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기물 시설들 '이미 가득한데' … 계속되는 신규 사업

고령군에만 주민대책위 6개, '주민 눈 가리는 업체‧무능한 행정'

주민도 모르게 진행된 폐기물 사업 "주민동의 절차 강화해야"

  • 입력 2023.12.10 18:00
  • 수정 2023.12.10 18:38
  • 기자명 김수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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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김수나 기자]

지난 4일 경북의 의료폐기물 처리시설 중 한 곳인 아림환경의 소각장 굴뚝에서 하얀 연기가 나와 공중으로 퍼지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 4일 경북의 의료폐기물 처리시설 중 한 곳인 아림환경의 소각장 굴뚝에서 하얀 연기가 나와 공중으로 퍼지고 있다. 한승호 기자

고령군에는 산업·의료폐기물 처리시설 반대 활동을 하는 읍·면 단위 주민대책위원회(대책위)가 6개 있다. 1개 읍, 7개 면이 있는 고령군 행정구역을 감안하면, 군 전체가 폐기물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현재 운영 중인 지정폐기물(의료폐기물 포함) 처리 업체만도 5개 읍면에 7개소가 있다. 이들 업체는 폐산·폐유·공정오니·납 함유 광물 찌꺼기 등 각종 유해 물질을 처리한다. 최근엔 지역 민간 업체들이 신설에 뛰어들면서 주민들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

고령군만의 문제는 아니다. 경북·대구지역 환경운동가들은 ‘드러나지 않았을 뿐, 전국적 문제’라고 본다. 고령군은 지난 2019년 이른바 ‘의료폐기물 사태’대응 과정에서 문제가 전국에 알려졌고, 이를 기점으로 각 행정 단위 주민들이 결집했다는 게 특징이다. 다른 지역은 대부분 해당 마을 주민들만이 대응에 나서는 상황이다.

의료폐기물 소각업체 “주민들 전혀 모르게 들어왔다”

2021년 기준 경북도는 전국에서 가장 많은 의료폐기물을 처리했는데, 도내 소각장 3개소 가운데 한 곳이 고령군에 있는 ㈜아림환경이다. 2000년 설립된 아림환경은 2003년 대구지방환경청에서 소각장 허가를 받고 운영을 시작했다. 하지만 주민들은 16년이 지난 2019년에야 그 존재를 알게 됐다. 당시 아림환경이 증설을 신청한 와중에 의료폐기물 불법 보관 문제까지 드러나면서다. 아림환경은 전국 16곳에 1,500톤 상당의 의료폐기물을 불법 보관하면서 국가전산망(Albaro시스템)엔 이미 소각 완료된 것으로 허위 입력했다.

당시 일상 생활공간(수산물 양식장인근 노지, 부산시의사회 건물 지하주차장 등)에까지 의료폐기물을 보관했고 업체 내부 창고에도 불법 적치물을 방치했지만, 영업정지 10개월 처분에 그쳤다. 문제는 현재 진행형이다. 아림환경이 제기한 영업정지집행정지 행정소송(12월 중 판결)과 폐기물관리법 위반 형사재판이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지난달 23일 대구지법에서 2심 판결(대표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 사회봉사 160시간. 벌금은 법인 2000만원, 이사 800만원)이 났지만, 대책위는 이 업체가 3심까지 갈 것으로 본다. 아림환경은 이 와중에도 소각용량 증설을 지속해서 시도하고 있다.

지난 4일 고령군 다산면에서 만난 정석원 아림환경 반대 주민대책위원장은 ‘민간 기업의 부도덕함과 관계 기관의 유착’, ‘주민동의 절차의 부재’를 지적했다. 그는 “당시 대구지방환경청은 방치 폐기물 처리를 위해 더 강한 처벌을 내리기 어렵다고 했다. 어느 정도 이해하지만, 허가취소 수준인데도 영업정지 10개월 처분뿐인 것은 부당하다. 대구지방환경청이 4차례 이상 보완지시를 내려가며 증설 신청을 반려해 그나마 다행이지만 반성 없이 계속 재신청하는 아림환경은 그야말로 안하무인”이라고 말했다.

고령군일반산업단지에 있는 아림환경은 다산면 송곡1리·2리와 야트막한 산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직선거리로 1km 안팎이지만 정작 주민들은 수년 동안 그 존재를 몰랐다. 정 위원장은 “주민들은 전혀 모르게 들어왔다. 합리적이고 타당한 절차와 내용으로 주민과의 공감대 속에서 진행된다면 모를까, 전혀 안 되고 있다. 환경영향평가 절차상 주민동의도 이런 걸 얻으라는 건데 워낙 허술해서 서류 형식만 갖추면 통과된다”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절차적 정당성과 시설 운영에서 나오는 수익을 사회로 환원하는 체제를 갖춘다면 오히려 지역마다 이런 시설을 유치하려 하지 않겠나”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심수은 공익연구센터 블루닷 연구원은 “제도적으로 보장된 공람, 공보, 정보공개청구, 환경영향평가 주민의견수렴 절차 등은 농촌 주민들에겐 진입 장벽 높은 장치”라고 지적했다. “환경영향평가의 주민의견수렴 과정에서 주민들이 의견을 제시하더라도 의견 반영이 형식적이거나 시설 입지 반대 의견이 제대로 토의되지 않는 등 절차적 정의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우후죽순 추진되는 새로운 폐기물 처리시설

고령군 다산면에서 폐수처리업을 하는 한 지역 기업은 최근 대가야읍(전 고령읍)에 있는 장기공단에 지정폐기물 종합 재처리시설 사업장을 추진하려다 발목이 붙잡혔다. 이 업체는 폐윤활유 정제 사업 신청을 대구환경청에 접수했다 요구받은 보완서를 마감 시한까지 제출하지 못하고 신청을 자진 취소했지만, 사업을 완전히 철회하지는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곽상수 위원장에 따르면, 한 번 진행된 주민설명회로는 자세한 사업계획을 알 수 없었다. 500℃로 가열해 하루 폐윤활유 20톤을 정제한다고 했는데, ‘500℃’도 설명회 자료엔 없었고, 참가자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나온 내용이었다.

곽 위원장은 “다이옥신이 가장 위험한 온도가 350℃ 내외다. 그들은 최신시설이라며 낮은 굴뚝(10m 높이)을 제시했는데 결국 검증하지 못했다. 공장 건물 높이를 5m 정도로 보면 약 15m 높이에서 매연이 나가는 건데 1만명 가까이 사는 읍내에서 얼마나 위험한가. 여긴 세계문화유산 지정(고령 대가야 고분군) 지역이라 굴뚝을 더 높일 수도 없다”라고 지적했다. 사업장 추진 위치도 국도(33번)를 사이에 두고 하천(회천, 낙동강 지천으로 겨울철새 서식)과 맞닿아 있고(직선거리 약 50m), 1km 반경에 어린이집·유치원·초중고·공동주택 등이 있어 입지에 적당하지 않다.

쌍림면에 A업체가 추진 중인 산업폐기물 소각장도 고령군의 반려로 제동이 걸렸지만 불씨는 남아있다. 이들은 당초 2025년 상반기까지 소각장을 짓고 기존 사업(채석장) 대신 새 사업에 돌입한다고 계획한 상태라 이후 반대 주민, 고령군과의 각축전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개진면에서 일반 및 지정폐기물 매립장을 추진하고 있는 한 업체는 대구환경청이 사업계획을 반려하자 현재 행정소송(2심)을 진행 중이다. 지난 8월 1심 판결은 대구환경청의 손을 들어줬지만, 폐기물 사업 추진 업체들은 대부분 수차례 반려에도 끝까지 밀어붙이는 경향이 큰 만큼 사업체가 사업계획을 공식 철회하지 않는 이상 주민들은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상황이다.

한편 산업단지 조성을 표방했지만, 실제론 폐기물 매립장 설치가 더 중심인 다산 월성산단 내 지정폐기물매립장 공사도 화두다.

곽 위원장은 “경북도는 모든 주물공장을 고령군에 모아놨다. 주물공장만 86개다. 주물공장에선 주물사(쇳물을 형틀에 부어 모양을 만들 때 쓰는 모래)가 폐기물로 나오는데, 모래에다 황산 등을 섞어 금형을 뜨고 난 부산물이다. 그래서 지정폐기물 매립장을 만드는 거다”라며 “(산단규모가) 50만㎡가 넘으면 의무적으로 폐기물 시설을 설치해야 하는 규정을 이용해 겉으론 공단을 만든다면서 매립장을 만드는 거다. 주민들은 전체적으로 공단 조성만 보니 도장을 다 찍어주게(찬성하게) 된다. 그게 월성산단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동고령산단 안에도 공단 만들면서 같이 만든 매립장이 하나 있는데, 문제는 주민들이 몰랐다는 거다. 우스갯 소리로 매립장을 만들기 위해 공단을 만든다는 소리도 있지 않나”라고 꼬집었다.

「폐기물처리시설 설치촉진 및 주변지역지원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은 ‘연간 폐기물 발생량 2만톤 이상이고 조성 면적이 50만㎡ 이상인 산업단지를 개발·설치 또는 증설’할 때 폐기물 처리시설을 함께 설치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지난 10월 25일 경북도청 앞에서 열린 '산업·의료폐기물 문제 해결을 위한 경북지역 공동대책위원회' 발족을 알리는 기자회견에서 고령·경주·안동·포항 주민들이 정부와 경북도에 대안을 촉구하고 있다.
지난 10월 25일 경북도청 앞에서 열린 '산업·의료폐기물 문제 해결을 위한 경북지역 공동대책위원회' 발족을 알리는 기자회견에서 고령·경주·안동·포항 주민들이 정부와 경북도에 대안을 촉구하고 있다.

“사업 첫 단계부터 주민 참여 보장돼야”

근본적 대안으로 ‘폐기물 발생지에서 공공이 처리를 책임지는 방식’이 제시되고 있지만, 곽상수·정석원 위원장은 ‘기존 제도조차 형식적, 자의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문제’라며 관련 법·조례 강화와 함께 철저한 적용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철저하고 투명한 주민설명회 △입지 선정 기준 강화 △환경영향평가 시 협의 대상 지역을 인접 지역까지 확대 △지역 토착세력 결탁 및 로비 등 시설 유치 관련 부정부패 철저 감독을 우선 주문했다.

곽 위원장은 “군계획 조례는 이미 주민 건강, 환경 관련 사안은 적극적으로 주민에게 알려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철저히 지키도록 해야 한다. 지금은 이장들 모아서 대강 설명 한 번 해놓고 전체 주민설명회를 했다고 하는 지경이다. 설명을 들은 이장들조차 사업 내용을 잘 모르고, 대부분 관과 업체가 짬짜미로 진행하다 주민들이 알아챘을 땐 이미 한참 진행된 뒤이다”라며 “민주적인 의사결정 구조가 가장 시급하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공론화하고 주민들이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게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정 위원장은 “대책위까지 꾸려 주민들이 활동하고 바쁜 농사철에도 집회하지만, 행정기관은 주민을 전혀 대변하지 않고 업체도 자기들 영업에 문제 될 게 없다는 태도다. 이들이 함부로 못 하게 행정기관이 명확하게 대응하는 제도를 갖춰야 한다”라며 “업체·조합·공단 등이 심복이나 지인에게 일자리를 하나씩 주면서 이들을 이용해 주민하고 소통하는 양 생색내고 주민 의견을 무마하지 못하도록 주민 감시체계와 업체의 역할을 제도화해서 누구나 제도와 원칙에 따라 움직이게끔 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현재 국회 계류 중인「폐기물관리법」일부개정법률안 가운데 눈여겨볼 만한 법안은 다음과 같다(대표발의자, 의안번호).

주민동의 절차 강화와 관련한 개정안 : △환경부 장관이 폐기물처리업 및 폐기물처리시설을 허가·승인할 때 심의위원회의 의결을 거치도록 한다(김석기 의원 등, 2122243). △폐기물 처리사업계획서에 주민공론화위원회의 의견을 첨부하여 제출하도록 하고, 계획서의 검토 사항에 주민공론화위원회의 개최 여부, 주민 피해 예방을 위한 대책·지원 계획 마련 여부 등을 추가하는 한편, 주민공론화위원회의 설치 등에 관한 사항을 법률에 직접 정한다(임호선 의원, 2107998).

지역 편중 문제 해소에 관한 법안 : △환경부령으로 사업장폐기물 처리 상한 기준을 정해 폐기물 처리의 집중에 따른 피해를 예방(변재일 의원, 2111435). △의료폐기물 처리를 3개의 권역으로 구분해 사업장이 위치한 권역에서 해당 폐기물을 처리하도록 한다(김형동 의원, 2105415). △폐기물처리시설이 특정 지역에 편중되지 않게 조정하는 국가의 책무 명시, 피해 발생시 국가의 구상권 청구 및 과태료 상향 조정(박덕흠 의원, 210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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