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농촌은 호구가 아니다

  • 입력 2023.06.25 18:00
  • 수정 2023.07.17 17:03
  • 기자명 김현지(전남 곡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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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지(전남 곡성)

40년을 도시에 살다가 선택하게 된 농촌에서의 삶은 비록 몸은 힘들고 경제적으로 여유롭지는 못하지만 조용하고 따뜻하고 평화로웠다.

고라니도 보고 멧돼지도 지나가는 산 바로 아래에 살다 보니 차 소리도, 사람 소리도 들리지 않고 오직 자연의 소리뿐이다. 가끔 경주 아파트에 사시는 엄마 집에 가면 밤새 차 소리와 온갖 소음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 태어나고 자란 경주를 늘 그리워하고 사랑하지만, 이제는 경주보다 곡성이 더 좋다. 곡성은 그렇게 나에게 제2의 고향이 되었다.

그런데 그렇게 조용하고 평화로운 곳에 폐기물 처리장이 재가동을 준비하고, 주민의 힘으로 몰아낸 토석 채취장이 호시탐탐 사업 기회를 노리고, 친환경에너지라는 미명하에 자연을 훼손하고 돈으로 주민을 갈라놓은 풍력발전과 태양광 시설이 밀려오고 있다. 대도시에서 발생한 폐기물이 인구가 적고 땅값이 싸다는 이유로 농촌으로, 농촌으로 몰려드는 것이다.

300m 거리에 있는 폐기물 처리공장에서 솟은 시커먼 연기가 바람을 타고와도 순진한 농촌 사람들은 사진 한 장 찍을 줄 몰랐다.

시간이 지나면서 암 발생 환자와 폐경색 환자가 늘어나 앓거나, 죽고 무단 방류한 폐수로 주변의 논밭이 황폐화됐다. 그제서야 주민들과 귀농한 청년들이 항의를 했지만, 현행 법규는 환경재해 입증책임을 피해 당사자에게 밝히라고 한다.

전남 곡성군 겸면 폐기물 처리업체인 ㈜가이아에너지는 1995년 설립 이후 단 한 번도 환경영향평가를 받은 적이 없고, 위법 행위도 여러 번 적발되어 과태료와 영업정지, 형사고발과 행정소송을 수십 차례 당했다. 그런데도 2017년 곡성군(당시 유근기 군수)은 주민의 여론 수렴도 없이 폐기물 종합재활용법에 대한 대규모 증설 변경 허가를 내줬다. 분노한 주민들은 반대대책위를 만들고, 지금까지 싸움을 이어오고 있다.

가이아는 올해 2월 ㈜이도에코곡성으로 회사명을 바꾸고 증설을 하기 위한 공사를 하고 있다. 그로 인해 겸면의 주민들은 농사를 뒤로하고 환경청으로 곡성군청으로 직접 만든 손팻말과 현수막을 들고 거리로 나서고 있다. 얼마 전 80세가 넘은 할머니, 할아버지부터 귀농한 20대 청년들이 모인 반대 집회에서 동네 이장님과 여성청년 네 분이 삭발을 감행했다.

어르신들은 뼈 빠지게 농사짓고 이제 좀 편히 살려고 하는데 얼마 못살 생명까지 앗아 가느냐고 분통을 터트리고, 청년들은 물 맑고 공기 좋은 시골에 농사지으러 왔는데 다이옥신과 발암물질이 웬 말이냐고 눈물짓는다. 숨조차 쉬지 못하는 환경이 되어버린 곳에서 더 이상 농부의 삶을 이어가기 힘들어진 것이다. 폐기물 처리장 가까운 곳에 초등학교와 군립요양병원이 있고, 4개면이 그 영향권 아래에 있는데도 군에서는 꼼짝도 하지 않고 있다.

폐기물 공장만이 아니다. 농사에 치명적 피해를 주는 겸면 운교리 운강제 뒤편의 토석채취 사업에 주민들이 목숨 건 반대에 나서자 불허처분이 나왔는데, 1년의 시간이 지나자 대상개발은 다시 토석채취 사업 허가신청을 했다. 눈보라 맞아 가며 친환경 농사의 중요한 물을 공급해주는 운강제 위에서 반대를 했던 때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또다시 곡성군은 허가를 내줄 태세다.

정부와 지방 행정은 농촌의 힘없는 주민들에게 고통을 줄 것이 아니라, 민간업체들이 돈벌이 수단으로 폐기물 공장을 짓고, 토석채취장을 짓는 것을 관리하고 규제해야 한다. 표가 되지 않는다고 농촌을 등한시하면 반드시 그 고통은 부메랑이 되어 도시로 돌아갈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나오는 생활 폐기물은 대략 10%이고 산업폐기물은 90%라고 한다. 그런데도 공장과 산업단지는 책임을 지지않고 농촌으로만 폐기물 처리공장을 세우려고 하니 작금의 일본의 핵방사능 오염수 방류와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그들에게 외친다. “니가 싼 똥 니가 치우고 내가 산 똥 내가 치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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