따르더라도, 2021년 식량자급률은 44.4%, 곡물자급률은 20.9%에 불과하다. 자급률은 올라가기는커녕 계속 떨어지고 있다. 이것은 현재까지의 농식품부 예산과 정책으로는 목표한 성과를 결코 달성할 수 없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목표 달성에 실패했다고 해서 책임지는 장관도, 총리도, 대통령도 없다. 그러면서 2024년 농식품부 예산이 좀 증가했다고 해서 자화자찬을 하는 모습은 현재의 정부와 정치에는 별로 기대할 것이 없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오는 4월 총선을 앞두고 ‘농’을 국가정책의 최우선 순위로 하자는 논의가 필요하다. 즉 ‘농’이 정부 정책에서 갖는 우선순위를 높여야 한다. 지난해 12월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본청 앞 계단에서 열린 ‘22대 국회의원 선거 국산 마늘 양파 생산자 3대 공약 요구안 발표 기자회견’에서 전국에서 모인 마늘·양파 생산자들이 총선 공약 요구안을 발표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오는 4월 총선을 앞두고 ‘농’을 국가정책의 최우선 순위로 하자는 논의가 필요하다. 즉 ‘농’이 정부 정책에서 갖는 우선순위를 높여야 한다. 지난해 12월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본청 앞 계단에서 열린 ‘22대 국회의원 선거 국산 마늘 양파 생산자 3대 공약 요구안 발표 기자회견’에서 전국에서 모인 마늘·양파 생산자들이 총선 공약 요구안을 발표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4월 총선, ‘큰 틀의 논의’가 필요

이런 속에서 4월 총선이 다가오고 있다. 농업·농촌과 관련해서도 여러 정책들이 제안되고, 정당들도 공약들을 제시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것조차도 하나의 관성이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지금의 상황은 몇 가지 정책이 추가된다고 해서 해결될 것도 아니고, 아이디어 차원의 공약들로 해결될 것도 아니다. 농식품부가 하는 수백 가지 사업 중에 몇 가지가 추가된다고 한들 그것이 실질적인 대안이 되기는 어렵다.

따라서 큰 틀의 논의가 필요하다. 이번 총선에서 제대로 논의가 되지 못하더라도 선거는 계속 있다. 그렇다면 한 번에 선거 의제가 되지 못하더라도, 계속 문제제기를 하고 공론화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 필자의 생각을 몇 가지 제시하면 아래와 같다.

첫째, ‘농’을 국가정책의 최우선 순위로 하자는 논의가 필요하다. 즉 ‘농’이 정부 정책에서 갖는 우선순위를 높여야 한다. 대한민국의 모든 정책에서 ‘안보’라는 말이 갖는 우선순위를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어떤 정책을 하든 ‘안보’라는 단어가 나오면 앞자리를 내주는 경향이 있다. 어떤 사업도 ‘안보에 지장이 초래된다’고 하면 물러설 수밖에 없고, 예산도 우선배정되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기후위기 시대에, 그리고 대한민국처럼 수도권 집중으로 온갖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상황에서, 농업·농촌 정책이야말로 ‘안보’ 못지않게 최우선의 우선순위를 둬야 할 정책분야일 것이다. 실제로 국가정책의 최우선 순위를 ‘농’에 둔다면 대통령실에 전담 수석도 필요하고, 대통령소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도 대통령이 직접 챙기고 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현재의 농업·농촌 문제를 풀려면, 농식품부의 정책과 예산만으로는 턱도 없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정책에 ‘농’인지적 관점이 반영되는 것이 필요하다. 농업·농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모든 분야의 계획·정책을 수립하고 예산을 편성할 때, 농업·농촌·농민에게 미칠 영향을 미리 분석하고 평가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을 ‘농’인지 정책·예산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를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기본법」에 명시함으로써 법제화하는 것도 필요하다.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도 ‘00군(시) 농인지 정책 조례’ 같은 것을 제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농인지적 관점·정치적 대표성 확보·민주주의 강화 방안 논의돼야

둘째, 농촌·농업의 정치적 대표성을 확보할 수 있는 정치제도 개혁 방안이 논의돼야 한다. 농촌지역 인구가 감소하면서 농촌지역의 경우 몇 개 기초지방자치단체를 합쳐서 국회의원 선거구가 획정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게다가 각 정당의 비례대표 공천조차도 수도권 중심, 도시 중심으로 이뤄지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면서 농업·농촌의 목소리가 정치에 반영되지 못하는 구조가 되고 있다. 특히 현장 농민과 농촌주민의 목소리가 정치에 반영되지 못해 입법이나 정책, 예산이 모두 겉돌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선거제도를 큰 틀에서 바꿔야 한다.

비례성과 다양성이 보장되는 선거제도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농민들의 목소리가 정책에 비교적 잘 반영되는 스위스 같은 국가는 전면적인 비례대표제 선거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유럽의 많은 국가가 그렇고, 유럽연합 의회도 전면적 비례대표제 선거제도이다.

국회의원만이 아니라, 지방의회 선거도 비례성(표의 등가성)이 보장되는 선거제도로 바꿔야 한다. 그래야 농업·농촌의 목소리가 정치에 반영될 수 있다.

셋째, 농업·농촌분야 정책결정 과정의 민주주의를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이 논의돼야 한다. 농식품부나 지방자치단체에 각종 위원회가 있지만, 농민들과 농촌주민들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구조이다.

이명헌 교수(인천대 경제학과)가 2023년「녹색평론」겨울호에 쓴 글에 따르면, 스위스의 경우에는 4~5년 단위로 연방정부가 중기적인 농정계획을 세울 때에 초안을 공개해서 농민단체는 물론이고 농업·식품·환경 문제에 관심을 가진 모든 단체와 개인들이 의견을 표명할 수 있게 하고 있다고 한다.

2022~2025년에 적용될 계획의 준비단계에서는 무려 378개 기관의 의견과 3,419건의 개인 의견이 표명됐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스위스 정부가 계획을 확정해서 보고서를 발표할 때에 그 단체와 개인들이 표명한 의견을 정리하여 제시하고, 그 각각에 대해서 어떻게 반영했는지, 반영하지 못한 경우에는 왜 하지 못했는지를 밝힌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에서도 이 정도로 민주적인 과정을 밟아서 계획을 수립하고 정책을 결정해야만, 정책의 획기적인 변화와 질적 향상이 가능할 것이다.

또한 농촌의 난개발을 막고 농촌지역의 인구증가와 활성화를 도모하기 위해서는 읍·면 자치권의 부활도 필요하다. 1961년 이전까지 실시되던 읍·면 자치가 폐지된 것이 현재 농촌지역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요한 원인이다. 이 문제도 4월 총선부터 공론화가 필요하다.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서는 열린 논의가 가능할 것이다.

물론 4월 총선에서 농업·농촌과 관련된 세부적인 정책도 논의돼야 한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을 봤을 때, 세부정책과 함께 큰 틀의 논의도 있어야 ‘큰 틀의 변화’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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