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농민등록제’ 시행으로 농업에 초록불 켜지길

  • 입력 2020.12.06 18:00
  • 기자명 김현희(경북 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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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희(경북 봉화)
김현희(경북 봉화)

2020년 코로나로 시작해서 긴 장마와 태풍을 넘기고 가을이 지나고 이제 겨울이 왔다. 달랑 한 장 남은 12월 달력을 보니 어려운 시간 자신의 자리를 잘 지키고 단단하게 살아온 우리들이 흐뭇하고 자랑스럽기도 하다.

파종부터 수확까지 농사달력은 계절에 맞춰 빠르게 지나가고, 집집이 한해 먹거리 농사인 김장으로 바쁜 계절이 왔다. 농사의 끝마무리로 처마 밑에 시래기들이 달리고, 뽀얗게 썰어 말린 무말랭이들이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며 단맛이 들고 있다.

콩을 털고, 깨를 털고, 씨앗을 거두고 집마당 야생화 꽃씨까지 야물게 거둬 내년을 기약하는 여성농민들이야말로 전통적인 먹거리를 이어가고 지속가능한 농업 현장의 주인공들이다. 농사가 마무리되고 농한기가 와도 여성농민들의 손길은 쉴 수가 없다.

전국에서 농업인구가 가장 많은 지역은 경북이다. 경북 농업인구 37만명 중 18만명이 여성농민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여성농민의 자리는 늘 그림자처럼 따라다닐 뿐 법적지위도 자리매김하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지자체 선거 때마다 여성농민 공약으로 단골메뉴인 여성농업인 전담부서 신설 요구가 끊임없이 제기됐지만 아직도 경북에서는 여성농업인 전담부서는 가동되지 않고 있다.

5년마다 실시되는 농림어업총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농림어업총조사는 전국 농림어가의 규모, 구조, 분포 및 특성을 파악하기 위한 국가기본통계조사이며, 이 조사를 통해 농촌지역개발계획을 위한 기초자료 마련, 학술연구 및 농림어업 표본조사의 모집단·소지역 통계 생산, 국가 경쟁력 강화에 기여 등의 다양한 목적을 추구한다고 한다.

하지만 조사 항목을 보면 여전히 경영주는 남성농민이고, 여성은 농사 전반을 함께하는 공동 파트너가 아니라 배우자, 무급 노동자로 위치할 뿐이다.

공동경영주에 대한 내용조차 조사 대상에 포함되지 않고 있다. 국가기관인 통계청에서 하는 조사에서도 여전히 가구주 또는 경영주의 문항들이 아직까지도 남성중심의 전근대적인 가족형태와 사회형태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참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실제 귀농한 여성농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도시에 살 때는 아파트를 공동명의로 하기도 하고, 은행자산도 자신의 것이 따로 있었는데, 귀농해서 농지를 구입할 땐 남편 명의로 사게 되고, 농협 조합원이나 대출, 재해보험, 보조금 등 모든 것을 남편 이름으로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자신의 이름으로 된 게 하나둘 없어지면서 자신의 정체성조차 흔들리고 회의가 생긴다는 경우가 많다.

실제 농사에 종사함에도, 농가단위의 행정시스템 안에서 여성농업인이 법적으로 인정받을 길은 없기 때문이다. 현재 농업경영체 등록에서 공동경영주를 등록할 수 있지만 실제 공동경영주에 등록돼 있는 여성농민은 2019년 기준 3.1%에 불과하다(경북 기준).

더구나 공동경영주 등록은 여성농업인의 권리와 사회적 지위의 문제로 다뤄지기보단, 경영주가 사망할 경우 직불금 수령에 대해 객관적으로 확인할 근거 정도로만 그치는 실정이고, 최근 활발하게 논의되는 농민수당 문제에서도 공동경영주라 하더라도 경영체 등록 농가를 기준으로 지급대상이 선정되다보니 공동경영주 등록에 대한 관심도 별로 높지 않다.

지난해는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30주년이 되는 해였다.

30년을 끊임없이 투쟁하고, 여성농민이 이 땅에 있음을 외친 그녀들은 토종씨앗을 지키고, 지금의 농업 농촌을 존재하게 한 생산의 주인, 삶의 주인, 당당한 농민들이다. 여성농민의 삶이 행복해지고 자기 목소리를 내고 농민으로서 정당하게 인정받아야만 청년농도 살아나고, 쓰러져가는 공동체도 살아날 것이다.

임미애 경북도의회 의원은 지난달 6일 ‘여성농어업인 전담부서 설치 및 농민등록제 시행’을 촉구했다. “여성농업인도 소외와 배제 없이 동등한 기회와 지원을 받을 수 있게 하고, 농가단위로 운영되는 현행 농업행정을 농민 중심으로 전환하기 위해 농민등록제를 시행해야 한다”는 발언에 100% 공감의 박수를 보낸다.

농민등록제로 여성 개개인이 법적 지위를 획득하고, 농업정책의 주체로 인정돼야 앞으로 우리 농업, 농촌의 미래는 초록불이 켜지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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