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장을 맛보다㉜] 밥 대신 막걸리점심만 보였던 부여오일장

  • 입력 2023.11.19 18:00
  • 수정 2023.11.19 18:11
  • 기자명 고은정 제철음식학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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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오일장의 전경.

 

고은정 제철음식학교 대표
고은정 제철음식학교 대표

백마강, 낙화암 등 문화유산의 답사지로 기억되던 부여는 이제 내 기억에서 사라지고 없는 것 같았다. 다른 지역과 차별화되는 식재료나 특별한 음식 등으로 분류되어 언젠가는 꼭 가봐야 할 곳으로만 기록되고 남아 있었다. 오일장에도 꼭 가봐야지 하는 생각만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 찾게 된 부여오일장은 볼거리가 많지는 않았지만 나에게 또 하나의 잊지 못할 추억을 남기는 귀한 시장으로 남았다.

이번 부여장에선 혹시라도 표고목을 이용해 재배한 질 좋은 생표고버섯이나 건조표고버섯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며 갔지만 허탕을 쳤다. 엄청난 양의 생표고버섯이 있었지만 한 농가만의 것이었고, 썰어 말린 것 조금만 있을 뿐 정작 내가 찾는 말릴 만한 생표고버섯이나 잘 마른 온전한 표고버섯은 보이지 않았다. 그 판매자의 말을 빌자면 다른 농가는 자신들과 경쟁이 안 되어 시장에 나올 수 없다고 했다. 정말 그런지 궁금하여 봄에 다시 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본격적인 김장시장은 11월의 끝무렵에나 시작된다.
본격적인 김장시장은 11월의 끝무렵에나 시작된다.

 

 

김장철이지만 배추나 무, 그 외 채소들이 예상보다 많지 않았다. 상인들에게 여쭈니 11월 마지막 주 주말에 김장시장이 선다며 아직은 김장시장이라고 하기 어렵다고 하셨다. 강경이 가까우니 젓갈이 많을 줄 알았는데 그도 그렇게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보령이나 웅천, 서천 등이 가까우니 신선한 해산물이 많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냥 그저 그랬다. 이맘 땐 어느 시장에서나 흔한 ‘동백하’라는 이름의 생새우도 보기 힘들다. 색깔이 미세하게 누렇게 변한 해동새우만 여기저기서 보인다. 선뜻 지갑을 열 수 없다. 아마도 김장시장이 아니라서 그런가 보다.

 

 

부여장에서 처음 만난 '쫄장긔'
부여장에서 처음 만난 '쫄장긔'

 

 

그래도 어디서도 한 번도 본 적이 없던, 다리에 알록달록한 스타킹을 신은 것 같은 게를 만났다. 파시는 분의 소리를 귀에 들리는 그대로 옮기자면 ‘쫄장긔’다. 충청도에선 게를 ‘긔’라고 발음한다. 해안가 바위를 들추면 보인다는데 작아서 졸장부 같아 그렇게 부르는가 보다. 다음에 부여장에 오면 한 바구니 사다가 간장에 조려보고 싶었다. 이번엔 바로 서울로 올라가야 해서 지갑을 열고 싶은 손을 잡아 묶어야 했다.

장터엘 가면 이런저런 궁금증이 너무 많이 생긴다. 그걸 해소하기 위해 질문도 해야 하고 기록으로 남길 사진도 찍어야 해서 야쿠르트를 30개 정도 샀다. 장소를 옮길 때마다 하나씩 드리려고. 작은 것인데도 감사해 하시면서 협조를 아끼지 않으셨다. 더구나 일면식도 없는 내가 드리는데 의심하지 않고 잘 드셔서 좋았다. 동행중인 사진작가를 예쁘다고 쓰다듬으시는 할머니는 친구들 것까지 알뜰히 챙기셨다. 그것도 재미나고 좋았다. 아직은 살 만한 세상이라고 느끼게 하였다. 그러다 발걸음을 무겁게 만드시는 분을 만나서는 세상살이가 뭐 이런가 하면서 마음이 불편해 발걸음도 무거워지고. 부세를 소금에 절여 고추씨를 잔뜩 얹어 파시는 분이 관심을 가지는 남자에게 보리굴비라며 사가라고 하셔서다. 가끔 만나지는 이런 장면에서 나의 오일장 풍경이 멈춰있지 않기를 바라며 자리를 떴다.

 

 

 

 

 

몇 걸음 옮겨오니 끝물인 가지와 호박, 호박잎, 고추, 고춧잎 등이 올망졸망 귀엽게 앉아 있었다. 어디서 저런 예쁜 색이 왔는지 궁금한 가지각색의 콩들도 사랑스러웠다. 그래서 걸음을 멈추고 들여다보다가 할머니께 덜미를 붙잡혀 호박잎을 샀다. 크지 못하고 시장까지 불려 나온 작은 호박들이 호박잎 사이사이에서 보였다. 된장국 끓이면 맛있겠다며 같이 먹을 밥에 놓아먹으면 좋을 호랑이콩도 한 바구니 샀다. 서울 들러 내려가도 괜찮을 것만 조금씩 샀다.

 

 

시장건물 사이로 나란히 앉아 좌판을 펼친 할머니들.
시장건물 사이로 나란히 앉아 좌판을 펼친 할머니들.

 

디귿자형 건물을 끼고 도는데 골바람이 장난이 아니게 불었다. 그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찬 바닥에 오랜 시간 앉아 계시는 상인들이 눈에 들어와 힘들었다. 그런 중에 몇 분이 모여 앉아 알타리 김치와 순대 등을 안주 삼아 막걸리를 마시고 계셨다. 막걸리가 혈관을 타고 빠르게 돌아 체온을 올리는데 도움이 되면 좋을 텐데. 여쭈어보니 밥 생각도 없고 하여 그냥 대강 때우는 점심이라고 하셨다. 오래전 외할머니가 떡을 팔러 다니시던 모습과 겹쳐져 코끝이 찡해졌다. 그래서 거기 같이 앉아 한 잔 얻어 마시면서 손으로 알타리 김치도 집어먹으며 너스레를 떨다 일어섰다. 남은 야쿠르트를 봉지째 두고 자리를 떴다.

쪽파를 다듬어 까던 손, 가려움이 딱지로 앉은 노파의 토란 까던 손, 덤을 넉넉히 담던 손, 순대맛을 보라며 입에 넣어 주던 손, 막걸리를 부어주던 손 등이 아름답게 남아 다시 가고 싶은 마음을 부여의 오일장에 두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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