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따 형님, 오랜만이요, 엊그제 시청 앞 사거리에서 본께 현수막 들고 홍보하던디 아직도 팔팔하시데요. 안척하고 갈라 했는디 신호가 바꿔부러 말도 못하고 그냥 가부렀소.”“짜식~ 그래도 큰 소리로 안척하고 가지 그랬냐.”농민회 후배는 엊그제 트럭을 몰고 가다가 시청 앞 사거리에서 ‘바다야 미안해! 대통령 잘못 뽑아서!’라고 쓰인 현수막을 들고 있는 나를 보며 지나갔던 얘기를 들려주었다.“그란디 뭣 좀 물어봅시다, 우리농협 조합장이 지난 1월 정기총회에서 부결되었던 우리조합 상임이사제도를 도입하겠다고 이사회 안건으로 다시 올렸는데 어
올해 후계농으로 선발되어 필요한 절차를 밟아가는 과정에서 그동안 알지 못했던 지역의 또래 청년들을 만날 기회가 생겨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도시지역이라 농지가 너무 비싸서 고민이라는 얘기와, 농지를 임대하기도 힘들어서 빚을 내서라도 사야겠다고 결심한 얘기 등을 나누다가 작년에 땅을 임대하려고 고군분투했던 얘기를 하게 됐다.작년에 농어촌공사에 웬일로 꽤 괜찮은 땅이 임대로 올라와서 서류를 준비해서 접수를 했다. 나보다 먼저 접수한 인원이 있어 나의 순번은 2번이었고, 청년이 우선이니 내가 되겠거니 하고 있다가 그 농지에 대한 사정을
아산으로 통합되기 전의 온양은 왕이 온천을 즐기러 다니던 곳이라 온궁(溫宮)으로 불렸지만 이제는 역사 속의 지명으로 서서히 잊히고 있는 중이다. 수도권 전철 1호선이 지나면서 ‘온양온천’역으로 불리고 있으니 명맥을 유지한다고나 할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온양온천역의 역사 한쪽의 고가다리 아래로 4, 9로 끝나는 날마다 장이 서는데, 그 풍경이 실로 장관이라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온양온천의 풍물오일장은 다른 지역의 오일장과 크게 다르지 않으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곳에서만 느껴지는 색깔이 있다. 전철이 지나는 고가다리 아
부실한 보리타작을 마치고 모내기하기까지의 과정은 실로 어떤 작전을 치른 것 같다.보리타작하는 클라스 콤바인이 맨 마지막 논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나는 반대편 논에서 보릿대를 태우기 시작했다. 좋은 유기물을 태우는 것이 아깝지만 보릿대가 무더기로 둥둥 떠다니면서 심어놓은 어린모를 덮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보릿대를 태우면서 논두렁에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풀을 한 번 베는 효과가 있긴 하다. 바람 방향을 맞춰 보릿대에 불을 붙여 놓으면 바람이 알아서 보릿대를 태워준다. 보릿대를 태우면서 논 물꼬도 막았다.보릿대가 얼추 태워졌다 싶
그도 열심히 살고 있을 것이다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논·밭을 돌면서 농사짓다보면 오랜만에 가게 되는 밭이 있다. 인간의 접근이 쉽지 않은 그런 밭에서 짐승 피해를 막기 위한 갖가지 방법은 대부분 실패한다. 고라니가 다녀간 후, 줄기만 남은 콩대를 확인하면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민다. 그럴 때면 한숨 돌리고, 전화기를 꺼내 여기저기 전화를 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농부와 농부가 아닌 사람들의 반응이 나뉜다. 농부가 아닌 사람들은 어디선가 들은 이야기들을 나열하지만, 농부들은 우선 ‘힘들고 속상하겠다. 힘내라’는 말부터 한다. 그렇게 우
하지가 지나고 장마가 온다니 급한 마음에 토요일, 일요일 감자를 캤습니다. 다 못 캔 감자는 비가 잠깐 그치는 틈을 타 캐야 합니다. 심을 때의 한 상자가 캘 때는 스무 상자도 넘게 나옵니다. 감자는 잘 되었는데 그 감자들을 캐고 고르고 담고 하다 보니 잘 돼도 너무 잘 됐다는 약간의 불만이 나오고, 급기야 다 먹지도 못하는데 잔 것은 담지 말고 버리자는 아들의 제안도 나옵니다. 그래, 저거 주워가봐야 먹지도 않을 텐데 하면서도 아들 몰래 잔 감자들을 통에 담습니다.후덥지근한 날씨에 감자를 캐고 들어와 씻고 밥 차리고 할 일들을 하
과수 농사를 짓는 농민들에게 올해와 같은 해가 또 있었을까? 이야기로 듣던 기후위기를 몸소 절실하게 느끼게 되는 한해가 되고 있다.사과의 경우 4월 평년보다 열흘 이상 빠른 개화로 인한 냉해와 결실 불량으로 전년보다 착과량이 16% 줄었다. 중심화 결실율은 전년에 비해 89% 적다(농촌경제연구원 농업관측정보 6월호).5월 말과 6월 초순엔 우박으로 인해 전국적으로 수천ha의 과수원이 초토화됐다. 설상가상으로 전국 곳곳에서 과수화상병이 번지고 있다. 올해 과수 농가들은 냉해와 결실 불량, 우박에 과수화상병까지 3중, 4중의 재난을 겪
[한국농정신문 권순창·한우준 기자]농촌 주민과 농업 관련 전문가·언론들은 식상하다 할 만큼 일상적으로 농업·농촌 문제와 부딪히고 있지만 도시민들에겐 좀체 그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요행히 농촌에 밀접한 연고가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단편적·표면적인 정보들만 보면서 농촌을 이해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 사회 구성원의 절대다수는 도시민이며, 도시민들의 농촌 인식은 농촌의 지속성 보장과 농정의 효율적 설계에 알게 모르게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요소다. 본지는 농업·농촌 문제를 바라보는 도시민들의 시각을 살펴보기 위해 기존의 설문조사
기상청이 올해 장마 시작을 예보했다. 기상예보가 일반 국민들에게는 너무나 일상적인 일이지만 농민들에게는 1년 농사를 결정하는 사활적인 문제다. 남한 농민들뿐만 아니라 북한 농민들도 마찬가지다. 날씨는 국경을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다.특히 세계기상기구는 올해 엘니뇨와 라니냐현상이 발생하면서 전 지구적으로 높은 기상이변 가능성을 경고하고 있다. 최근에 전 지구적으로 폭염과 폭우, 폭풍 등 재난재해를 동반한 이상기후가 빈번하게 나타나는 현상을 보면 이상할 것이 없는 예측이기도 하다.최근 북한의 주요 언론은 밭농사에 필요한 관개시설 정비 성
모내기가 끝나자마자 미뤄뒀던 밭일에 비로소 눈을 돌립니다. 어느새 키가 훌쩍 자란 고추는 여차하면 가지가 쳐질 판입니다. 얼른 줄을 쳐야 고추가 주렁주렁 달릴 터이고, 소독소독 자란 참깨도 솎아줘야 합니다. 밭고랑 사이에 풀은 또 어찌나 빨리 자라던지, 자꾸 손을 잡습니다. 바쁜 일이 끝났다 해도 자잘한 일들이 넘치는 농촌 늦유월의 복판을 삽니다.젊은 시절에는 농사일이 힘들어서 가급적 일을 적게 하고 쉬고 싶은 마음이 많더니, 희한하게도 나이가 들수록 농사일이 더 재미있고 애착이 가기도 합니다. 그것이 농민으로 살아온 세월의 증거라
40년을 도시에 살다가 선택하게 된 농촌에서의 삶은 비록 몸은 힘들고 경제적으로 여유롭지는 못하지만 조용하고 따뜻하고 평화로웠다.고라니도 보고 멧돼지도 지나가는 산 바로 아래에 살다 보니 차 소리도, 사람 소리도 들리지 않고 오직 자연의 소리뿐이다. 가끔 경주 아파트에 사시는 엄마 집에 가면 밤새 차 소리와 온갖 소음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 태어나고 자란 경주를 늘 그리워하고 사랑하지만, 이제는 경주보다 곡성이 더 좋다. 곡성은 그렇게 나에게 제2의 고향이 되었다.그런데 그렇게 조용하고 평화로운 곳에 폐기물 처리장이 재가동을 준비하
[한국농정신문 김수나 기자]각 부처가 2024년 예산안을 편성 중인 가운데, 농민단체들이 내년 국가 예산 대비 농업예산을 적어도 5%까지는 확보해야 한다고 촉구했다.국민과함께하는농민의길(상임대표 하원오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농민의길) 소속 8개 농민단체가 지난 22일 정부세종청사 농림축산식품부(장관 정황근, 농식품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연 뒤, ‘국가 전체 예산 대비 농업예산 5% 증액’과 ‘농민 직접 지원 강화’ 등 요구안을 농식품부에 전달했다.이날 농민의길은 “농업예산은 2021년부터 3년째 3%에도 못 미쳤다. 이마저도 전략
[한국농정신문 원재정 기자]제주특별자치도 농업기술원(원장 고상환, 제주농기원)이 자체 육성한 씨마늘 '대사니'를 올해 하반기 농가에 공급한다. 영양번식하는 마늘은 재배를 할 수록 바이러스에 의한 종구퇴화로 수량이 감소하고 품질이 저하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한다. 이에 제주농기원은 지난 2018년부터 신품종 대사니 마늘의 조직배양을 시작해 현재 4세대까지 증식했으며, 지역농협을 통해 종구 4.5톤을 종구생산 전문 농가에 공급할 예정이다.제주농기원에 따르면 특히 올해는 마늘 ‘대사니’ 종구 생산·공급사업에 참여할 지역농협을 공개 모집해
장수군은 사과, 오미자, 소고기가 특산품이라 몇 년 전부터 레드푸드의 고장으로 불려왔다. 사과와 오미자는 생과로도 잘 팔리고 있고, 여러 종류의 가공품으로도 개발되어 전국으로 팔려나가는 곳이다. 군청 근처에 소고기를 파는 식당인 한우명품관도 있지만, 인사동에 장수하늘소란 이름의 소고기집도 있을 만큼 장수소고기는 전국적으로 꽤나 알려져 이제는 몽골 등으로 진출을 하는 중이란다.농업기술센터를 통해 여성농업인 교육을 몇 년인가 했었고, 장수의 떡집을 만드는 레시피 개발과 브랜드컨설팅도 했었고, 중성지방을 낮추는 연간 식단 만들기 등등의
비가 몇 차례 쏟아지고 나니, 풀이 기세등등하게 올라오기 시작한다. 풀과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나는 제초제를 비롯한 농약을 쓰지 않는다. 작은 풀일 때는 괭이로 긁고, 조금 더 크면 호미로 뽑고, 풀이 무릎 가까이 크기 시작했다 싶으면 예초기를 사용한다. 물론 그렇게 할 수 있는 적은 규모라서 가능한 선택이다.그래서 농사짓기 시작한 해에 선물 받아 쓰기 시작한 충전식 전기예초기는 내가 좋아하는 영농도구이다. 작동이 쉽고, 가볍고, 무섭지 않다. 게다가 충전한 배터리가 다 되면 작업을 중단할 핑계도 만들어 쉴 수 있게 해주는, 눈치가
오뉴월에 된서리라고 하더니만, 초여름 날씨에 접어든 6월 초 어느 날 이웃 화천군에 지름 2cm에 이르는 커다란 우박이 내렸다. 이제 막 자리를 잡아 10여일 뒤 첫 수확을 기다리고 있던 오이, 호박 등이 그야말로 초토화되고 말았다. 그뿐만이 아니다. 한창 봉지 씌우기를 하고 있던 복숭아, 사과 등 과수농가들은 우박피해로 인해 한해농사를 정리해야 한다고 푸념하고 있다.몇해 전부터 간간이 나타나던 기후위기의 징조가 이렇게 농민들에게 다가왔다. 기후위기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 농민들은 앞으로 매년 농사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기상청에 대한 신뢰도가 자꾸 떨어진다. 장마철도 아닌데 일기예보가 실시간으로 달라진다. 참깨를 심으려고 일꾼들과 비닐을 씌우면서 일기예보를 자주 확인했다. 이틀 후에 비 올 확률은 60%인데 날씨는 흐리다고 발표했다. 레이더 영상에 파랗거나 빨간색 색으로 잡히면 비구름이 몰려오고 있다는 것인데 60%의 확률이란다. 비가 올 수도 있고 오지 않을 수도 있음을 감안하라는 것인지 불안하기만 했다. 일꾼 중에 중국 연길에서 온 사람이 있어 일기예보를 좀 봐달라고 했더니, 중국 기상청 일기예보는 이틀 후에 비 올 확률이 90%였다. 다음날이
충청남도 예산에 내려온 지 3년, 누군가 물어보면 늘 이야기하는 일화가 하나 있다. 전입신고를 하고 주말을 지나 예산에서 맞이한 첫 월요일 오전 8시 30분경, 동네 이장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동네에 한 명 들어와서 전화했다고, 어디서 왔냐고 물어서 서울 촌놈이라고 대답했다. 다시, 무엇하러 내려왔냐는 질문이 돌아왔고 아무 생각없이 ‘농사’ 지으러 내려왔다고 전달했더니 돌아온 대답이 일품이었다. “미쳤구만.”한평생 농사지어 살아온 동네다. 그리고 대를 이어 농사를 지어보겠다고 대답한 청년이건만 돌아온 대답은 ‘미쳤구만’이었다. 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