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중앙회장 연임제, 논란 속 일단 ‘유보’

중앙회장 연임법안 처리 직전

농업계 긴급 반대 표명 줄이어

법안은 일단 유보, 재논의 예정

  • 입력 2022.11.13 18:00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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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국회가 농협중앙회장 연임 허용 법안을 본격 논의선상에 올리자 반대 목소리 역시 폭발했다. 생각보다 큰 저항에 의원들은 일단 법안을 유보시켰지만, 재논의를 통해 연내 처리될 가능성이 감지되고 있다.

농협중앙회장 권력남용과 선거비리 등 폐해를 줄이고자 국회는 2009년 농협중앙회장 단임제를 도입한 바 있다. 하지만 이를 적용받은 건 김병원 전 회장 단 한 명뿐, 현 이성희 회장 임기에 벌써 중임제로의 회귀가 논의되고 있다.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4월까지 농협중앙회장 연임을 허용하자는 농협법 개정안이 갑자기 네 건이나 쏟아져 나왔는데, 농협중앙회의 로비가 작용한 결과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발의된 네 건 모두 현직 회장부터 연임이 가능하도록 설계했으며 한 건의 개정안은 비상임인 회장직을 상임화하는 내용까지 담고 있다.

농협중앙회 사업의 연속성을 고려할 때 중임제가 의미 없는 건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법 개정 취지가 실현되기는 힘든 구조다. 농협중앙회장 선거는 농민조합원이 아닌 지역농협 조합장들이 유권자인 데다 대형 농협의 조합장들은 두 표씩을 행사한다. ‘합당한 인물의 연임’보다는 ‘조합장들에 대한 중앙회장의 지배력 강화’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으며 이는 협동조합 원칙에 위배된다. 특히 이성희 현 회장은 쌀값폭락·시장개방 등 최근의 농업 위기상황에서 농민들을 전혀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농업계의 긴급 반대 표명이 쏟아진 건 지난 9·10일 국회 농해수위 법안심사소위를 앞두고서다. 상임위 법안소위는 발의된 개정안의 ‘내용상’ 타당성을 논의하는 사실상의 마지막 절차인데, 이번 법안소위에 농협법 개정안이 포함돼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농협중앙회장 연임 법안 규탄 기자회견에서 민경신 전국협동조합노동조합 위원장이 이성희 농협중앙회장과 국회의원들을 매섭게 질타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 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농협중앙회장 연임 법안 규탄 기자회견에서 민경신 전국협동조합노동조합 위원장이 이성희 농협중앙회장과 국회의원들을 매섭게 질타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전국협동조합노동조합(위원장 민경신)·전국농민회총연맹(의장 하원오) 등은 법안소위를 하루 앞둔 8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농협중앙회장 중임제는 농민조합원 직선제가 전제돼야 폐단을 막을 수 있다고 못 박았다. 특히 법안소위 위원장인 김승남 의원이 ‘중앙회장 연임 허용’ 법안과 ‘농협중앙회 지역 이전’ 법안을 함께 발의한 것과 관련, 농협중앙회장-지역구의원 간 ‘주고받기식’ 법 개정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했다.

민경신 위원장은 “지난해 중앙회장 선출방식을 조합장 직선제로 바꿨지만 농민들은 그 때에도 조합원 직선제를 요구했다. 직선제란 말 뒤에 숨어 중앙회장과 조합장들 사이의 카르텔과 지역이기주의를 더 공고히 하게 됐으며 중앙회장 연임은 이를 더욱 심화시킬 것”이라며 “국회가 이에 동조한다면 통탄할 노릇이다. 지역 농민·노동자들의 절박한 목소리엔 귀를 닫고 있다가 기득권 이권 보장에만 귀를 열고 있으니 우린 이걸 ‘야합’이라고 하는 것이다”라고 일갈했다.

좋은농협만들기국민운동본부 소속 22개 단체도 같은날 반대 성명을 발표했다. 22개 단체 중엔 농민·소비자단체는 물론 지역농협 조합장 및 감사로 구성된 단체들도 포함됐다. 이들은 혼탁했던 농협중앙회장 선거를 바로잡아 나가야 할 현 시점에서 중임제 논의는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또한 “이처럼 여러 가지 문제점이 예상되는 연임제라면 충분한 민주적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농협중앙회 이사회·대의원회, 회원조합장, 농협의 주인인 농민조합원까지, 우리는 아직 연임제 도입에 관한 그 어떤 공식적 논의와 합의 절차가 있었다는 걸 확인한 바 없다”고 강조했다.

의원들은 이틀 간의 논의 끝에 결국 법안을 유보하고 의견수렴 절차를 거치기로 했다. 하지만 정기국회 회기(12월 9일까지) 내에 재논의하기로 한 데다 복수의 의원이 법안 통과 의지를 드러내고 있어 여전히 통과 가능성은 건재한 상태다.

한편 현재 국회에 발의돼 있는 농협법 개정안은 농협중앙회장 연임 허용 외에도 농협 공공기관 농산물 납품 유지를 위한 법정특례 연장, 지역농협 임원 임기 및 자격요건 일부 완화 등 대부분 농민보다 농협 조직을 위한 내용들이며, 비상임조합장 연임 횟수 제한 법안이 개중 농민들에게 의미 있는 법안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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