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장을 맛보다⑪] 순천 아랫장에서 정월대보름 나물 장보기

  • 입력 2022.02.20 18:00
  • 기자명 고은정 제철음식학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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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소재 '순천아랫장'의 한 모습.
전라남도 순천시 소재 '순천아랫장'의 한 모습.

 

고은정 제철음식학교 대표
고은정 제철음식학교 대표

순천 아랫장은 내가 가보고 기억하는 우리나라의 오일장 중 그 규모가 둘째라면 서러울 곳이다. 충분히 여유있게 시간을 내서 가지 않으면 아쉬워서 돌아오는 걸음이 쉬 떨어지지 않을 곳이기도 하다. 이곳은 주차장이 시장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어서도 좋다. 물론 그것도 일찍 가야 주차할 공간이 있는 것이지만 화장실도 있고 카트를 빌려주는 곳도 있다. 무거운 짐을 낑낑거리며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되니 여유를 가지고 장을 둘러볼 수도 있고, 그래서 기분 나쁘지 않게 돈은 더 많이 쓰고 오게 된다. 장에 갈 땐 언제나 미리 현금을 넉넉히 챙겨 가지고 간다. 이번 장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큰 돈과 작은 돈을 양쪽 주머니에 나눠 넣고 장을 돌기 시작한다. 그래야 난감한 일도 안 생긴다.

모든 오일장 투어가 그렇지만 아침은 장터에서 먹으면 어쩐지 든든하고 괜히 좋다. 아랫장은 주차장에서 시장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아예 국밥 골목이 있다. 그 어느 집으로 들어가도 실패하지 않을 가격에 실망하지 않을 맛으로 아침을 먹을 수 있다. 오늘의 일행과 나도 이른 시간에 도착했기에 내장탕 한 그릇으로 속을 데우고 채운 다음 시장을 돌기로 했다. 어느 식당이든 미리 그릇에 담아놓지 않고 손님이 주문을 하면 그때 바로 고기든 내장이든 썰어서 끓이고 있던 국물에 담아낸다. 마음에 든다. 식당을 나오다 족발 삶아내는 광경에 빠져 한참을 머물다 채소전들이 있는 곳으로 발길을 돌린다.

채소전 가는 길엔 각종 전을 현란하게 구우며 파는 곳이 두어 곳 있고 칠게튀김을 파는 곳도 있어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붙잡는다. 언젠가는 최소 단위로 사서 같이 갔던 사람들이 2마리씩 나눠 먹었던 재미난 기억이 있다.

 

순천 아랫장의 묘미는 좌판으로 연결된 채소전에 있다. 도로로 올라가는 좁은 보도에도 있고 차도 옆 보도의 한쪽에도 늘어선 채소전을 돌아보며 할머니들과 하는 실랑이의 재미를 놓칠 수는 없다.
순천 아랫장의 묘미는 좌판으로 연결된 채소전에 있다.
도로로 올라가는 좁은 보도에도 있고 차도 옆 보도의 한쪽에도 늘어선 채소전을 돌아보며 할머니들과 하는 실랑이의 재미를 놓칠 수는 없다.

 

다른 사람은 모르겠으나 나에게 순천 아랫장의 묘미는 좌판으로 연결된 채소전에 있다. 시장 건물 안에도 구입을 하거나 눈요기할 만큼의 좌판이 충분히 있지만 바깥에 즐비한 채소전의 장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건물을 둘러싸고도 있지만 도로로 올라가는 좁은 보도에도 있고 차도 옆 보도의 한쪽에도 늘어선 채소전을 돌아보면서 할머니들과 하는 실랑이의 재미를 놓칠 수는 없다.

예전엔 흔하던 아주까리잎나물이 요즘은 귀한 몸이 되었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아주까리잎을 좀 사려니 자꾸 다른 것도 더 사라고 조르는 할머니께 주머니를 털어 보이며 돈이 거의 다 떨어져 간다고 너스레를 떤다. 그렇지 않으면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필요치 않은 물건도 자꾸 사게 되는 나를 통제하는 방법이다. 바로 옆자리 할머니가 들고 나오신 냉이도 한 줌 사야 한다고 하니 선뜻 그러라고 하신다. 그 마음이 고맙다고도 하신다.

아랫장엔 먹거리장터와 수산물 장터도 따로 이름을 붙여 공간을 분리해놓았다. 바다와 들을 끼고 있어서 먹거리가 풍요로운 곳다운 장터다. 간간이 축육류를 파는 곳도 있고 좀약을 파는 리어카도 있다. 선홍빛의 선지그릇도 있고 봄을 재촉하는 꽃시장도 같이 선다.

 

나물을 주로 들여놓은 한 할머니의 좌판.

 

볼거리가 넘쳐나는 곳이지만 대보름에 먹을 나물거리를 사러 왔으니 나물들로 장을 본다. 말려둔 시래기와 고춧잎 등 몇 가지 나물은 빼고 아주까리와 냉이, 시금치와 무를 사고 콩나물과 더덕, 도라지도 산다. 그리고 거의 끝물인 물김과 생감태도 조금 산다. 물김은 국을 끓이고 감태로는 김치를 담글 것이다. 돌아가면 조리를 해서 밥을 차려 먹을 생각에 시장을 떠나는 발걸음이 가볍다. 생각 같아서는 점심도 장터에서 먹고 싶지만 서둘러 장터를 떠난다. 그렇지 않으면 장에 계속 남아 사지 않아도 될 것들을 자꾸 사고 있을 것이다.

아랫장에서는 제법 이동해야 하지만 순천에는 일몰이 아름다운 와온해변이 있다. 그곳에 가면 해가 떨어지는 것을 볼 수 있는 곳에 해반이라는 이름으로 예약을 받아 음식을 파는 식당이 있다. 간장, 된장도 담고 직접 삭힌 젓갈로 김치를 담가 내는 곳이라 마음이 편하고 먹고 난 후 속도 편하다. 해반에서 새조개와 시금치를 기본으로 봄을 상징하는 미나리와 달래, 냉이, 움파 등을 넣고 샤브샤브로 점심을 먹고 넉넉해져서 순천을 떠난다.

돌아가서 대보름날을 위해 아홉 가지가 넘는 나물들을 조리하고 이웃들과 나눌 생각으로 아침에 출발할 때와는 조금 다른 설렘을 느낀다. 아랫장을 돌아본 오늘 하루가 그저 풍요롭고 아름다운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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