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장을 맛보다⑤] 말표고무신의 추억을 맛보는 장, 의령장

  • 입력 2021.08.22 20:13
  • 수정 2022.01.14 10:21
  • 기자명 한국농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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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령장 전경.
의령장 전경.

 

고은정 제철음식학교 대표
고은정 제철음식학교 대표

지리산 뱀사골에서 국도로만 가도 2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 곳, 의령으로 오일장 구경을 나섰다. 어느 길로 가든 늘 설레는 길이지만 국도는 언제나 고속도로보다 안전하고 편안하게 느껴진다. 속도를 포기하면 비로소 보이는 많은 것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다. 푸른 들, 시원한 계곡, 맑은 하늘, 뭉게구름, 그리고 자연과 조화로운 사람들, 눈을 뗄 수 없게 하는 오래된 가옥의 모습들이 이른 기상으로 몰려오는 피로감을 이겨내기에 충분하고도 남는다.

장에 도착해 주차장을 뒤로 하고 안으로 들어서려는데 장터 입구의 간판 아래 재미있는 현수막 하나가 걸려 있다. 아침부터 웃음을 터뜨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유머 같은 문구, ‘이건희 미술관 건립은 삼성의 고향 의령으로!’ 미술관 건립의 이유라니 너무 유치해서 마구 공감이 된다. 웃다가 몇 걸음 옮겼을 뿐인데 곧바로 장으로 빨려드는 것 같다. 여기저기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이 의외로 정겹고 유쾌하기 때문이다.

남자고무신을 신고 계신 여자어른께 신발 멋지다고 인사를 건네니 바로 벗어서 보여주시며 말표고무신이라 하신다. 무릎 수술을 하셨는데 병원에서 굽이 없는 신발을 신으라 해서 사셨단다. 말표고무신이라니, 얼마만에 듣는 이름인지…. 아무튼 할머니의 고통없는 시장 생활을 응원하는 의미로 제피 푸른 열매를 한 줌 사고 자리를 뜬다.

다시 몇 걸음 옮기는데 곧바로 방아잎이 눈에 들어온다. 그렇지, 방아잎이지, 여름엔 두말이 필요없이 방아잎이지. 남쪽, 특히 영남지역은 어디를 가나 밭둑이나 텃밭에서 방아가 흔하디 흔하게 자란다. 보라색꽃이 한창일 땐 세상의 나비와 벌들이 거기 다 모이는 것 같이 보인다. 향이나 맛이 좋다는 뜻이라고 혼자 판단해본다. 그러므로 타지에서 온 사람들은 무조건 방아잎을 사야한다. 봉지를 들고 다니는데 제피향과 방아향이 코를 자극하며 서로 우위를 다툰다. 의령 오일장은 향이 좋은 장이라 오래 있어도 괜찮다.

 

 

추억의 ‘말표고무신’을 신은 채 먹거리를 팔고 있는 어르신.
추억의 ‘말표고무신’을 신은 채 먹거리를 팔고 있는 어르신.

 

 

시장에서 산 방아잎과 부추로 부친 방아잎전.
시장에서 산 방아잎과 부추로 부친 방아잎전.

방아잎을 넉넉히 샀으니 장어도 몇 마리 산다. 여름을 보내기 전에 꼭 한 번은 먹고 넘어가야 좋을 장어탕을 끓여야겠다고 마음 먹는다. 시래기를 넣어도 좋겠으나 한여름이니 얼갈이배추를 데쳐 넣고 끓이면 좋을 것이므로 한 단 사고 부추와 매운 고추도 몇 개 산다. 장어탕 먹을 생각에 마음이 바쁘기도 하지만 의령장은 좀 더 머물러도 좋을 것들이 아직 많다.

어물전에 나온 생청각이 반가워 한 봉지 산다. 시어머니께서 늘 해서 보내시던 청각김치 생각이 나서다. 그땐 왜 그게 그렇게 불편했는지 반성을 한다. 기일 즈음이기도 해서 무침이든 볶음이든 해서 먹으리라 마음을 먹는다. 수업에 쓸 김치를 담그려고 고구마순도 한 보따리 산다. 죄다 까놓고 파시기에 돌아가서 해야 할 수고는 좀 적을 모양이다. 기왕에 의령까지 갔으니 망개떡을 한 상자 사고 소바로 점심도 먹는다. 마음 같아서는 삼삼오오 모여 드시는 상인들의 밥상에 숟가락 들고 껴 앉고 싶은 마음이지만 그 정도로 얼굴이 두껍지는 않다.

주차된 차량의 숫자로도 그렇고 장을 보는 사람들의 숫자를 보아도 인구 3만 이하의 작은 군단위 오일장이라 생각하기에 참으로 큰 의령장을 떠나 지리산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서둘러 장어를 손질해 저녁준비를 한다. 가운데 몸통의 일부를 남겨두고 머리와 꼬리부분을 잘라내서 살이 다 녹도록 폭 끓인다. 그사이 얼갈이배추를 데쳐서 잘게 썰고 방아잎도 부추도 씻어 준비한다.

머리와 꼬리를 넣고 끓인 장어를 체에 걸러 걸쭉한 국물이 만들어지면 남겨둔 몸통과 얼갈이배추를 넣고 된장을 풀어 다시 한 번 끓인다. 그 사이 장어탕에 넣을 양만 남겨두고 방아잎과 부추로 방아잎전을 부친다. 장어탕에도 방아잎전에도 매운 고추는 꼭 넣어야 한다. 얇고 바삭하게 부친 방아잎전을 후후 불며 몇 장 먹고 장어탕을 먹는다. 그릇을 비우기도 전에 몸이 촉촉해지고 얼굴에는 땀방울이 맺힌다. 장어탕 한 그릇을 비우며 여름과 이별 준비를 한다.

 

영남 지역에서는 밭둑이나 텃밭 어딜가나 방아가 흔하디 흔하게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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