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소멸’ 들먹이며 농촌 팔아먹지 말라

  • 입력 2023.12.03 18:00
  • 수정 2023.12.03 18:03
  • 기자명 하승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하승수 대표. 변호사 및 공인회계사. 1990년대 중반부터 다양한 시민사회운동에 참여해 왔다. 현재는 농촌·농업·농민을 옹호하는 공익법률단체인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 예산감시운동 단체인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하승수 대표. 변호사 및 공인회계사. 1990년대 중반부터 다양한 시민사회운동에 참여해 왔다. 현재는 농촌·농업·농민을 옹호하는 공익법률단체인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 예산감시운동 단체인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얼마 전 강릉에서 열린 지정폐기물매립장 공청회에 갔다가 황당한 얘기를 들었다. 강릉시 주문진읍에 무려 904만톤이나 되는 지정폐기물·사업장일반폐기물을 매립하겠다는 계획을 업체가 밀어붙이면서 개최된 공청회였다.

그런데 업체측은 ‘지정폐기물 등 산업폐기물이 얼마 나오지 않는 강릉시 주문진읍에 왜 매립장을 추진하느냐’는 질문에, 지역소멸 얘기를 꺼냈다. 주문진읍의 인구가 줄고 있고 강릉시 인구도 줄어드는데, ‘인구를 늘리려면 지정폐기물매립장을 먼저 유치해서 산업단지가 들어오기 좋은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는 기막힌 주장을 편 것이다.

난개발과 환경오염시설 추진 근거로 지역소멸 들먹여

그 얘기를 들은 주민들이 흥분해서 소리쳤다. 말도 안 되는 얘기라는 것이다. 산업폐기물을 대량으로 땅에 묻었을 때 초래될 수 있는 환경오염으로 인해 농민, 어민, 횟집들이 피해를 입을 것을 걱정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지역의 청정이미지가 훼손되는 것도 걱정인데, ‘지역소멸을 막으려면 지정폐기물매립장을 받아들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얘기를 들으니 주민들이 흥분하는 게 당연했다.

그런데 강릉에서만 이런 얘기를 듣는 것이 아니다. 요즘 여러 지역에서 비슷한 얘기를 듣고 있다. 지역소멸을 막으려면 의료폐기물소각장을 받아들여야 한다든가, 농지를 대규모로 파괴할 산업단지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식이다. 농촌 난개발과 환경오염시설을 밀어붙이는 근거로 ‘지역소멸’을 들먹이는 것이다. 이런 식의 얘기는 요즘 유행처럼 얘기되는 ‘지역소멸’론이 악용되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러나 이런 식의 난개발과 환경오염시설이 추진되는 것은 농촌지역의 인구감소와 고령화를 가속화시킬 것이다. 농촌이 가진 장점이라고 할 수 있는 상대적으로 깨끗한 환경을 망가뜨릴 뿐만 아니라, 농촌에서 살아왔고 앞으로도 농촌에서 살고자 하는 사람들의 ‘정주의지’를 깨뜨릴 것이기 때문이다.

당장 ‘이런 시설이 들어온다면, 나부터 지역을 떠날 것이다’라는 얘기를 하는 주민들을 전국 곳곳에서 숱하게 만날 수 있다. 그나마 있는 인구조차도 농촌지역을 등지게 할 수 있는 것이 난개발과 환경오염시설들인 것이다.

도시에서는 도저히 추진할 수 없는 이런 사업들을 농촌지역에서 벌이는 것은 농촌을 식민지로 보는 것이다. 땅값이 싸고 인구가 적다는 이유로 민간기업들이 농촌을 만만하게 보고 무분별하게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를 막아야 할 정부와 지자체, 정치권이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들도 지역소멸론을 들먹이면서, 민간기업들의 무분별한 난개발과 환경오염을 방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매우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도시에서는 도저히 추진할 수 없는 환경오염시설 사업들을 농촌지역에서 벌이는 것은 농촌을 식민지로 보는 것이다. 땅값이 싸고 인구가 적다는 이유로 민간기업들이 농촌을 만만하게 보고 무분별하게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다. 게다가 이를 막아야 할 정부와 지자체, 정치권이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다는 것이다. 2021년 11월 22일 충북 괴산군청 앞에서 열린 ‘괴산메가폴리스산업단지 백지화 촉구 궐기대회’에서 사리면 주민들이 ‘쓰레기장 결사반대’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산단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도시에서는 도저히 추진할 수 없는 환경오염시설 사업들을 농촌지역에서 벌이는 것은 농촌을 식민지로 보는 것이다. 땅값이 싸고 인구가 적다는 이유로 민간기업들이 농촌을 만만하게 보고 무분별하게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다. 게다가 이를 막아야 할 정부와 지자체, 정치권이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다는 것이다. 2021년 11월 22일 충북 괴산군청 앞에서 열린 ‘괴산메가폴리스산업단지 백지화 촉구 궐기대회’에서 사리면 주민들이 ‘쓰레기장 결사반대’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산단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역소멸 논리대로라면 대한민국이 소멸위기

사실 농촌은 소멸하지 않는다. 인구가 줄어들고 고령화율이 높은 것일 뿐이다. 그것을 ‘지역소멸’이라는 단어로 부르는 것은 불편하다. 그렇게 따지면 대한민국이 소멸할 위기이다. 대한민국 전체가 출산율이 극도로 저하되고 고령화율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2년 전국 평균 합계 출산율은 0.78명을 기록했다. 올해 2분기에는 0.7명으로 떨어졌다고 한다. OECD 국가 중에 합계 출산율이 1 이하인 국가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출산율이 이렇게 낮아지면서 대한민국 인구도 자연감소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2년 대한민국 인구는 12만3,800명 자연 감소했다. 출생인구는 24만9,000명에 그친 반면, 사망자는 37만2,800명에 달했기 때문이다. 2045년이면 대한민국 총인구가 4,000만명대로 내려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고령화율도 높아져서, 2045년이면 대한민국의 고령화율이 세계 최고가 될 전망이다.

이렇다고 해서 대한민국이 소멸할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그래서 소멸을 막기 위해 전 세계의 폐기물을 수입해서 폐기물을 매립하고 소각하자고 말할 수 있는가? 소멸을 막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유해시설이라도 받아들이자고 얘기할 수 있는가?

아마도 그런 얘기를 듣는다면 대한민국 국민 누구나 불쾌할 것이다. 출산율 저하, 인구감소에 대한 대책을 세우려면, 이런 현상이 초래된 원인을 분석하고 대책을 세워야 하지, 아무거나 받아들여서야 되겠느냐고 반문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 농촌지역과 비수도권 중소도시에 대해서는 이런 얘기를 함부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의 ‘지역소멸론’이 가진 잠재적 폭력성을 인식할 때가 되었다. 인구가 줄어든다고 해서 함부로 ‘소멸’이라는 단어를 써서는 안 된다. 걱정하고 배려하는 것은 좋지만, ‘소멸할 것’이라고 규정짓는 것은 폭력적인 언행이 될 수 있다. 더구나 ‘소멸’ 운운하면서 아무거나 받아들이라고 얘기하는 것은 진짜 폭력이다.

지난 10월 25일 경북도청 앞에서 열린 '산업‧의료폐기물 문제 해결을 위한 경북지역 공동대책위원회' 발족을 알리는 기자회견. 참가자들이 요구사항이 적힌 손팻말과 현수막을 들고 정부와 경북도에 대안을 촉구하고 있다.  
지난 10월 25일 경북도청 앞에서 열린 '산업‧의료폐기물 문제 해결을 위한 경북지역 공동대책위원회' 발족을 알리는 기자회견. 참가자들이 요구사항이 적힌 손팻말과 현수막을 들고 정부와 경북도에 대안을 촉구하고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소멸론’ 아니라 사회적 ‘성찰’

사실 대한민국 전체가 겪고 있는 문제와 농촌지역이 겪고 있는 문제는 연결되어 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은 수도권 집중이 심화되면서 수도권이 인구를 빨아들여 왔다. 농촌에서 대도시로, 비수도권 지역에서 수도권으로의 인구집중 현상이 날로 심화돼 온 것이다.

그것이 대한민국 전체의 ‘삶의 질’과 행복도를 떨어뜨린 중요한 원인이다. 수도권으로 집중되면서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고, 출ㆍ퇴근 시간은 길어지고, 생활비는 높아지고, 삶은 팍팍해지는 현상이 심화돼 온 것이다. 한마디로 ‘삶의 여유’가 없어진 것이다. 대한민국 전체에서 서울의 합계출산율이 0.59명으로 광역 시·도중에 가장 낮은 것도 바로 이런 데에 원인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반면에 농촌지역에서는 젊은 인구가 줄어들면서 학생수가 줄어들어 학교가 문을 닫고, 의료 등 생활인프라가 위축되면서 삶의 질은 떨어지는 현상이 심화돼 왔다. 그래도 농촌지역의 합계출산율이 서울 등 대도시보다는 높게 나타나는 것은 서울의 삶이 얼마나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있는지를 보여줄 뿐이다.

물론 서울에 사는 많은 사람들은 이런 ‘삶의 여유없음’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오히려 서울의 화려함과 편리함에 익숙해져 있을 가능성이 높다. 미디어는 이를 부추긴다. 정치와 행정을 맡고 있는 사람들 역시 서울을 자신의 준거집단으로 삼다 보니, 수도권 집중이 낳은 심각한 병폐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일종의 사회적 ‘중독’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기업들은 서울에 본사를 두고 농촌을 착취하다시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마을을 없애고, 농지와 집을 강제로 수용하고, 농지를 파괴하고, 물과 공기를 오염시키면서 도시에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온갖 일들을 농촌에서 벌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지역소멸론’이 아니라, 지금의 현실에 대한 사회적 ‘성찰’이다. 그리고 수도권 집중이 낳고 있는 온갖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방향전환’을 모색하는 것이다. 농촌지역과 비수도권 지역을 대상화하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가 지금까지 잘못된 방향으로 나간 것을 반성하고 새로운 방향을 찾는 것이다.

농촌의 가능성에 주목해야

지금까지 흘러온 방향이 잘못됐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농촌은 오히려 대안을 모색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공간이다. 수도권과 대도시에 집중된 인구가 분산할 수 있는 공간도 농촌이다. 기후위기가 낳을 식량위기가 매우 우려되는 시대에 극도로 낮아진 곡물자급률과 식량자급률을 올리기 위해 사람도 필요하고 여러 일도 필요한 곳이 농촌이다.

농촌으로 인구가 분산하려면 교육, 의료, 복지, 환경, 문화, 교통 등의 생활인프라를 보완하고 정비해야 하는데, 그와 관련된 수많은 일들이 필요한 곳도 농촌이다. 기후위기 시대에는 공항이나 도로를 건설할 것이 아니라, 농촌의 생활인프라를 보완하고 정비하는 것이야말로 국가가 최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다. 농촌이 살아야 농업도 살고, 그래야 곡물자급률과 식량자급률도 올릴 수 있다.

이런 일들이 가능하려면 정치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앞으로 있을 선거에서는 지역소멸론이 아니라 ‘대한민국 방향전환론’이 주요 담론이 돼야 한다.

정치만이 아니라 시민사회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 시민사회부터 ‘농촌에서 태양광 등으로 전기를 생산해서 도시로 보내자’는 발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전기를 도시로 보낼 것이 아니라, 사람이 농촌으로 와야 한다. 농촌이야말로 에너지자급을 가능하게 만들 수 있는 공간이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