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당연하지 않아요

  • 입력 2023.07.16 18:00
  • 수정 2023.07.16 18:36
  • 기자명 신수미(강원 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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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미(강원 원주)
신수미(강원 원주)

올해 후계농으로 선발되어 필요한 절차를 밟아가는 과정에서 그동안 알지 못했던 지역의 또래 청년들을 만날 기회가 생겨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도시지역이라 농지가 너무 비싸서 고민이라는 얘기와, 농지를 임대하기도 힘들어서 빚을 내서라도 사야겠다고 결심한 얘기 등을 나누다가 작년에 땅을 임대하려고 고군분투했던 얘기를 하게 됐다.

작년에 농어촌공사에 웬일로 꽤 괜찮은 땅이 임대로 올라와서 서류를 준비해서 접수를 했다. 나보다 먼저 접수한 인원이 있어 나의 순번은 2번이었고, 청년이 우선이니 내가 되겠거니 하고 있다가 그 농지에 대한 사정을 알게 됐다. 몇 년 동안 마을분이 경작을 해오셨는데 법이 바뀌어서 개인 간 임대 계약이 안 된다고 하니 주인의 요청으로 우선 농지은행에 내놓은 것이었다. 무슨 상황인지 감이 왔다. 임대하던 입장에서는 이게 뭔가 싶었겠지만 법이 그렇다 하니, 땅주인이 그러자 하니 동의할 수밖에 없었을 그 상황이 그려졌고, 임대신청을 취소했다. 내가 버티면 아마 나에게 임대 기회가 왔을 테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상황이 이해가 가기도 했고, 굳이 낯선 동네에서 남의 자리를 꿰차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 얘기를 듣던 청년은 마치 그 일이 동네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의 텃세인 양 몰아갔다. 그 이야기를 전한 사람은 사정을 이야기했고, 혹시라도 양보할 의향이 있는지 물었고, 나는 원래 경작자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했고 양보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했다. 몇 년을 별일 없이 지어 오던 땅이 갑자기 법이 바뀌었으니 젊은이에게 내놓으라고 하는 것을 당연하다 받아들일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런 서로의 사정을 봐주는 것이 농촌의 악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청년이니까 당연히 우선권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지속가능한 농업을 위한 사회적 배려와 지원이고, 그에 대한 책임과 역할도 주어지는 혜택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청년이니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다른 경우도 있다. 지역 한 단체에서 새로 간부를 임명해야 하는데 자꾸 엉뚱하게 외부에서 사람을 영입하려고 해서 청년회원들이 뒷말이 많다는 얘기를 들었다. 청년회원들은 그동안 묵묵히 열심히 일해 온 젊은 국장이 당연히 다음 차례로 간부를 맡으면 좋겠는데, 어르신들은 아직 어려서 안 되고, 경험과 연배가 있어 두루 소통되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라고 한다.

고령화가 심각한 농촌에서는 모든 단체가 청년을 영입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정작 청년이 들어오면 일 시키고 써먹을 궁리부터 하는 것 같다. 그리고 소위 ‘장’ 자리는 내주지 않으면서 너희는 아직 젊으니 기회가 많다고 한다. 이 얘기를 전한 친구는 이런 문화 때문에 농촌에 젊은 꼰대들이 생기는 거라고 말했다. 정작 역할을 맡아 책임지고 일하며 배울 수 있는 기회도 없이 나이 차례가 되어 간부가 되고, 그렇게 그 전 사람이 했던 것을 그대로 답습하고 자리와 자기 이익만 탐하게 되는 경우를 많이 봐왔노라 했다. 젊은이들에게 기회를 쉽게 허락하지 않는 농촌의 문화를 안타까워했다. 젊으니까 일을 더 많이 하고, 젊으니까 참고, 젊으니까 다음 기회를 기다려야 하는 것도 당연하지 않다. 다들 그동안 유지되어 온 질서를 존중하고 배려하고 있는 것이지 당연하지 않다. 많지 않은 지역 청년들에게 더 많은 기회와 역할을 주고 공동체와 책임을 배우게 하는 것이 서로에게 이롭지 않을까. 새로운 문화와 방식을 도입하고 시도해보는 것은 청년이 있어 가능하고, 비록 서툴고 더딜 수 있어도 그런 조직에서 미래의 희망이 보일 것이다.

청년들에게 물었을 때 농촌 유입의 주요 조건은 경제적인 부분이지만, 농촌에서 정착하게 하는 중요한 요인은 네트워킹, 즉 관계라고 대답한 설문 결과를 본 적 있다. 그 관계라는 것은 물론 청년들 사이의 것도 중요하지만, 여성과 남성의 사이, 중장년층과 청년의 사이, 살던 사람과 들어온 사람과의 사이도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서로에게 당연하지 않게, 상대의 입장에서 존중하고 배려하는 관계가 있는 곳이 청년은 물론 모두가 살고 싶은 지역이고 함께 하고 싶은 공동체일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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