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이후, 농촌 주권 찾기 운동이 필요하다

  • 입력 2024.04.01 00:00
  • 수정 2024.04.01 00:01
  • 기자명 하승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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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수 대표. 변호사 및 공인회계사. 1990년대 중반부터 다양한 시민사회운동에 참여해 왔다. 현재는 농촌·농업·농민을 옹호하는 공익법률단체인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 예산감시운동 단체인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하승수 대표. 변호사 및 공인회계사. 1990년대 중반부터 다양한 시민사회운동에 참여해 왔다. 현재는 농촌·농업·농민을 옹호하는 공익법률단체인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 예산감시운동 단체인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글을 쓰는 마음이 편치 않다. 이번 총선에서 농업·농민단체들은 정책제안과 정책협약도 하고 있고, 소수이지만 농민·농촌을 대표하고자 하는 후보나 정당들이 열심히 뛰고 있다. 필자가 활동하는 <공익법률센터 농본>도 지난달 14일 산업폐기물 문제로 피해를 입고 있는 농어촌주민들과 상경집회를 하고, 거대양당을 비롯한 정당들에게 정책질의 및 정책요구서도 전달했다.

구도 중심 선거에서 ‘농’의 자리는?

그러나 솔직히 총선 이후에 농촌·농업·농민들의 현실이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크지 않다. 선거에서 농촌·농업·농민에 관한 얘기는 주변적인 의제로 취급될 뿐이고, 선거 이후에도 그 점은 다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잘 보여주는 것이 유력 정치인들의 입에서 ‘농’에 관한 얘기가 나오지 않고, 주요 언론들에서도 ‘농’에 관한 정책은 논평이나 토론의 주제가 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가 얘기는 유력 정치인들의 입에서 나오지만, 뛰어오른 생산비로 인해 농민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에 관한 얘기는 잘 나오지 않는다. 대파 가격 얘기는 나오지만, 기후위기로 인해 농사짓기 어려워지고 있는 농민들에 관한 얘기는 잘 나오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사실 농촌·농업·농민 정책만 그런 것도 아니다. 대부분의 중요한 정책의제들이 선거에 별로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이번 총선의 주된 이슈는 ‘심판’이다. 거대양당은 서로 상대방을 심판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상대방의 잘못을 비판하는 것이 선거 캠페인의 주를 이룬다. 그 속에서 정책의제들은 설 자리를 잃었다.

돌아보면 이번 총선만 그랬던 것도 아니다. 흔히 선거전문가들은 한국의 선거에서 선거결과를 좌우하는 것은 ‘구도’라고 얘기한다. ‘구도’가 선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80~90%에 달한다고 얘기하는 전문가도 있다. 여기서 말하는 ‘구도’라는 것은 선거를 지배하는 분위기, 또는 유권자들에게 전달되고 유권자들이 받아들이는 선거의 성격이라고 볼 수 있다. ‘정권심판이냐 아니냐’, ‘정권교체냐 아니냐’라는 식으로 표현되는 것이 ‘구도’인 것이다.

이런 ‘구도’ 중심의 선거는 거대정당 중심의 선거가 낳은 결과물이라고도 볼 수 있다. 양당제 국가의 선거에서, 거대정당은 상대방의 잘못을 잘 파고들고 비판하기만 해도 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 굳이 애써서 정책을 고민하고 연구하고 개발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언론도 거대양당 중심으로 스포츠 중계하듯이 보도를 한다. 그 속에서 정책 얘기는 실종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구도’ 중심의 선거가 반복될수록 국민들의 삶은 힘들어질 가능성이 높다. 선거라는 중요한 정치적 이벤트를 계기로 국민들의 삶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책이 논의되고, 선거 후에는 그 정책이 실행돼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상황을 보면, 그나마 단체들이 노력해서 정책협약을 맺고 선거공약으로 약속받아도 선거가 끝나면 잘 지켜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국가의 잘못된 법과 정책을 바로잡고, 지역 내부에서도 예산과 조례, 지역정책을 바꿔서 농촌주민들의 삶을 개선해야 한다. 군청의 권한과 예산을 면과 읍으로 분산시키는 것도 필요하다. 이것을 ‘농촌 주권 찾기 운동’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2022년 6월 1일 충남 서산시 운산면 원평리 마을창고에 마련된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운산면제2투표소에서 투표를 마친 주민들이 투표소를 나서고 있다. 한승호 기자
국가의 잘못된 법과 정책을 바로잡고, 지역 내부에서도 예산과 조례, 지역정책을 바꿔서 농촌주민들의 삶을 개선해야 한다. 군청의 권한과 예산을 면과 읍으로 분산시키는 것도 필요하다. 이것을 ‘농촌 주권 찾기 운동’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2022년 6월 1일 충남 서산시 운산면 원평리 마을창고에 마련된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운산면제2투표소에서 투표를 마친 주민들이 투표소를 나서고 있다. 한승호 기자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얼마 전에 보건의료 분야 단체에서 이런 주제를 놓고 강의를 한 적이 있었다. 참석자들은 국민들의 건강과 직결된 보건의료 정책도 총선시기에 제대로 논의되지 않는 현실에 대해 안타까움을 갖고 있었다. 필자가 제안한 것은 결국 정치제도, 특히 선거제도를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정책이 선거에서 중요하게 다뤄질 수 있는 환경이 돼야 정당과 후보자들이 정책을 중심으로 선거를 치르게 될 것인데, 지금의 선거제도에서는 그럴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정당들이 정책을 중심으로 선거를 치르게 하는 방법은 결국 거대양당이 안일하게 정치를 할 수 있는 기득권 구조를 깨는 수밖에 없다. 그 방법은 다당제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이미 민심은 다당제 구조를 원하고 있다. 문제는 지역구에서 승자독식의 방식으로 국회의원을 뽑는 현재의 선거제도가 양당제를 지탱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양당제 구조를 깨고 다당제 구조를 만들 수 있는 선거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그 대안으로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논의돼왔지만, ‘준연동형’이라는 반쪽짜리 제도가 돼 버렸고, 그나마의 효과도 위성정당으로 인해 사라진 상태이다.

그래서 총선 이후에는 새롭게 선거제도 개혁 논의를 할 수밖에 없다. 선거제도 개혁의 또 다른 대안은 덴마크, 스웨덴 등이 채택하고 있는 권역별-개방명부 비례대표제이다. 이 방식은 정당 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배분하므로, 다양한 정당들이 국민들의 삶에 도움이 되는 정책을 놓고 경쟁하는 구조를 만들 수 있다. 상대방의 잘못만 탓하다가는 정당 지지를 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지금처럼 전국을 단위로 비례대표 정당투표를 하는 것이 아니라, 각 정당이 시·도를 기본단위로 하는 권역별로 비례대표 명부를 작성하게 하고, 유권자들은 그 명부를 보고 정당만이 아니라 후보자까지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각 권역별로 정당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배분하고, 정당 내부에서는 그 정당의 후보자 중에 유권자들의 선택을 많이 받은 순서대로 국회의원이 되게 하면 된다.

이렇게 하면 지금처럼 지역을 잘게 쪼개서 국회의원을 뽑을 필요가 없다. 즉 소선거구제 방식의 지역구 선거는 사라지게 된다. 대신에 전라남도 권역, 경상북도 권역에서 각 정당이 비례대표 명단을 내고, 유권자들이 그 명단을 보고 정당도 선택하고 후보도 선택하면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국회의원들이 선출된 권역을 대표하므로 지역대표성도 확보된다.

이런 방식은 이미 덴마크, 스웨덴 등에서 효과가 검증된 방식이다. 물론 이런 선거제도 개혁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지금의 양당제 구조하에서 삶이 힘들어지고 있는 수많은 국민들이 목소리를 낼 때에 가능한 일이다.

농촌 주권 찾기 운동이 필요

선거제도 개혁은 국민 대다수의 삶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지만, 농촌지역에서만 필요한 운동도 있다. 도시의 식민지처럼 되고 있는 농촌주민들의 주권을 찾는 운동이다. 지금 농촌은 도시를 위해 전기도 공급하고 먹거리도 공급하면서, 폐기물과 각종 유해시설들을 받아들이도록 강요당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농촌의 환경과 마을공동체가 파괴되고 있다. 또한 농업과 같은 농촌지역의 기반산업은 외국 농산물 수입과 농업을 홀대하는 정부 정책에 의해 불안한 상황에 놓여 있다.

농촌 내부의 문제도 있다. 거대정당의 공천만 받으면 당선이 보장되는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들은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많은 농촌지역에서는 일당지배로 인해 정치적 경쟁이 상실되고, 지방선거 때에도 지역정책이 제대로 논의되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가 삶의 질 저하와 인구유출, 지역의 침체로 나타나고 있다. 농촌지역 지방자치단체에서 벌어지는 예산낭비와 부패는 농촌주민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 사용돼야 할 공적인 재원이 낭비되게 하고, 농촌 환경을 악화시키고 있다.

군청으로 집중된 권한과 재정도 문제이다. 면별로, 읍별로 자기 지역에 맞는 자치를 하면서, 의료·교육·교통·돌봄·문화·주택 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인구도 유입되고 농촌지역이 활성화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읍·면의 자치권 확대가 필수적이다. 이것은 도시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느끼지 못하는 문제일 수밖에 없다. 농촌주민들이 요구해야만 실현될 수 있는 일들이다.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면, 농촌지역에서부터 주민들이 주권을 찾기 위한 운동이 시작돼야 한다. 그래서 국가의 잘못된 법과 정책을 바로잡고, 지역 내부에서도 예산과 조례, 지역정책을 바꿔서 농촌주민들의 삶을 개선해야 한다. 군청의 권한과 예산을 면과 읍으로 분산시키는 것도 필요하다. 이것을 ‘농촌 주권 찾기 운동’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답답한 국가정치와 지역정치를 보며 한숨을 쉬고 있는 것보다는 자기가 사는 지역에서부터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주권자다운 태도일 것이다. 더구나 농촌주민들이 스스로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면 농촌과 농업을 살릴 방법이 없다. 더이상 늦기 전에 뭐라도 해 봐야 하지 않을까?

기대할 것이 별로 없는 총선을 보면서, 총선 이후에 선거제도 개혁과 ‘농촌 주권 찾기 운동’으로 새로운 변화가 일어날 것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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