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아닌 ‘농협중앙회장 연임’, 농업계 담론을 장악하다

법안 순수성 의심되는 정황에

법안 통과 저지 비대위도 등장

  • 입력 2022.11.25 12:00
  • 수정 2022.11.25 17:16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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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여러 모로 개운찮은 ‘농협중앙회장 연임제’ 시도에 반발이 점점 거세지고 있다. 지난 24일 농협중앙회 충북지역본부에서 열린 충북·충남권 법안 설명회(공청회)에 앞서 비대위가 기자회견을 열어 국회와 농협중앙회를 규탄하고 있다. 비상대책위원회 제공
여러 모로 개운찮은 ‘농협중앙회장 연임제’ 시도에 반발이 점점 거세지고 있다. 지난 24일 농협중앙회 충북지역본부에서 열린 충북·충남권 법안 설명회(공청회)에 앞서 비대위가 기자회견을 열어 국회와 농협중앙회를 규탄하고 있다. 비상대책위원회 제공

 

농협중앙회장 연임 허용을 위한 「농업협동조합법」개정을 두고 격랑이 몰아치고 있다. 산적한 농협 개혁과제와 당장 3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전국동시조합장선거의 ‘깜깜이 선거제’가 눈앞에 있음에도 엉뚱하게 농협중앙회장 연임 허용 여부에 국회와 농업계가 공력을 소진하는 모습이다.

국회 농해수위 법안심사소위는 지난 10일 논란을 의식해 이 법안 심사를 유보하고 여론수렴을 지시했다. ‘12월 초 재논의’를 위해 농식품부엔 ‘12월 5일까지 여론을 수렴하라’는 급박한 지령이 떨어졌고, 지난 18일 농식품부 주최 전문가 토론회를 시작으로 찬반 의견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연임 찬성 측은 현행 단임제가 △협동조합의 자율성·민주성을 침해하고 △중앙회 업무의 연속성·효율성을 저해하며 △산림조합중앙회·신협중앙회 등 다른 협동조합과의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등의 주장을 펴고 있다. 농협중앙회와 더불어, 전현직 대표가 농협중앙회 사외이사로 빈번히 참여하는 한국종합농업단체협의회·한국농축산연합회 계열 농민단체들이 대표적이다.

반면 연임 반대 측은 △부정부패 근절을 위해 만들어낸 단임제·직선제의 성과가 아직 확인되지도 않았고 △중앙회장의 권력이 여전히 비정상적으로 강하며 △비민주적으로 변질된 농협 구조상 연임제가 민주성을 더욱 억압한다는 등의 주장으로 맞서고 있다. 농협중앙회장 권한 확대를 견제하는 농식품부와 농협에 이권이 얽매이지 않은 농민의길 계열 농민단체들, 그리고 농협 노조 세력이 이쪽에 속한다.

팽팽한 찬반 논쟁에도 불구하고 국회에선 이미 ‘연임 허용’의 기류가 우세한 상태다. 법안소위 위원장인 김승남 의원을 비롯, 네 명의 의원(윤재갑·김승남·김선교·이만희 의원)이 각자 법안을 발의해 밀어붙이고 있는 사안이며 국회 전문위원 역시 연임 허용에 무게를 싣는 검토의견을 제시했다. 국회 전문위원은 ‘대의권 침탈’ 논란이 따라붙을 정도로 국회 의사결정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치는 존재다.

내용의 타당성을 떠나서, 돌아가는 모양새가 부자연스러운 건 부정하기 힘들다. 비슷한 시기에 네 명의 의원이 똑같은 법안을 발의했고 네 법안 모두 연임제를 ‘현직 회장’부터 적용하게끔 설계했다. 계류 중인 다른 법안과 국정감사에서 언급된 법안들, 내년 3월 8일 조합장 선거제의 결함 중에서도 더 시급히 고민해야 할 내용들이 많은데 모든 걸 제쳐두고 이 중앙회장 연임 법안이 농협과 관련된 모든 논의 테이블을 점령하고 있다. 국회가 ‘다수의 민의’가 아닌 ‘소수의 로비’에 의해 움직인다는 의혹이 등장하는 배경이다.

국민과함께하는농민의길·전국협동조합노동조합·전국사무금융노동조합·좋은농협만들기국민운동본부는 지난 21일 ‘농민조합원 없는 중앙회장 연임제 도입 저지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를 결성, 강도 높은 법안 반대 투쟁을 시작했다. 전국 4개 권역별로 진행 중인 공청회에서 기자회견 등으로 반대 입장을 피력하고 전국 농민조합원·농협노동자를 대상으로 자체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오는 29일엔 긴급 국회토론회를 개최하며 신정훈·윤준병·윤미향 의원이 여기에 동참한다.

전방위적인 반대에도 불구하고 법안 통과 가능성은 여전히 높다. 설령 법안소위에서 의원들이 합의를 도출하지 못하더라도 여야 간사 협의를 통해 법안을 처리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비대위는 이번 법안이 이성희 농협중앙회장 개인의 이권을 보장하고 조합원 이익을 저해하는 법안이라 판단, 의원들의 도덕성을 엄중히 묻겠다는 각오다.

 

농협중앙회 ‘답정너’ 설문 논란

농식품부가 지난 18일부터 농협중앙회장 연임 법안에 대한 여론수렴 작업을 시작한 가운데, 농협중앙회도 자체적으로 전국 조합장 의견수렴에 나섰다. 하지만 결국 농협 내 연임 찬성 여론을 ‘만들어내기’ 위한 요식행위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농협중앙회의 여론수렴 방법은 대면 설문이다. 중앙회 시·군지부장들이 관할 조합장들을 만나 설문지를 작성케 하는 식이다. 조합장이 개인별로 작성한 설문지를 시·군지부장이 받아 오거나, 지역 조합장협의회에서 의견이 전원 합치하면 일괄작성할 수 있게 했다.

명목은 무기명이지만 누가 찬성하고 누가 반대하는지를 시·군지부가 얼마든지 파악할 수 있는 방식이다. 실제로 조합장들 사이에서 “사실상 기명이나 다름없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뒷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농협중앙회장은 회원조합 지원과 중앙회 내 인사 결정에 큰 영향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조합장들이 중앙회장의 의견에 반대하기란 쉽지 않다. 조합장 선거를 앞둔 시점에선 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이번 설문 역시 차기 중앙회장 후보를 배출할 몇몇 지역에서만 문제제기가 나왔을 뿐 대체로 큰 잡음 없이 진행됐다.

전국협동조합노동조합은 소식을 접한 즉시 긴급성명을 발표, “1,115명 조합장을 협박하며 기어코 연임 노욕을 부리는 이성희는 당장 사퇴하고 수사당국은 즉각 수사에 착수하라”라며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었다.

한편 농협중앙회의 이번 설문은 중앙회장 연임 허용 여부 외에 비상임조합장 연임 제한 여부에 대한 의견도 묻고 있어, 이 설문자료는 중앙회장 연임 허용법 가결과 비상임조합장 연임 제한법 부결 모두에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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