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호가 상두재를 넘어 종정마을에 도착할 때까지 세상은 어둑신하였다. 송진사의 집 앞을 지나 희옥이가 일러준 집으로 가자 그녀는 대문 밖에 나와 있었다. 노랑저고리에 다홍치마를 입었는데 장옷을 걸치지 않아 용모가 시원하였고 쪽진 머리에 비녀를 찔러 금산사 때보다 숙성해 보였다. 상대를 알아본 그들은 반절을 하고 들길로 내려와 하나는 앞서고 하나는 처져 걸었다. 원평천 둑길에 올라서자 마차바퀴가 미치지 않는 길 가운데 풀숲에서 이슬이 채였다.“낭자라고 부르겠습니다. 괜찮겠지요?”병호가 동의를 구하자 그녀가 다가와 어깨를 나란히 하였다.
[한국농정신문 문지영 기자]부산 동구 어린이식당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부산종합사회복지관(관장 조윤영)이 2019년부터 운영하는 곳으로, 동구 내 4개소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아이들과 함께 식사를 나눈다. 맞벌이 가족 등 주로 자녀 양육 부담이 큰 가정을 중심으로 어린이식당을 방문하고 있다.어린이식당 담당자인 배금예 부산종합사회복지관 복지사업 2팀 과장은 “어린이식당은 단순한 무료급식소가 아니라 먹거리격차를 줄이고자 노력하는 지역사회 밥 공동체”라고 설명한다. 아이들은 맛있는 식사와 함께 동네 친구들도 만나고, 부모들은 양육 부담을
[한국농정신문 장수경 기자] 사단법인 간장협회(대표 우춘홍) 회원의날 행사가 지난 14일 경기 양평에 위치한 전통장 생산업체 ‘가을향기(대표 박애경)’에서 열렸다. 간장협회는 전통장 생산자와 소비자, 식생활교육자가 함께 전통장 계승과 전통식문화 확산을 위해 모인 단체로서 이날 행사는 다양한 성격의 구성원이 함께 모인 첫 자리였다.음식의 간을 하는 가장 기본적인 양념으로서 전통장 중에서도 대표주자로 꼽히는 게 간장이다. 이날 행사엔 각 전통장 생산업체의 간장이 한자리에 집결했다. 가을향기와 아미산쑥티된장을 비롯해 건강선생이종숙·해담은
[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지난 3월 8일 치른 전국 동시조합장선거는 조합장의 초선·재선 여부와 관계없이 전국 지역 농·축협이 운영을 재정비하는 기점이 되고 있다. 본지는 각각의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농·축협 여덟 곳을 격주로 소개함으로써 전국 농·축협 임직원·조합원들이 각자 조합의 역할을 고민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고자 한다. 어쩌다 홍성 전역의 홍산마늘을 취급하게 됐나.생산을 했으니 유통을 해야 하는데 여러 농협이 각자 하기엔 아직 양이 얼마 안돼 교섭
[한국농정신문 김수나 기자] 못줄을 옮기는 호루라기 신호가 드넓은 들녘에 경쾌하게 울렸다. 지난달 27일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내포리 ‘철원군 평화의 논’에 바짓가랑이를 걷어 올린 남녀노소 50여명이 물이 찰랑대는 논에 들어갔다. 민간인통제구역인 이곳에 이들이 모인 것은 철원군농민회(회장 위재호)가 진행한 ‘2023 철원군 통일쌀 모내기’를 위해서다. 철원군농민회는 평화통일을 간절히 바라는 뜻에서 10년째 이곳에서 손모내기를 하고 있다.참가 인원에 맞춰 준비된 400평짜리 논에 못줄에 맞춰 늘어선 참가자들이 모내기를 시작했다. 철원
Q. 시골에 계신 어머니께서 냉이를 세 봉지나 캐서 올려보내 주셨습니다. 이걸로 뭘 해먹으면 잘 먹었다고 소문이 날까요?A. 가문의 비기를 공개할 때가 되었군요. 봄 내음을 한껏 머금고 있는 향긋한 냉이. 이맘때 가장 맛있게 즐길 수 있는 별미 식재료죠. 살짝 데쳐 참기름에 무쳐도 좋고 구수한 된장국에 한 줌씩 넣어 먹어도 맛있지만, 저희 집에선 냉이가 눈에 띄면 무조건 ‘냉이 콩가루국’을 끓입니다.①냉이를 씻어 물기를 아주 대충 턴 상태에서 날콩가루를 붓고 뒤적여줍니다. ②맹물을 팔팔 끓여서 소금으로 미리 간을 완성합니다. ③약불
새해 아침에 해 뜨는 광경을 보러 바닷가로 갔다. 어둑한 지평선에 서광이 비치다가 쨍! 하고 해가 떠오르기를 기대했다. 그래야 올해의 기운도 밝게 펼쳐질 것 같아서. 일출 시간은 7시 37분이라는데 8시 20분이 되어서야 바다 위에 해가 달처럼 나타났다.해가 바뀌었지만 어제의 다음 날일 뿐이다. 정서적으로는 아직 어제에 머물러 있는 것 같고. 게다가 팔지 못한 겨울배추와 대파가 밭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다. 주변 환경이 엄동설한의 동지섣달이다.대파와 겨울배추가 주 작목인 이곳은 김장까지 마치고 나면 농한기다. 자식들은 커서 객지에 나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원래 단무지를 했는데 인건비 주고 나면 남는 것도 별로 없고 허리가 아파서 시래기로 바꿨지. 8월 말에 파종해서 이제 하나씩 걸기 시작해. 오전에 잘라놨다가 오후에 (아내가) 퇴근해서 오면 같이 걸고 그래. 날이 추워서 얼고 해야 시래기가 잘 돼. 만들어놓으면 내년 음력 설 전엔 대부분 나가는데 그때 가봐야 값을 알지. 키로(1kg)에 1만원씩만 나오면 좋은데…. 시세를 봐야지. 이 근방엔 시래기 하는 데가 거의 없어.”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지난 12일 경북 예천군 풍양면 낙상리 무밭에서 한 농민이 최근 작업해놓은 무청 시래기의 건조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서울엔 폭우 소식이 있었고, 지리산은 여전히 흐리지만 비는 오지 않았다. 가물어 밭작물들이 힘든 시간을 보내던 어떤 날 옥천의 오일장엘 갔다. 지리산처럼 옥천에도 비가 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함께 가지고 올라가는 길에 비를 몰고 내려오고 있다는 작가님의 전화를 받았다. 옥천장에 도착할 무렵 앞을 볼 수 없을 만큼 쏟아지는 비에 ‘오늘 일정은 망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옥천 오일장은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더 참담한 기분이 들게 했다. 비는 줄기차게 내리는데 여기저기 비를 피해 가며 들고나온 농산물을 앞에 놓고 앉아계신 상
순천 아랫장은 내가 가보고 기억하는 우리나라의 오일장 중 그 규모가 둘째라면 서러울 곳이다. 충분히 여유있게 시간을 내서 가지 않으면 아쉬워서 돌아오는 걸음이 쉬 떨어지지 않을 곳이기도 하다. 이곳은 주차장이 시장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어서도 좋다. 물론 그것도 일찍 가야 주차할 공간이 있는 것이지만 화장실도 있고 카트를 빌려주는 곳도 있다. 무거운 짐을 낑낑거리며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되니 여유를 가지고 장을 둘러볼 수도 있고, 그래서 기분 나쁘지 않게 돈은 더 많이 쓰고 오게 된다. 장에 갈 땐 언제나 미리 현금을 넉넉히 챙겨 가지
지리산 뱀사골에서 국도로만 가도 2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 곳, 의령으로 오일장 구경을 나섰다. 어느 길로 가든 늘 설레는 길이지만 국도는 언제나 고속도로보다 안전하고 편안하게 느껴진다. 속도를 포기하면 비로소 보이는 많은 것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다. 푸른 들, 시원한 계곡, 맑은 하늘, 뭉게구름, 그리고 자연과 조화로운 사람들, 눈을 뗄 수 없게 하는 오래된 가옥의 모습들이 이른 기상으로 몰려오는 피로감을 이겨내기에 충분하고도 남는다.장에 도착해 주차장을 뒤로 하고 안으로 들어서려는데 장터 입구의 간판 아래 재미있는 현수막 하나가
의견을 달리하는 분들도 많겠지만 나는 여전히 농약이 없었으면 인류의 절반은 굶어 죽었을 것이고 항생제가 없었으면 인류의 절반은 병들어 죽었을 것이라고 꿋꿋하게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서 농약과 항생제에 길들여진 우리의 현실에서 농약과 항생제를 현명(?)하게 이용하자고 부드럽게 이야기한다. 나는 농약과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는 농법에도 동의하고 자연적인 여러 치료방식에도 관심이 많다. 무엇이 딱 옳다고 정의하지 않고 끌려가는 듯한 방식의 입장이 나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내일 변하게 될 일도 어제와 오늘의 일을 바탕으로 해서 진행될
[한국농정신문 원재정 기자] 산림조합중앙회(회장 최창호, 산림조합)가 전국 팔도 대표 임산물을 설맞이 선물세트로 출시했다. 산림조합은 온라인 쇼핑몰 푸른장터(http://www.sanrim.com)를 통해 특별 할인가로 판매한다고 밝혔다.이번 임산물 선물세트는 평소 명절 대목에도 농축수산물에 비해 판로개척이 어렵고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임업인들이 생산한 국산 임산물 소비촉진을 위해 지역특산임산물 위주로 구성했다. 구성품은 설날 음식 준비에 필요한 △고사리·도라지 등 나물류 △밤·대추·곶감 등 수실류로 해썹(HA
새해가 밝았다. 새해부터 강추위가 기승이다. 주변에 물이 고인 곳마다 꽁꽁 얼어붙었다. 이쯤 되면 우리 집 삼형제는 빙판 위로 달려들 듯도 한데, 추위가 워낙 매서운지 아이들도 집 밖으로 잘 나서지 않는다. 거실 창에 한눈에 들어오는 마을 풍경은 굴뚝에서 피어나는 연기가 드문드문 보인다. 그마저 없었다면 너무 시려 보일 것만 같은 겨울 농촌마을의 모습이다.예전 시골마을에는 저녁이면 집집마다 피워내는 굴뚝 연기로 저녁때를 알리고, 그 자욱한 불 냄새가 저녁밥상을 기대하게 했다. 정지(경상도 방언으로 부엌을 말함)에는 밥을 짓기 위한
2020년 코로나로 시작해서 긴 장마와 태풍을 넘기고 가을이 지나고 이제 겨울이 왔다. 달랑 한 장 남은 12월 달력을 보니 어려운 시간 자신의 자리를 잘 지키고 단단하게 살아온 우리들이 흐뭇하고 자랑스럽기도 하다.파종부터 수확까지 농사달력은 계절에 맞춰 빠르게 지나가고, 집집이 한해 먹거리 농사인 김장으로 바쁜 계절이 왔다. 농사의 끝마무리로 처마 밑에 시래기들이 달리고, 뽀얗게 썰어 말린 무말랭이들이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며 단맛이 들고 있다.콩을 털고, 깨를 털고, 씨앗을 거두고 집마당 야생화 꽃씨까지 야물게 거둬 내년을 기약
[한국농정신문 홍안나 기자]경기도와 경기도교육청이 도내 초·중·고 학생 가정에 미사용 급식예산을 활용해 친환경급식꾸러미를 공급하는 사업을 추진한다. 경기도청과 교육청, 친환경급식지원센터운영위원회, 경기친환경농업인연합회(경기친농연), 경기농식품유통진흥원, 경기영양교사회, 시군급식지원센터 등 경기도 친환경학교급식을 담당하고 있는 관계기관 및 단체는 지난 20일 경기도친환경농산물유통센터 상황실에서 TF회의를 열고 이같이 논의했다.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온라인 개학이 실시되면서 학교급식이 중단된 가운데 계약재배 농가들의 피해가 눈덩이
[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지난 14일 경기도 과천시 경마공원에서 매주 수·목요일마다 열리는 바로마켓을 들렀다. 전국 각지에서 온 농민들이 농산물을 팔고 있었다.경북 영양군 입암면에서 무농약 송이버섯을 재배하는 김용숙씨도 그 중 한 명이다. 매주 수·목요일마다 김씨는 영양에서 과천으로 편도 4시간 이상의 거리를 막론하고 ‘무조건’ 온다. 이곳이 그의 송이버섯을 고정적으로 팔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기 때문이다.“대구 시내에서 매년 추석 때 열리는 장터와 그 밖에 비정기적으로 열리는 직거래장터 한 군데 정도를 제외하면, 고정적으로 버섯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여기가 안동호 상류지역이라. 오염원도 없고 일교차도 커서 시래기 하기에 괜찮아. 그래서 2012년부터 시작했지. 그때 열 농가가 모여서 영농조합도 만들고 애썼어. 보통 두 달 가량 말려서 1월 말께면 수확해. 학교급식이랑 식당 식자재로 많이 들어가지. 작년엔 10kg 한 상자에 7만원 정도 했는데 올핸 모르겠네. 주변에 시래기 하는 농가가 많아졌거든. 아무래도 생산이 늘면 가격이 없잖아.”
[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음식문화운동가 고은정씨가 새 책 ‘밥을 짓다 사람을 만나다(도서출판 한살림)’를 냈다.저자가 한살림 월간 ‘살림이야기’에 2014년 11월~2017년 4월에 걸쳐 연재한 ‘지리산 동네부엌’과 저자의 블로그(https://blog.naver.com/iggoom)에 올린 글 중 다수를 선별해 엮은 이 책은, 단순히 시래기·죽순·두릅 등 제철 식재료로 밥 짓는 법을 알려주는 책에 그치지 않는다. 저자의 요리 철학 및 밥과 관련된 가슴 따뜻한 이야기들, 음식문화운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 등의 내용이 264쪽의 책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