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장을 맛보다㉞] 관광객의 소비성지, 제주 민속오일장

  • 입력 2024.01.21 18:00
  • 수정 2024.01.21 18:45
  • 기자명 고은정 제철음식학교 대표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은정 제철음식학교 대표
고은정 제철음식학교 대표

동백꽃 진 자리가 꽃빛으로 물든다는 소리가 들리면 나는 제주엘 가고 싶어 온 신경이 제주에 가 있곤 했다. 코로나19를 겪으며 4년을 가보지 못하고 지낸 곳이라 그 갈증이 더 심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이번엔 무턱대고 제주의 오일장을 가기로 정했다.

완도에서 떠나는 배에 차를 실고, 6층 높이의 배가 물살을 가르기 시작하고서야 비로소 제주행이 현실이 됐음을 실감했다. 제주는 주로 하늘길로 다니지만 뱃길을 이용해 가는 재미도 꽤 괜찮다. 완도에서 제주를 가는 배는 한밤중 2시 30분에 출발하는 배편도 있어 제주에서의 하루를 길게 쓸 수 있다. 나는 오후 3시에 출발하는 배를 타고 전날 들어가 제주를 서성였다.

오일장을 떠도는 우리는 늘 그렇듯 아침 9시에 만나 오일장 안이나 근처의 식당에서 아침을 먹는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어서 오일장 가는 길에 만난 식당에서 보말국수와 죽으로 배를 채우고 씩씩하게 민속오일장으로 들어갔다. 제7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들어가면 몇 발 떼지 않아 갈치, 옥돔 등 겨울에 한창인 해산물들이 눈길을 끈다. 제주가 아니면 만나기 쉽지 않은 생옥돔부터 낚시로 잡았지만 웬만한 남자 키를 훌쩍 따라잡는 갈치도 있다.

 

 

1월의 제주 민속오일장엔 옥돔, 갈치, 고등어, 방어, 삼치가 지천이다. 사진 류관희 작가
1월의 제주 민속오일장엔 옥돔, 갈치, 고등어, 방어, 삼치가 지천이다. 사진 류관희 작가

 

 

갈치를 사서 동료집과 친정집에 택배로 보냈다. 꼼꼼하게 손질해서 포장을 하는 모습을 보니 다음에는 전화로 주문해도 좋겠다싶다. 생옥돔을 사고 싶은 마음은 꾸욱 누른다. 바로 집으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참는 것이다. 요즘 한창 수확하고 있는 무를 옥돔과 함께 맑은국으로 끓이면 얼마나 맛있을까하는 생각만 하다가 자리를 뜬다. 겨울엔 기름진 고등어도 맛있는데, 의외로 노르웨이산이 여기저기서 팔리고 있다. 대방어와 대삼치도 빼놓을 수 없는 겨울 제주의 생선들이다.

횟감으로 만나고 싶었던 쥐치는 보이지 않아 아쉬웠다. 또 천천히 움직이다 보니 큰 쏨뱅이 비슷한 붉은 생선도 무더기로 쌓여있다. 이름이 무엇인지 여쭈니 우럭이라고 하신다. 육지에서 흔히 우럭이라고 부르는 검은 빛깔의 조피볼락과는 영판 색이나 모양이 달라 다시 한 번 여쭤도 여전히 제주의 우럭이라신다. 공부는 해도 해도 끝이 없는 것 같다.

 

 

검은 현무암토가 묻은 제주 구좌의 당근들. 사진 류관희 작가
검은 현무암토가 묻은 제주 구좌의 당근들. 사진 류관희 작가
논이 적은 제주에서 나오는 귀한 잡곡들. 사진 류관희 작가
이젠 제주에서도 1월에 김장을 해요. 사진 류관희 작가

 

 

제주는 웬만하면 푸른 채소가 늘 밭에서 자라므로 김장을 하지 않던 곳이다. 그러다 제주살이를 하는 육지 사람들의 숫자가 늘면서 김장을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그래서인지 1월의 오일장엔 김장거리들도 꽤 보인다. 그래도 겨울의 제주엔 육지에서 만날 수 없는 뿌리채소인 당근, 무, 콜라비, 비트 등이 지천이다.

전국의 오일장을 돌면서 늘 애정을 가지고 바라보는 풍경은 직접 생산한 농산물이나 해산물, 임산물들을 들고 나오시는 어르신들의 모습이다. 그러나 민속오일장은 할머니장터가 별도의 구획에 들어있다. 애써 찾아가서 만난 모습은 내가 찾던 그 모습이 아니었다. 곧 사라지겠구나 하는 느낌이다. 빙떡 부쳐 파시는 어른들도 안 보이고, 제주의 냄새를 맡을 수 없는 붕어빵이나 호떡, 떡볶이, 튀김 같은 것들이 판을 치고 있었다.

 

 

지나가던 발걸음을 만감류 향들이 잡는다.
지나가던 발걸음을 만감류 향들이 잡는다. 사진 류관희 작가

 

 

뭐니 뭐니 해도 제주의 겨울은 수확 시기가 늦은 감귤류, 한라봉, 홍매향, 황금하귤 등이 꽃이다. 이곳에서는 넘쳐나는 만감류를 시식하는 재미가 있다. 택배 시스템이 잘 돼 있어 받을 주소만 알려드리면 무거운 것 들고 다니지 않고 하루나 이틀이면 집에서 편히 받아먹을 수 있으니 괜찮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생산량을 자랑하는 메밀이 있지만 제주의 오일장에서는 제대로 된 메밀음식을 만날 수 없어 속상했다. 그러나 제주 흑돼지국밥은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계란을 팔고 있는 양계 2세대 청년은 제주 돼지에 밀려 제주 닭은 명함도 내밀 수 없다고 한탄을 하니 여기서도 다양한 인생사들을 만난다. 이 무렵에 전국 어디서도 보기 어려운 모종상을 볼 수 있는 건 또 다른 묘미다.

어떤 장터에나 물건 팔던 손을 잠시 멈추고 한 끼를 때우는 음식은 허술하다.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한, 그러나 빠르게 먹을 수 있는 것이면 된다. 그래서 라면이나 국수 한 그릇이 사랑받는 것 같다. 제주의 오일장에서도 다르지 않은 그분들의 점심을 본다. 장터를 한 바퀴 다 돌고서 나는 메밀음식을 점심으로 먹고 싶어서 장터를 떠나왔다.

제주민속오일장은 2일, 7일로 끝나는 날 선다. 깊어지는 겨울에 육지에서 만날 수 없는 먹거리를 만나고 싶다면 무조건 떠나보라고 권한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