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농협중앙회장 연임제

  • 입력 2023.01.08 18:00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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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협중앙회장 연임제 도입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매우 부자연스럽고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논의 전개 과정이나 논리 하나하나가 다 결함투성이지만, 이성희 농협중앙회장 개인에게 막대한 이권을 안겨준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일찌감치 논의가 종결됐어야 할 사안이다.

생각해 보자. 단임제인 선출직을 연임제로 바꾸려 한다면 당연히 현직은 배제하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 이번 연임제 논의는 기괴하게도 ‘현직 소급적용’을 처음부터 못 박아두고 시작했다. 게다가 농협중앙회장 선거 구조상 현직 회장이 타 후보들보다 절대적으로 유리한 조건에 놓여있음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데, 이에 대한 보완책은 아예 논외다. 이름만 ‘농협중앙회장 연임 허용법’이지 실상은 ‘이성희 회장 임기 연장법’이라 봐도 무방할 지경이다.

이 어처구니없는 법안을 농협은 모든 조직역량을 총동원해 밀어붙이고 있고, 김승남 의원과 국민의힘은 이상하리만치 다급하게 통과시키려 하고 있다. 뇌물공여·인사청탁 등 이번 사안에 불편한 의혹들이 따라붙고 있는 건 그만큼 그 모습이 상식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근래에 우리 농업계에 이만큼 소모적인 논쟁이 또 있었나 싶다. 이성희 회장 이외엔 누구에게도 생산적이지 않은 이상한 법안 하나가 탄력을 받자 농민단체와 농협노조가 두 달째 법안 저지에 총력을 쏟고 있다. 이 논쟁에 밀려 다른 중대한 농협개혁 논의는 물론이고 3월 조합장선거를 앞두고 선거제 개선 논의마저 하나도 이뤄지지 못했다. 그리고 이 논쟁은 아직도 마무리되지 않은 채 시일을 끌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법안이 가져온 긍정적 효과는 있다. 농민단체, 시민사회, 학계, 개혁 성향 조합장들, 생협, 소비자단체 등 2010년대 중반 이후 다소 결속이 느슨해졌던 농협개혁 세력들이 연임제의 부당성에 분개해 다시 결집했고, 연임제 저지와 그 이후의 본격적인 농협개혁 운동 재개에 뜻을 모으기 시작했다.

법안이 통과된다면 폭풍 같은 논란이 뒤따를 것이고, 좌초되더라도 농협개혁 의제가 다시 한번 궤도에 오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2022~2023년의 농협중앙회장 연임제 논란은 어떤 식으로든 농협의 역사에 뚜렷하게 그 족적을 남길 것으로 예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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