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의료폐기물, 또 하나의 농촌 수탈

  • 입력 2023.12.10 18:00
  • 수정 2023.12.10 18:38
  • 기자명 김수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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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김수나 기자]
 

농촌에 조성되는 산업단지엔 산업·의료폐기물처리장 건설까지 동반돼 지역주민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2021년 11월 22일 충북 괴산군청 앞에서 열린 '괴산메가폴리스산업단지 백지화 촉구 궐기대회'에서 한 주민이 '지역소멸 자초하는 폐기물장 철회하라'가 적힌 머리띠를 한 채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한승호 기자
농촌에 조성되는 산업단지엔 산업·의료폐기물처리장 건설까지 동반돼 지역주민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2021년 11월 22일 충북 괴산군청 앞에서 열린 '괴산메가폴리스산업단지 백지화 촉구 궐기대회'에서 한 주민이 '지역소멸 자초하는 폐기물장 철회하라'가 적힌 머리띠를 한 채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한승호 기자

“어딘가엔 있어야겠지만 여기에 너무 많다는 게 문제다.” 지난 4일 경북 고령군 쌍림면에 있는 A업체(골재채취업) 정문 앞에서 곽상수 쌍림산업폐기물소각장 고령군 대책위원장(우곡면 포2리 이장)이 말했다. 흙먼지가 가라앉을 틈도 없이 골재를 실은 덤프트럭이 오가는 중에 A업체 관계자들은 취재진이 회사 앞 도로에 서 있는 것조차 경계했다. 마을 환경에 큰 영향을 주는 사업장이라 주민감시가 필요해도 민간기업은 접근조차 어려운 경우가 많다. 2014년 설립된 이 업체는 지난해 현 채석장 옆에 산업폐기물소각장(3,000평 규모)을 짓겠다고 고령군에 사업 신청서를 냈다가 지난 7월 반려됐다. 불복한 업체는 고령군을 상대로 행정심판을 청구한 상태다.

이미 산업폐기물 처리시설이 밀집돼 있지만 최근 고령군엔 이처럼 신규 사업에 나서는 업체가 늘고 있다. ‘여기에 너무 많다는 게 문제’인 상황은 고령군의 확대판인 경북도의 산업·의료폐기물 처리량에서도 드러난다.

2021년 기준(‘2021년 전국 폐기물 발생 및 처리현황’, 환경부·환경관리공단, 2022년 발표) 경북도는 전국에서 가장 많은 산업·의료폐기물을 처리했다. 전국 지정폐기물 매립량의 약 25%(22만1,015㎥, 매립장 7개소)가 경북도에 매립됐다. 사업장일반폐기물 매립량은 전국 매립량의 약 40%(86만5,888㎥, 매립장 9개소)에 이른다. 의료폐기물 처리량도 최대다. 전국엔 의료폐기물 소각장이 14개소가 있는데, 이 가운데 경북도에 있는 3개소에서 전국 의료폐기물 소각량의 약 29%(5만6,451톤)가 소각됐다. 경북도 의료폐기물 발생량은 전체 발생량의 3.5%(22만톤 중 약 7,724톤)에 그치니 7.3배나 많은 양을 감당한 거다. 의료폐기물 소각시설은 폐기물 처리시설 가운데서도 지역적 편중이 크다. 14개 소각장 전체 처리량(19만5,634톤) 가운데 경북(29%)·경기(27%)·충남(14%)이 70%를 처리했다. 반면 최다 배출 지역인 서울(30%), 경기(22%), 부산(7%)의 경우, 경기도와 부산엔 각각 3개소·1개소씩 의료폐기물 소각장이라도 있지만 서울엔 단 1곳도 없다.

왜일까.「폐기물관리법」이 생활폐기물에 대해서만 수집·운반업의 영업 구역을 제한하고 있어서다. 이 때문에 생활폐기물은 일정 지역 밖으로 옮길 수 없는 반면 산업·의료폐기물은 예외로 해석돼 발생지와 상관 없이 전국 어디에나 폐기할 수 있다. 여기에 △생활폐기물에 견줘 낮은 공공 처리 비율(생활폐기물은 매립 97.9%·소각 79.3%이나 사업장배출시설계폐기물은 매립 26.4%, 지정폐기물 매립 1.1%에 그친다) △폐기물 사업의 높은 수익률(하승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는 산업폐기물매립업체와 의료폐기물소각업체의 매출액 대비 순이익률을 각각 50~60%, 20~30%로 본다)이 더해져 민간 기업이 산업·의료폐기물 사업을 추진하는 동력이 되고 있다. 이런 조건에서 민간 기업이 인구가 적고 땅값이 싼 농촌지역을 놓칠 리 없다. 도시의 편리, 민간 기업의 이익을 위해 농촌에만 계속 짐을 지우는 이 현실은 과연 정당할까.

심수은 공익연구센터 블루닷 연구원은 “산업·의료폐기물 처리시설 문제는 환경위험 시설의 지역 쏠림, 주민의 정보 접근과 의사결정 참여 부족, 피해구제 등의 문제가 집약된 대표적인 환경 부정의 문제”라면서 “환경오염 피해는 오랜 시간 느린 폭력으로 주민의 삶을 위협하지만, 이들 상당수가 사회경제적 약자이고 소수라 그 문제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또 농촌은 고령인구가 많고 공동체 문화가 커서 도시와 같은 방식의 정보 전달 체계, 환경 행정만으론 문제를 풀기 어렵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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