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먹고 살자고 하는 일에 여전히 지향해야 하는 것은 안전이다

  • 입력 2021.06.13 18:00
  • 기자명 김순재 동읍농협 전 조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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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재 전 창원 동읍농협 조합장
김순재 창원 동읍농협 전 조합장

 


의견을 달리하는 분들도 많겠지만 나는 여전히 농약이 없었으면 인류의 절반은 굶어 죽었을 것이고 항생제가 없었으면 인류의 절반은 병들어 죽었을 것이라고 꿋꿋하게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서 농약과 항생제에 길들여진 우리의 현실에서 농약과 항생제를 현명(?)하게 이용하자고 부드럽게 이야기한다. 나는 농약과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는 농법에도 동의하고 자연적인 여러 치료방식에도 관심이 많다. 무엇이 딱 옳다고 정의하지 않고 끌려가는 듯한 방식의 입장이 나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내일 변하게 될 일도 어제와 오늘의 일을 바탕으로 해서 진행될 것이라고 생각하며 누구나가 희망하듯 내일이 오늘보다 좀 나아지기를 바란다.

30년 넘게 이 들판에서 일을 하며 숱한 변화의 소리를 들어 왔지만 충격적일 만큼 큰 변화는 없었다. 이웃한 사람들은 현저하게 나이가 들었지만 년년이 한 살씩 들어왔고 18년 동안 동네에서 서열이 가장 낮았던 내 주변에 젊은 사람이 겨우 몇 들어온 것 빼고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사실은 크게 달라짐이 없는 것이 아니라, 더딘 변화에 몸이 익어서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30년 전에 비하면 농약의 안전도는 현저히 올라갔고, 항생제의 사용량도 줄었고, 비료의 사용량도, 더불어 생산방식도 많이 바뀌었다. 그러면서 생산성이 엄청 올랐다. 그럼에도 변화를 느끼지 못하는 것은 지향점이 높아서 그런지도 모른다. 지향점이 높아서이건 당연한 상식들이 통하지 않아서이건 갑갑한 여러 측면이 있다. 30년 전과 지금은 많이 다르지만, 30년 동안 더디게 바뀌어 온 것은 틀림이 없다. 우리 지역의 어른들이 하는 이야기 중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 아니겠나?”라는 말이 있다. 적당히 하자는 뜻으로 들리기도 하지만 안전하게 부담을 덜 느끼며 살고 싶은 희망을 가진 누구나의 작은 소망의 표현으로 나는 이해했다. 지금보다 젊은 시절, 등락하는 채소가격에 골병이 든 경험이 있는 농사꾼으로서, 농협에 빚을 잔뜩 내 채소를 가공하는 시설을 짓다가 지나치게 불필요하다고 느끼는 구조들을 보면서, 농약과 항생제를 다시 생각하며 안전을 돌이켜보는 계기가 됐다.

이웃해 농사짓는 큰아들은 토양에 재배를 하지 않는 방식이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과수 농사하는 아들은 농약 방제를 혼자서 한다. 비가림 수준이거나 노지 농사를 짓는 나는 여전히 과거와 비슷하다. 그럼에도 공통점은 농약 사용의 강력한 규제다. 나는 농약 사용의 강력한 규제에 동의한다. 먹거리 생산에서 소비자에게 끼칠 안전을 최우선 하는 것은 당연하니까 동의한다. 그렇지만 생산에서 생산과 가공을 동시에 준비하면서 지나친 규제가 생산원가를 현저히 높이는 일 등 동의하기 힘든 것도 여러 가지가 있다.

예를 들어 절임배추와 김치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배추의 부산물들을 폐기물로 규제하는 일이다. 대량이 아닌 가내 수공업 수준의 채소 가공장에서 나오는 배추 시래기들을 내 과수원 나무 밑에다가 처리하면 제초효과도 있고 퇴비 효과도 있을 것인데, 폐기물 업체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동의가 안 되는 내용이다. 궁극으로 세밀하지 못한 이러한 규제들이 농업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이유 중의 하나가 될 것이라고 본다. 현장의 생산업자로서 이러한 규제는 고치기가 상당히 어려운 문제다. 안정한 생산과 관리에는 동의하면서도 지나친 규제로 보는 것이다.

농약과 항생제를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보는 것에 동의하지 않으면서 안전한 이용을 위한 노력들을 해야 하지만 생산자들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보는 것도 편의적인 발상으로 보인다. 인근의 축산 농가들은 축종을 구분하지 아니하고 축분을 지나치게 규제하는 것에 불만이 많다. 축분에 대한 지나친 규제는 축산업과 경종업의 순환농법을 저해하거나 생산비를 지나치게 올리는 결과를 내올 것으로 보인다. 기초산업인 농업에서 융통성이 일을 그르칠 수도 있지만 지나치게 규제하면 또 다른 위축을 불러올 수도 있을 것인데 이러한 것들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은 살펴보아도 잘 보이지 않는다. 누가 해야 하나? 이웃들은 이미 고령화됐고 중늙은이 입장에서 내 자식들을 포함한 젊은이들은 발등에 불 떨어지지 않으면 나서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데, 어쩌나 싶다. 농업은 더디게 바뀌어 왔고 계속 더디게 바뀌어 갈 것이지만 앞으로의 10년은 확실히 내가 농촌에서 살아온 지난 30년보다는 빠르게 바뀔 것으로 보인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에 안전이 중요하지만, 지나친 규제로 생산을 위축시키기에는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따라가기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위험하지 않은 내용에 대해서는 좀 더디게 바뀌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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