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에 떠넘겨진 산업·의료폐기물, ‘공공이 처리해야’

처리시설 반대해도 대부분 강행, 돈으로 주민 갈라치기까지

법 개정 및 정부 주도의 안전하고 강력한 폐기물 정책 시급

  • 입력 2023.11.16 18:29
  • 수정 2023.11.17 16:50
  • 기자명 김수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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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김수나 기자]

캄캄한 새벽길을 달려온 전국 각지의 주민들로 지난 15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이 가득 찼다. 비수도권, 특히 농촌 지역에 몰린 산업·의료폐기물 처리시설(소각장·매립장)에 따른 주민의 고통을 알리고, 관련 법·제도 개선을 촉구하기 위해서다.

공익법률센터 농본(대표 하승수)과 이은주 국회의원이 주관하고, 이들과 함께 대구·전북·청주·충북환경운동연합과 국회의원 5명(도종환·변재일·안호영·우원식·이장섭 의원)이 주최자로 나선 ‘전국 산업·의료폐기물 매립장 및 소각장 피해 실태와 대안 모색 국회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피해 실태를 전한 이들은 고일래(경북 포항시 산업폐기물 매립장), 정석원(경북 고령군 아림환경 반대주민대책위원장, 의료폐기물 소각장), 유민채(충북 청주시 북이면 추학리 전 이장, 산업폐기물 소각장), 장동진(충남 예산 조곡산업단지 반대대책위원장, 산업폐기물 매립장), 홍완선(전북 완주 상관면 의료폐기물소각장 비상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 김성수(강원도 강릉·양양 산업폐기물매립장 반대대책위원회 사무국장)씨다.

“힘없는 국민이 안고 가게 해선 안 된다. 입지 선정, 환경영향평가, 주변지역 관리, 주민보상까지 대한민국 전체가 공공의 영역에서 함께 관리해야 한다(고일래).”

“주민은 언제나 열외다. 아무리 노력해도 지자체, 대구지방환경청, 업체는 주민을 무시한다. 피해는 주민이 받는데, 주민 의견이나 참여는 전혀 보장되지 않는다(정석원).”

“시설 생긴 지 20년이 넘었다. 언제까지 주민이 고통받아야 할까. `내 집 앞 눈은 내가 치우기’처럼 자기 지역에서 나온 폐기물은 타지역으로 이동시키지 말자(유민채).”

"예산군수는 주민이 반대하면 안 하겠다 했지만 실은 계속 진행하고 있다. 이미 있는 산단 입주가 60%도 안 됐는데, 5개를 늘린단다. 예산이 공업군인가 농촌인가(장동진)."

"지역 농산물과 수려한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상관면에 의료폐기물 소각장이 들어서면 상관면민의 삶의 터전은 붕괴할 것이다. 반드시 막아내야 한다(홍완선)." 

"환경영향평가 초안이 나오고 공청회까지 하면 주민이 더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래 놓고 '믿어라, 현명히 대처'하란다. 현 폐기물관리법은 주민을 완전히 무력하게 한다(김성수)." 

지난 1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전국 산업·의료폐기물 매립장 및 소각장 피해 실태와 대안 모색 토론회’에서 피해지역 주민들이 이승현 환경부 폐자원관리과장의 토론을 주의 깊게 듣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 1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전국 산업·의료폐기물 매립장 및 소각장 피해 실태와 대안 모색 토론회’에서 피해지역 주민들이 이승현 환경부 폐자원관리과장의 토론을 주의 깊게 듣고 있다. 한승호 기자

피해 실태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사용 연한이 끝나거나 이미 시설이 여럿 있어도 증설이나 신설이 추진되는 경우다. 경북 포항의 에코비트그린포항과 네이처이앤티, 청주시 북이면에 추진 중인 일반산업단지가 그렇다. 폐기물처리시설이 주택단지·학교·요양원·어린이집 등 주민 생활시설과 인접한 것도 문제다(100m~1km 내외). 예산군 예당일반산업단지, 완주군 상관면에 추진 중인 의료폐기물 소각장(전일환경)이 특히 그렇다.

추진 과정에서 주민이 관련 정보를 투명하게 알 수도 없다. 예산군의 조곡그린컴플렉스 주민설명회에서는 폐기물매립장이 ‘자원순환시설’로 소개되기도 했다. 거의 유일한 정보 접근 기회인 주민설명회마저 형식적이거나 편파적(시설 추진 쪽으로)으로 진행돼 제때, 적절히 대처할 수도 없다.

각종 유해 물질이 주민 건강을 위협하고 지역 환경을 파괴하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는 문제다. 2000년대 초중반 3개의 소각장이 들어선 청주시 북이면의 경우 2018년 4~5월까지 인접 19개 마을 주민 60명이 암으로 숨졌다(폐암은 31명). 2021년 환경부는 주민건강영향조사 결과 ‘소각장 오염물질과 암 발생 간 인과성이 제한적’이라 발표했지만, 지난해 하반기 이후 재조사가 진행돼 발표를 앞두고 있다.

하루 300톤의 침출수가 나올 것으로 계획된 강릉시 지정폐기물 매립장(태영동부환경)은 주문진 바닷가와 직선거리로 약 4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해양 오염 우려가 자명한데도 환경영향평가에선 빠졌다. 또 오염지역이라는 낙인은 농산물 판로에도 큰 걸림돌이 된다. 이날 주민들이 전한 피해 실태의 일부다.

‘피해는 지역주민, 이익은 민간업체, 사후관리는 공공이 떠안는 기막힌 상황’

무엇을 바꿔야 할까. 관련 법제도 개선방안을 발제한 하승수 농본 대표는 ‘폐기물관리와 환경영향평가, 주민감시 및 사후관리 강화와 관련된 법·제도의 전면 개선’을 강조했다.

하 대표는 “최근 신규 매립지의 경우 순이익이 50~60%다. 의료폐기물 처리장은 당기 순이익률이 20~30%로 증권가에선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고 하며 사모펀드까지 뛰어들고 있다. 정부가 관리에 손을 놓은 사이 어마어마한 사업이 된 거다”라고 지적했다. 이렇다 보니 기업들이 인허가를 위해 주민을 돈으로 회유하는 일까지 벌어진다. 하 대표는 “충남 매립장 추진 지역의 한 이장은 ‘(업체가) 동의서에 사인만 해주면 가구당 4,000만원을 주겠다고 해서 동네가 깨지려는 지경’이라고 했다. 정상적 의사결정이 아니라 한 명씩 포섭하니 농촌 마을공동체가 깨지는 상황까지 간 거다”라고 전했다.

더 문제는 ‘최종 사후관리를 국민 세금으로 감당’하는 거다. 하 대표는 “매립장은 최대 30년까지 사후 관리해야 하는데, 매립이 끝나면 돈이 안 되니 기업은 손을 뗀다. 피해는 지역주민, 이익은 민간업체, 사후관리는 공공이 떠안는 기막힌 상황”이라고 일갈했다.

대안은 신규 산업·의료폐기물 처리시설은 정부, 지자체 등 공공만 운영하도록 하고, 처리시설은 폐기물이 발생한 권역 내에 두는 것이다. 2021년 기준, 전체 폐기물 중 대부분은 산업계폐기물(총 89.4%, 건설폐기물·사업장배출시설계폐기물·의료폐기물 포함 지정폐기물)인데, 대부분이 민간에 위탁처리(사업장배출시설계폐기물 64.9%, 지정폐기물 95.4%)되고 있다. 게다가 폐기물관리법상 산업·의료폐기물 처리시설은 전국의 폐기물을 반입할 수 있어서다. 

아울러 환경영향평가를 회피하려 시설 규모나 면적을 축소해 법망을 빠져나가기도 하므로 규모와 상관없이 환경영향평가를 받도록 법·제도를 개선하고, 주민감시 체계도 마련돼야 한다.

토론자로 나선 심수은 공익연구센터 블루닷 연구원은 민간에 위탁된 폐기물이 어느 지역으로 이동·처리되는지 확인할 수 있는 자료 구축과 구체적인 주민감시 규정 마련, 피해 지역 주민을 위한 지원체계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어 이승현 환경부 폐자원관리과장은 “추후 법률 논의와 법 개정 과정에서 더 적극적이고 심도 있게 대응하고, 이미 제출된 법률과 별개의 의견은 추가로 대안을 고민하겠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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