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지리산의 가을 본색

  • 입력 2023.11.26 18:56
  • 기자명 최세현 지리산초록걸음 대표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600년 세월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노란 단풍 축제를 이어오고 계신 하동 옥종 청룡리 은행나무 어르신.
600년 세월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노란 단풍 축제를 이어오고 계신 하동 옥종 청룡리 은행나무 어르신.
남명 선생이 말년을 보내신 산천재 옆 은행나무 가로수, 때마침 그 길을 지나는 동네 할머니의 노란 옷과 길바닥에 깔린 은행잎이 ‘깔맞춤’이다.
남명 선생이 말년을 보내신 산천재 옆 은행나무 가로수, 때마침 그 길을 지나는 동네 할머니의 노란 옷과 길바닥에 깔린 은행잎이 ‘깔맞춤’이다.
지리산 둘레길 산청 구간 내리저수지의 메타세쿼이어 단풍, 수면에 투영된 모습을 사진에 담기 위해 바람이 잠잠할 때까지 한참을 기다렸다가 겨우 건진 데칼코마니.
지리산 둘레길 산청 구간 내리저수지의 메타세쿼이어 단풍, 수면에 투영된 모습을 사진에 담기 위해 바람이 잠잠할 때까지 한참을 기다렸다가 겨우 건진 데칼코마니.
숲이 어떻게 바람을 견디며 적응하고 그 생존을 이어가는지를 잘 보여주는 노고단 가는 길, 키 작은 나무들의 단풍 색감이 파스텔톤이었다.
숲이 어떻게 바람을 견디며 적응하고 그 생존을 이어가는지를 잘 보여주는 노고단 가는 길, 키 작은 나무들의 단풍 색감이 파스텔톤이었다.
실상사 공양간 처마에 매달린 곶감, 곶감이 아니라 꽃감이다. 해마다 가을이면 실상사 식구들의 울력으로 저토록 아름다운 설치예술이 만들어진다.
실상사 공양간 처마에 매달린 곶감, 곶감이 아니라 꽃감이다. 해마다 가을이면 실상사 식구들의 울력으로 저토록 아름다운 설치예술이 만들어진다.
경호강과 양천강이 만나는 산청 신안면 두물머리 풍경, 갈대와 저녁놀이 어우러져 가을빛이 강물에 스몄다. 저 수평의 강 또한 지리산의 한 부분인 것을….
경호강과 양천강이 만나는 산청 신안면 두물머리 풍경, 갈대와 저녁놀이 어우러져 가을빛이 강물에 스몄다. 저 수평의 강 또한 지리산의 한 부분인 것을….

지난여름의 긴 장마에 잦은 가을비까지 더해져 올해 지리산의 단풍 농사는 영 시원찮다. 단풍나무류의 단풍은 그 어느 해보다 우중충한 민낯으로 가을을 맞았다.

광합성에 최적화된 초록잎으로 화장을 하고는 햇빛을 열심히 흡수하던 나무들은 이제 동파 방지를 위해 물길을 닫았고 제 몸속에 지니고 있던 본색을 드러낸 뒤 제 가진 것을 하나둘 땅으로 돌려보내면서 긴 월동을 준비한다.

단풍 농사가 흉작인 숲에서도 은행나무가 있어 그나마 지리산의 가을 풍경을 남길 수 있음에 여간 다행스럽지 않다.

하지만 이 은행나무 단풍을 사진으로 남기기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아는 사람들은 다 안다. 은행잎들이 노랑으로 물드는 시기가 해마다 다르고 또 어떤 때에는 밤새 불어닥친 강풍에 그 노랗던 잎들이 깡그리 떨어져 허탈해하던 적도 있었다. 사랑이 그렇듯 은행나무 단풍 사진 찍기도 타이밍이 좌우한다는 사실, 필자만의 생각은 아닐 듯싶다.

올가을 노란 단풍이 절정일 때 제대로 알현한 하동 옥종 청룡리 은행나무 어르신의 풍채는 여전하셨다. 산청 산천재 앞 도로에서 만난 은행나무 가로수는 동네 할머니의 출연으로 그 색감이 진하게 담겼다. 은행나무가 살아 있는 화석 나무로 불리듯 노란 가을 단풍으로도 그 긴 전통을 이어오고 있고 또 이어가리라.

은행나무 말고도 이 가을의 끝자락에 지리산 둘레길을 걸으며 만난 가을의 본색들을 떠올려 본다. 은행나무만큼이나 유구한 역사를 가진 메타세쿼이어의 단풍 색감 또한 찬란하단 표현이 절로 나오는데, 수면에 데칼코마니로 투영되는 한 폭의 수채화를 둘레길이 지나는 산청 내리저수지에서 감상할 수가 있다.

그리고 노고단 가는 길에서 만나는 파스텔톤의 붉은 단풍들을 보면서 바람을 견뎌내는 키 작은 나무들의 지혜를 느낄 수가 있었다.

지리산의 가을빛은 숲에서만 깊어가는 건 아니다. 지리산의 중요한 구성체인 지리산의 강들 또한 가을빛 강물로 유장하게 흐른다. 며칠 전 노을이 질 무렵 성철스님순례길을 걸으며 경호강과 양천강이 합쳐지는 두물머리에서도 노을이 더해져 가을빛이 물씬 묻어있는 강 풍경을 만나기도 했다.

그리고 실상사 공양간 처마에 주렁주렁 매달린 곶감들은 또 다른 가을 색감으로 다가왔다. 이렇듯 떠나는 가을의 흔적이 지리산 도처에 스며 있음을 보면서 언제나 단명인 그 가을의 본색을 필자의 졸시로 남긴다.

가을 본색 

최세현

초록으로 속마음 숨겨오던 숲

그 숲이 서서히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단풍의 남하 속도 하루 25㎞ 그 속도로…

하지만 알록달록 그 본색을 다 보여주기엔

너무도 단명인 가을이다

일제히 불타올라 장렬히 소신공양하고 나면

온 숲은 바람으로 뒤척거릴 것이다

사람들아,

부디 경배의 절을 올리시라

이 눈부신 가을날에 제 할 일 다 마치곤

각양각색의 본색을 드러내는 저 숲을 향해서…

 

지리산 자락으로 귀농해서 22년째 유정란 농사를 짓고 있는 최세현 지리산초록걸음 대표의 지리산 자락 사진이야기가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