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으로 주민 분열, 이대론 안 된다

  • 입력 2024.01.28 20:00
  • 수정 2024.01.28 20:20
  • 기자명 하승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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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수 대표. 변호사 및 공인회계사. 1990년대 중반부터 다양한 시민사회운동에 참여해 왔다. 현재는 농촌·농업·농민을 옹호하는 공익법률단체인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 예산감시운동 단체인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하승수 대표. 변호사 및 공인회계사. 1990년대 중반부터 다양한 시민사회운동에 참여해 왔다. 현재는 농촌·농업·농민을 옹호하는 공익법률단체인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 예산감시운동 단체인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필자가 난개발이나 환경오염시설과 관련된 현안이 있는 농촌지역을 다니다 보면, 참으로 안타까운 경우들을 접하게 된다. 업체가 마을 이장 등 마을 임원이나 일부 주민들을 돈으로 회유하려고 하는 바람에 농촌 마을공동체가 깨어지려고 하는 경우들을 보게 되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도 어떤 업체가 산업폐기물매립장을 추진하고 있는 어느 지역에 갔는데, 업체 측이 마을주민들에게 ‘사업에 동의해주면 가구당 수천만원을 주겠다’고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대기업의 자회사가 추진하는 사업인데도 이런 식으로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다. 그 얘기를 들으니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다.

업체가 돈으로 마을공동체 분열시켜

10여년 전에 산업폐기물매립장이 추진되던 다른 어떤 마을을 방문했는데, 3분의 1 정도의 주민들은 업체로부터 돈을 받고 동의를 해줬고, 나머지 주민들은 동의를 안 해주는 상황이었다. 그러다 보니 마을주민들끼리 찬·반으로 나뉘어 버렸고, 서로 왕래나 인사도 하지 않는 상황이 됐다고 했다. 평화롭고 우애좋던 마을공동체가 깨져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마을 이장이 업체 쪽에 서는 바람에 주민들이 이장을 해임시키는 일까지 있었다고 했다. 결국 그 매립장은 무산됐다. 지방자치단체도 반대입장이었고, 업체가 지방자치단체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지만 패소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마을공동체가 회복되려면 아마도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이런 사례는 전국의 농촌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사실 주민동의는 사업 인·허가의 요건은 아니다. 그러나 민간업체들은 법적인 요건이 아니어도 주민동의서를 받으면 인·허가를 쉽게 받을 수 있고 사업추진이 수월할 것이라는 생각에 이장이나 주민들을 돈으로 회유하려고 하는 경우가 많다. 마을 이장이 업체 편에 서서 주민 서명을 위조하거나 제대로 된 설명도 하지 않고 주민 서명을 받아서 문제가 된 경우들도 여럿이다. 업체들이야 사업만 하면 되고, 사업추진에 실패하면 떠나면 그만이다.

그러나 주민들은 평생을 마을에서 살아야 하는데, 이렇게 돈 때문에 주민들 사이에 갈등이 생기면 치유가 쉽지 않다. 그런데도 이윤만 추구하는 업체들은 정당하고 투명하게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돈을 뿌리고 주민들 사이를 갈라놓으며 사업을 추진하려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한국전력공사같은 공기업조차 초고압 송전선 건설을 하면서 특별지원금이라는 명목으로 돈을 주고 주민동의를 받으려고 해서 주민들 간의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마을공동체가 돈 때문에 갈등에 휩싸이면 주민들 모두 피해자가 된다. 돈을 받았다가 형사처벌을 당하게 된 사람도 결국 마을의 구성원이니, 그것 역시 불행한 일이다. 그리고 업체들이 이런 식으로 돈을 주고 난개발·환경오염시설을 추진하면, 농촌의 환경이 오염되고 농촌이 살기 좋은 공간이 될 수가 없다. 2021년 6월 세종시 산업통상자원부 앞에서 열린 ‘송전탑 반대·석탄화력 저지를 위한 산자부 규탄 결의대회’에서 강원도 영월에서 올라온 한 주민이 주민분열을 조장하는 한전을 규탄하는 손팻말을 들고 서 있다. 한승호 기자
마을공동체가 돈 때문에 갈등에 휩싸이면 주민들 모두 피해자가 된다. 돈을 받았다가 형사처벌을 당하게 된 사람도 결국 마을의 구성원이니, 그것 역시 불행한 일이다. 그리고 업체들이 이런 식으로 돈을 주고 난개발·환경오염시설을 추진하면, 농촌의 환경이 오염되고 농촌이 살기 좋은 공간이 될 수가 없다. 2021년 6월 세종시 산업통상자원부 앞에서 열린 ‘송전탑 반대·석탄화력 저지를 위한 산자부 규탄 결의대회’에서 강원도 영월에서 올라온 한 주민이 주민분열을 조장하는 한전을 규탄하는 손팻말을 들고 서 있다. 한승호 기자

마을 이장이 돈 받으면 배임수재죄 성립

그래서 많은 경우에 주민들은 ‘업체가 이렇게 돈을 뿌리는 것이 법적인 문제는 없는지’를 물어본다. 사실 업체가 일반주민들에게 돈을 주고 사업에 대한 동의를 받는 것에 대해서는 따로 법적인 규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장 등 마을에서 직책을 맡고 있는 사람이 업체로부터 청탁을 받고 별도로 돈을 받거나 일반 주민보다도 더 많은 돈을 받는 것은 형사상 범죄가 될 수 있다. 배임수재죄가 성립될 수 있는 것이다.

형법 제357조에 따르면,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관하여 부정한 청탁을 받고 재물 또는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장 등 마을 임원들도 마을의 사무를 처리하는 사람이므로 배임수재죄의 주체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여기서 ‘부정한 청탁’이란 업무상배임에 이르는 정도는 아니어도 되고 ‘사회상규 또는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청탁이면 족하다고 보고 있다. 명시적인 청탁은 물론 묵시적인 청탁도 문제가 된다.

그래서 실제로 마을 이장이 업체로부터 부정한 청탁을 받고 돈을 받았다가 처벌되는 사례들도 생기고 있다. 2021년 제주지검은 테마파크 개발사업을 추진하는 업체로부터 돈을 받았던 마을 이장을 배임수재죄로 기소했다. 당시에 이 마을 이장은 업체로부터 1,8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또한 마을주민들이 이장을 상대로 제기한 가처분소송과 고발사건과 관련해서, 업체가 변호사 선임료 950만원을 대납하게 한 혐의도 추가됐다. 뿐만아니라 이장에게 돈을 준 업체 대표도 배임증재 혐의로 기소됐다.

그렇다면 판결은 어떻게 났을까? 2023년 5월 1심 판결이 선고됐는데, 마을 이장은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 추징금 2,750만원을 선고받았다. 돈을 준 업체 대표도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이들은 무죄를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사회적 통념상 묵시적인 청탁이 있었다’고 보았다. 이들은 항소했지만, 2023년 10월 31일 제주지방법원 형사항소부는 항소를 기각했다.

산업폐기물 업체로부터 돈 받은 이장들 집단 송치

최근에는 산업폐기물 업체로부터 돈을 받은 이장들이 집단으로 검찰에 송치되는 사건도 발생했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지난 1월 18일 충북 영동경찰서는 영동군 용산면 이장 6명을 배임수재 혐의로 불구속 송치했다고 한다. 이장들이 산업폐기물 업체 입주에 동의하는 대가로 500만원이 든 봉투를 받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돈을 준 폐기물 업체 대표와 임원 등도 배임증재죄로 송치가 됐다. 업체 측의 의뢰를 받고 로비 작업을 벌인 부동산 컨설팅업체 대표와 직원도 같이 송치됐다고 한다. 또한 돈을 받고 사업예정지의 토지소유주 정보 등 사업 관련 정보를 제공한 공무원들도 불구속 송치됐다. 앞서 2023년 11월에는 업체 편에 서서 주도적으로 다른 동료 이장들에게 돈봉투를 전달한 이장단협의회장이 먼저 구속되기도 했었다.

이처럼 이장, 업체, 공무원들이 집단으로 송치된 것은 드문 일이다. 산업폐기물 업체가 수억원대의 자금을 조성해서 벌인 일인 것 같은데, 그로 인해 한 면에 엄청난 파장이 일어난 것이다. 해당 지역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불행한 일이다.

그런데 법을 있는 그대로 적용하면, 이렇게 될 수밖에 없다. 사실 전국 곳곳에 유사한 사례들이 많을 수 있는데, 그런 점에서 이장 등의 직책을 맡은 분들은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마을 이장이라는 자리는 공무원은 아니지만, 공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물론 문제의 근원은 돈을 뿌려서 사업을 추진하려는 업체들이다. 어떻게든 인·허가를 받으려고 불법을 동원하면, 자신들도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업체들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돈으로 주민 회유하려는 행태 근절돼야

앞서 든 사례들은 모두 불행한 일이다. 마을공동체가 돈 때문에 갈등에 휩싸이면 주민들 모두 피해자가 된다. 돈을 받았다가 형사처벌을 당하게 된 사람도 결국 마을의 구성원이니, 그것 역시 불행한 일이다. 그리고 업체들이 이런 식으로 돈을 주고 난개발·환경오염시설을 추진하면, 농촌의 환경이 오염되고 농촌이 살기 좋은 공간이 될 수가 없다.

따라서 이런 행태를 근절시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업체로부터 이장 등 마을 임원들이 청탁을 받고 돈을 받으면 형사처벌을 받는다는 것을 최대한 많이 알릴 필요가 있다. 농촌마을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고, 잘 모르고 돈을 받았다가 형사처벌을 받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그리고 실제로 업체로부터 돈을 받은 사례가 드러나면 가슴 아픈 일이지만, 수사기관이 수사를 하도록 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장 임명권은 읍·면장에게 있으니, 이장이 돈을 받은 사례가 밝혀지면 지방자치단체도 즉시 이장을 해임하고 수사기관에 알려야 한다. 형사소송법 제234조 제2항에 따르면 공무원은 범죄를 인지하면 고발을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부정한 방식으로 사업을 추진하거나 주민들에게 돈을 뿌려서 마을공동체를 분열시키는 행태를 보이는 업체들에게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인·허가를 하지 않도록 하는 법제도 개선도 필요하다. 산업폐기물 시설, 토석 채취, 개발행위허가 등 최근에 많이 문제가 되는 경우에 대해서부터, 관련 법령에 ‘사업이 확정되기 이전에 주민들에게 금전을 제공하거나 배임증재 등 범죄를 저지른 경우에는 사업 인·허가를 하지 않을 수 있고, 이미 인·허가가 이뤄진 경우에도 인·허가를 취소할 수 있다’는 취지의 조항을 넣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어떤 사업이라고 해도 추진하는 절차와 방식이 불법·편법을 동원하거나 마을공동체를 분열시키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상식이다. 이런 상식이 지켜질 수 있도록 각 주체의 노력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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