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장을 맛보다㉗] 이름값 못하는 장수읍오일장

  • 입력 2023.06.18 18:00
  • 수정 2023.06.18 19:29
  • 기자명 고은정 제철음식학교 대표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은정 제철음식학교 대표
고은정 제철음식학교 대표

장수군은 사과, 오미자, 소고기가 특산품이라 몇 년 전부터 레드푸드의 고장으로 불려왔다. 사과와 오미자는 생과로도 잘 팔리고 있고, 여러 종류의 가공품으로도 개발되어 전국으로 팔려나가는 곳이다. 군청 근처에 소고기를 파는 식당인 한우명품관도 있지만, 인사동에 장수하늘소란 이름의 소고기집도 있을 만큼 장수소고기는 전국적으로 꽤나 알려져 이제는 몽골 등으로 진출을 하는 중이란다.

농업기술센터를 통해 여성농업인 교육을 몇 년인가 했었고, 장수의 떡집을 만드는 레시피 개발과 브랜드컨설팅도 했었고, 중성지방을 낮추는 연간 식단 만들기 등등의 일을 했던 곳이니 나름 많이 친근하고 편안한 곳이 장수군이다. 그러니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가벼운 발걸음으로 장수읍오일장을 향해 출발했다. 게다가 천천히 가도 한 시간이면 도착하는 곳이니 장수읍오일장을 만나러 가는 발걸음은 가볍기만 하였다. 운전하고 가는 길 곳곳에 사과농장 팻말들이 보이고 오미자밭이나 소를 키우는 농장들도 간간이 보였다. 레드푸드의 고장다운 풍경이다.

오전 아홉 시에 도착했으나 대외적으로 알려진 장수군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오일장이 눈에 들어왔다. 아직 개장 전의 어설픈 모습일 것이라고 스스로 위로를 하며 조금 지나면 사람들로 북적이겠지 하는 희망을 품고 어슬렁거리며 일행을 기다렸다. 일행을 만나고 시간이 가도 장터의 모습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남원의 면단위 오일장에도 못미치는 규모라 돌아보고 말고 할 것도 없이 그냥 한눈에 확 다 들어오는 소박한 오일장이다. 멀리 서울서 잠을 설치고 달려온 사진작가께 미안한 마음이 들 지경이다. 날이 더워진 탓, 아니면 비 예보가 있어서… 자꾸 핑계거리를 찾는 내가 안타까웠다.

그러다 쳐다본 ‘장수시장이 살아야 장수경제가 살 수 있다!’고 써붙인 현수막의 글자들이 살아 움직여 내게로 마구 달려드는 것 같다. 어쩐지 그 현수막에 너무나 공감이 되는 느낌이라고 할까. 쇠락해가는 오일장의 모습에 정말로 마음이 편치 않았다. 정말 가지고 간 현금을 다 쓰고 와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늘 그렇듯 아침을 먹으려고 찾으니 고민하지 말라는 뜻인지 오직 한 곳만이 문을 열고 있었다. 놀잇감이 없으면 공기라도 가지고 노는 아이들처럼 내 발로 찾아온 오일장이니 재미와 의미를 찾아야 했는데 그곳이 바로 그랬다. 식당 안에 곡물을 파는 그릇들이 나란히 있었다. 백반을 시키고 기다리는 동안 거짓말처럼 볶은 보리를 사러 온 사람이 있었다. 여름이니 물을 끓일 생각이겠다. 열 가지 반찬에 6,000원, 이렇게 내고 먹어도 되는 밥이었는지 되새김질 해본다. 카드 사용 안 하고 현금만 받아야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겠다 싶은 밥이었다.

밥도 먹었으니 부른 배로 바라보는 오일장이 좀 달라 보이려나 하며 다시 돌아본다. 6월이니 양파와 마늘, 혹은 감자라도 많이 나올 법하건만 그도 저도 달리 보이지 않는다. 모양과 상인의 수만 다른 도심의 소규모 종합마트 같은 곳이었다. 그러나 이 작은 오일장 안에도 이야기는 있었다. 아직은 고구마모종을 심을 때라 보이는 고구마싹을 보고는, 나물이나 김치로 먹을 고구마순이 벌써 나왔다고 하는 도시인의 무지가 나의 오일장 방문을 위로하고 있었다. 쪽파씨앗과 대파모종(실파)을 구분하지 못하는 도시인도 나의 오일장 방문을 의미있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대가리파라 불리는 조선파의 모종을 조금 구입한 나도 나름대로 건진 것이 있다.

화장실 다니러 간 두부 파는 상인을 기다리며 인사를 나누는 할머니들이 계셔서 따뜻했다. 우무묵을 콩가루와 같이 파는 상인의 배려에 콩물을 만들지 않아도 되는 소비자들은 좋겠다며 사진 찍다 혼이 나기도 했다. 자신이 파는 고구마모종의 품종 소개를 써가지고 나온 상인이 있어 새로운 품종에 대한 공부를 했다. 텃밭이 있다면 키우고 싶은 다양한 모종들이 있어 주머니 속 손이 들락날락했다. TV에 나왔다고 광고를 하며 파는 국수가 밀양국수라서 웃으며 다녔다. 장수군민의 대장간이 지켜지고 있어서 뿌듯했다.

작았지만, 초라해 보였지만 이 모든 감정이 오일장에 머물면서 선물처럼 받은 것이어서 좋은 날이었다. 장수읍오일장에 갔던 날이.

 

장수읍오일장 전경.
장수읍오일장 전경.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