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봉준·김개남·손화중

  • 입력 2023.11.19 18:00
  • 수정 2023.11.19 18:13
  • 기자명 글 이대종, 판화 박홍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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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준, 2014, 52×42cm, 목판화
전봉준, 2014, 52×42cm, 목판화
김개남, 2014, 75×43cm, 목판화
김개남, 2014, 75×43cm, 목판화
손화중, 2014, 50×45cm, 목판화
손화중, 2014, 50×45cm, 목판화

전봉준, 김개남, 손화중.

세 분의 초상을 오래도록 들여다본다. 무릇 혁명에 있어 지도자의 역할은 무엇일까? 이분들은 어떻게 동학농민혁명 3대장군의 반열에 오르고 시공을 뛰어넘어 역사 속에 살아남게 되었을까?

어찌 이분들 뿐이겠는가? 5대 장군, 10대 장군, 이름도 성도 없이 쓰러져간 무수한 농민군들을 그려본다. 스러져가는 한 시대와 더불어 기꺼이 사라짐으로 하여 새 시대를 열어젖힌 사람들, 자신의 흔적을 끊임없이 지워가며 온몸을 불살라 오히려 선명하게 역사에 각인된 혁명가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지조를 잃지 않았기에 유해조차 수습할 수 없었던 헛묘의 주인들. 강경파니 온건파니, 심지어 NL이니 PD니 하는 삿된 잣대와 논쟁을 거둬들일 일이다.

여기 김남주 시인의 유고시 한 편으로 필설로 어찌할 수 없는 마음을 대신한다. 

 

역사에 부치는 노래

김남주

빛이 빛을 잃고 어둠 속에서

세상이 갈 길 몰라 헤매고 있을 때

섬광처럼 빛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어둠 속에서 어둠의 세계와 싸우며

밝음의 세계를 열었으니

역사는 그들을 민중의 지도자라 부르기도 하고

시인은 그들을 하늘의 별이라 노래하기도 한다

 

소리가 소리를 잃고 침묵 속에서

세상이 무덤처럼 입을 봉하고 있을 때

천둥처럼 땅을 치고 하늘을 구르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침묵 속에서 세계와 싸우며

하늘과 땅을 열었으니

역사는 그들을 민족의 선각자라 부르기도 하고

시인은 그들을 대지의 별이라 노래하기도 한다

 

오늘밤 우리는 여기 모였다 어둠을 밝히고

역사의 지평선으로 사라져간 그들을 부르기 위해

오늘밤 우리는 여기 모였다 침묵을 깨치고

강 건너 저편으로 사라져간 그들을 노래하기 위해

... ...(중략)

그들은 지금 우리와 함께 여기 있다

민중이 해방을 요구하고

나라가 통일을 요구하고

민중이 자유와 평등을 요구하고 있는 이 시대에

보라 가진 자들에게는 눈에 가시였으되

민중에게는 어둠을 밝히는 하늘의 별이었던 그들을

보라 나라님에게는 역적이었으되

백성에게는 어깨동무하고 전진하는 이웃이었던 그들을

그들은 살아 있다 지금 여기 하늘과 땅 사이에

우리의 가슴에 핏속에 살아 숨 쉬고 살아 움직이고 있다

그들의 눈은 아직도 섬광처럼 번뜩이며

어둠의 세계에서 작당하는 권모와 술수의 정치를 쏘아보고 있다

그들의 입은 아직도 천둥처럼 땅을 치고 하늘을 구르며

썩어 문드러진 부패한 관리의 모가지를 요구하고 있다

그들은 아직도 붓과 낫과 창을 거머쥐고

외적의 무리와 맞서며 민중들의 단결을 호소하고 있다

 

밤이 깊다 날이 새기 전에

지금 이곳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들의 혼을 가슴 깊이 들이켜고

우리의 입과 팔다리로 육화시키는 일이다

어제의 그들이 꿈꾸었던 사상의 세계를

오늘의 우리가 꽃으로 피우는 일이다

그들이 못다 부른 노래를 우리의 입으로 부르며

그들이 남기고 간 무기를 우리의 손으로 들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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