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장을 맛보다㊱] 곡성의 사랑방, 기차마을오일장

  • 입력 2024.03.24 18:00
  • 수정 2024.03.24 18:19
  • 기자명 고은정 제철음식학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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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보다 상인이 더 많은 곡성오일장. 사진 류관희 작가
손님보다 상인이 더 많은 곡성오일장. 사진 류관희 작가

 

 

고은정 제철음식학교 대표
고은정 제철음식학교 대표

곡성은 인구 2만명 정도의 작은 군 단위 지역이며 심청전의 발상지로 알려져 있다. 옆동네 남원시의 춘향전은 실속은 없어도 브랜드파워가 상당하지만, 곡성의 심청전은 실속도 없고 브랜드파워도 약한 형편이다. 춘향전과 남원은 사람들에게 제법 잘 알려져 있지만 그렇다고 춘향과 관련된 스토리를 만나러 외지에서 오는 일은 거의 없다. 옆동네 곡성의 심청이는 더욱 그렇다. 이름을 건 축제기간을 제외하면 조용한 작은 마을 같은 느낌이 든다. 늘 그랬다.

곡성오일장은 기차마을전통시장이라 이름 붙은 곳에서 열린다. 시장의 규모와 시설은 여느 지역의 시장들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크고 훌륭하다. 그런 곡성을 가기로 마음먹고 나니 장터에 사람들이 붐비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래서 혹시나 하고 조금 이른 시간에 갔다. 그러나 상인들도 덜 보였고 물건을 사러 온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이러면 괜히 기운이 빠진다.

사진작가와 아침이나 먹고 움직이자며 시장 안에 있는 국밥집으로 갔다. 상인들이 손님으로 두세 테이블 앉아 있다. 오래전 시장의 모습이 사진으로 걸린 식당이다. 주방에서 음식을 차려내는 나이 든 남자의 노쇠한 움직임이 마치 오일장의 모습과 닮아있는 것 같아 서글픈 생각에 입맛이 쓰다. 몇 술 뜨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시장 안이 궁금해서 식당을 나왔다. 시장 안의 모습은 여전히 한산하다.

 

 

곡성오일장에서 오래된 기계로 붕어빵을 굽던 자그마한 노인. 믿기지 않아 다시 여쭈어도, 붕어빵 가격은 '3마리 1000원'이다. 사진 류관희 작가
곡성오일장에서 오래된 기계로 붕어빵을 굽던 자그마한 노인. 믿기지 않아 다시 여쭈어도, 붕어빵 가격은 '3마리 1000원'이다. 사진 류관희 작가

 

 

입구에 체구가 아주 작은 노인이 붕어빵을 굽고 계신다. 아주 오래된 기계는 한 마리를 구우면 기계를 아래로 돌리는 방식이라 붕어빵이 천천히 구워져 나온다. 한 마리에 얼마냐고 여쭈니 세 마리에 1000원이라고 하신다. 믿기지 않아 다시 여쭌다. 세 마리 1000원이라신다. 1000원을 내고 세 마리를 사서는 사진작가 한 마리, 나 한마리, 옆에서 나물 파시는 어르신 한 마리로 나눈다. 돈 버실 생각은 없고 소일 삼아 나오신 걸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다면 재미있는 일인데 그건 잘 모르겠다.

봄을 느끼는 뭔가를 사고 싶은데 아직 마땅하지 않은 계절이다. 줄기가 붉은 머윗잎과 쑥 정도만 눈에 보인다. 그리고는 대부분 빨갛고 노란 꽃들과 묘목, 그리고 종자로 쓰일 뿌리채소 등이다. 곡성의 대표작물인 토란도 보인다. 심을 땅이 없으니 그냥 지나친다. 파장 직전 같은 오일장을 휘휘 돌자니 그릇가게 사장님이 커피 마시고 가라고 자꾸 붙드신다. 머뭇거리는 나에게 참새방앗간 같은 곳이니 부담가지지 말라 하셔서 들어가 인스턴트 커피를 한 잔 얻어마셨다. 내가 커피를 마시고 있는 동안 정말 거짓말처럼 두 분이 오셔서 인사를 건넨 뒤 커피를 타서 마시고는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나가신다.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곡성장의 사랑방, `60년 전통 안성미곡'을 운영하는 모녀. 사진 류관희 작가
곡성장의 사랑방, `60년 전통 안성미곡'을 운영하는 모녀. 사진 류관희 작가

 

 

보폭을 맞추며 사진을 찍던 사진작가의 발길이 멈춘 곳으로 나도 간다. 안성미곡이라 이름 붙인 곡물상이다. 주인이 누구인지 모르겠다. 저마다 주인처럼 보이는 분들이 앉아 조금 전에 내가 그릇가게에서 마시던 것 같은 인스턴트커피를 마시고 계셔서다. 이 곡물상은 그릇가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자기 가게처럼 들어와 자연스럽게 커피를 타서 마시고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나간다. 그리고 다시 돌아올 때는 손에 붕어빵 한 봉지나 사탕 한 봉지를 무심하게 던지고 간다. 커피에 대한 인사처럼.

안성미곡은 3대에 걸쳐 70년을 이어온 미곡상이란다. 할아버지, 아버지에 이어 오십 중반 미혼의 딸이 운영하고 있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커피만 마시고 가는 것은 아니다. 아침 일찍 나오느라 빈속을 이곳에서 채우고 가신다. 장이 열리는 날마다 그런 손님들을 위해 늘 가래떡을 뽑아다 놓기 때문이다. 곡성장을 오가는 분들이 가져다 놓는 크고 작은 곡물자루들을 받아놓고 팔아주는 일도 하고 있다. 여러 가지로 울컥하게 하는 곳이라 미곡상을 운영하는 모녀의 사진을 몇장 찍었다. ‘쉬었다 가는 간이역 곡성’이라는 표현에 어울리는 곳이다. 장에 왔다 지친 분들이 동네 사랑방처럼 쉬었다 가는 안성미곡은 평일엔 터미널 근처의 가게에서 만날 수 있다고 한다.

 

 

곡성오일장의 준치들. 사진 류관희 작가
곡성오일장의 준치들. 사진 류관희 작가

 

 

곡성오일장에서의 가장 큰 수확은 싱싱한 준치를 만난 일이다. 사실인지 확인을 할 수는 없지만 이곳에서는 제사상에 없으면 안 되는 생선이라 한다. 어릴 때 먹었던 희미한 기억을 떠올리며 몇마리 샀다. 돌아가면 그 기억을 더듬어 조리해볼 생각에 약간 상기되어 귀가를 서둘렀다. 오일장은 오늘 산 준치 같다. 갈 때마다 잊고 지내오던 형체를 알 수 없는 이상한 그리움 같은 것이 스멀스멀 올라와 형체를 찾아가는 경험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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