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장을 맛보다㉝]고소함을 걸어 모란시장 오일장으로

  • 입력 2023.12.17 18:00
  • 수정 2023.12.18 16:17
  • 기자명 고은정 제철음식학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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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시장 오일장이 선 모습. 주차장 부지를 가득 메운 거대한 규모가 인상적이다.
모란시장 오일장이 선 모습. 주차장 부지를 가득 메운 거대한 규모가 인상적이다.

 

 

고은정 제철음식학교 대표
고은정 제철음식학교 대표

오일장을 가다 보면 거기가 여기 같고, 여기가 거기 같은 느낌을 많이 받는다. 작은 나라이다 보니 행정구역이 다른 지역이라 해도 어디나 그저 그렇게 많이 비슷하고 아주 조금 다른 것이 당연하다. 주변의 동료들은 매번 원고를 쓸거리가 있느냐고 묻는다. 나도 매번 오일장으로 향하면서 이번에도 가면 뭔가 새로운 것이 있을까 하는 약간의 걱정을 한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정말 늘 오일장에 들어서면 그 모든 걱정들은 사라지고 그저 신기하고 재미나고 다 좋다. 그리고 언제나 얘깃거리 하나는 건져낸다. 어쩌면 그건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어느 하루도 허투루 살지 않는 숨소리를 듣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번에도 그랬다.

경기도 성남시의 모란시장 오일장은 덧칠된 그림 같이 느껴지는 오래된 상설시장과 그 길 건너 주차장에 서는 모란민속오일장으로 겹쳐서 펼쳐진다. 그러므로 오일장의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공영주차장 위에 장이 서니 주차가 불편하다. 그것도 오일장만의 매력일 수 있다. 불편한 것도 즐기면 즐거워진다. 나는 다행히 시장 골목 안에 있는 유료주차장을 이용할 수 있어 바로 시장 안으로 진입하게 되었다. 모란장은 나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에 차서 두리번거리며 걷고 있었다. 그러다 걸음을 멈추고 바로 앞이나 옆이 아닌 먼 곳에 시선을 두니 비로소 골목에 줄을 선 기름집들이 보였다. 기름집들이 내는 그 고소함을 딛으며 내가 걷고 있었다. 고소함으로 충만해진 발걸음은 더 가벼워지고 흥이 났다.

 

 

'기름집'들이 모여 있는 모란장의 한 골목.
'기름집'들이 모여 있는 모란장의 한 골목.

 

'백년가게' 명판이 붙은 가게들 중 하나인 '서울기름집'. 상품 하나하나마다 큰 글씨로 원산지를 명확하게 표기한 점이 눈에 띈다.
'백년가게' 명판이 붙은 가게들 중 하나인 '서울기름집'. 상품 하나하나마다 큰 글씨로 원산지를 명확하게 표기한 점이 눈에 띈다.

 

 

대를 이어 운영하는 기름집들엔 ‘백년가게’ 라는 간판도 붙어있다. 이 시장에서는 참기름 향을 입힌 ‘맛기름’ 따위는 팔지 않는다고 했다. 국산과 외국산을 명확하게 표기하고 시장의 명예를 지키려는 노력을 한다며 친절하게 알려주셨다. 감사했다. 더 감사한 일은 난전을 펼칠 수밖에 없는 어른들께 자신의 가게 앞을 무료로 내줘 장사를 허락한 모습이다. 살만한 아름다운 세상임을 일깨우는 시장이 좋다.

30년 전 모란시장에 들락거리던 그땐 오일장이 지금의 주차장 이 자리, 민속오일장이 서는 곳에 천막을 치거나 햇빛을 가릴 곳 없는 바닥에 들고 나온 것을 놓고 팔았었다. 언제 어디서 잡았는지 알 수 없는 생개고기들이 여기저기 있어 눈 둘 곳을 못 찾아 힘들어했던 생각도 났다. 지금은 그런 모습을 눈 씻고 찾아도 볼 수 없고, 보신탕을 파는 식당들도 정리가 돼 대부분 흑염소탕을 파는 집으로 바뀌어 있었다.

같이 갔던 사진작가는 성남에서 공부를 했던 시절에 다니던 모란시장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오래된 기억을 공유한 사람들의 수다는 끝이 없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모란시장 오일장에서의 우리가 그랬다. 그 기억을 공유한 또 다른 지인이 시장에 있는 우리를 찾아와 같이 흑염소탕을 한 그릇씩 점심으로 먹고 헤어졌다.

 

 

시장 방문객들이 군것질을 위해 찾는 이동식 가게 중 하나인 '모란다방'
시장 방문객들이 군것질을 위해 찾는 이동식 가게 중 하나인 '모란다방'

 

 

옛 모란시장에는 여느 오일장과 비슷한 모습의 장이 선다. 길 건너 민속오일장엔 전국의 오일장을 섭렵하고 다닐 것 같은 상인들이 마치 행사장처럼 팔 것을 놓고 호객을 하기도 한다. 오일장이 주말과 겹치면 점심 무렵엔 발 디딜 곳이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모인다고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고 싶어 삶은 계란과 믹스커피를 한 잔 시키고 앉아 너스레를 떨었다. 작은 리어카에서 물을 끓이며 라면도 팔고 커피도 팔고 계란을 파는 상인은 시에다 내는 자릿세가 비싸다고 했다. 5일에 한 번씩만 장사를 하니 그렇다는 것이다. 귀엽고 작은 모란다방이었다. 장사를 하는 사람도, 길 건너 좌판의 사람들도 모두 힘겹다 말하는 년세는 내가 세 들어 일하는 곳의 달세에도 못 미치는 금액이라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모란장을 찾은 사람들이 물건을 사고 있다.
모란장을 찾은 사람들이 물건을 사고 있다.

 

 

모란시장 오일장은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산 개구리도 있고, 냉장고에 버젓이 자리한 개고기도 있고, 흑염소로 음식을 팔거나 진액을 내서 파는 설비를 한 제조공장들도 있고, 막걸리를 한 잔 먹어야 안주로 내주는 홍창구이가 있고, 터진 옆구리로 쏟아져 나온 알이 먹음직스럽게 구워진 도루묵도 있다. 뻔하지만 뻔하지 않은 시장이라 흥미진진한 곳이다. 오랜 시간 머물며 돌아도 지루하지 않은 시장이라 좋지만, 장 볼 식재료 또한 많은 곳이니 진정 명분 있는 오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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