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타들어 가는 과수원 보고도 SPS 완화를 논하나

  • 입력 2023.07.02 18:00
  • 수정 2023.07.03 10:16
  • 기자명 권혁정(경북 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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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정(경북 의성)
권혁정(경북 의성)

과수 농사를 짓는 농민들에게 올해와 같은 해가 또 있었을까? 이야기로 듣던 기후위기를 몸소 절실하게 느끼게 되는 한해가 되고 있다.

사과의 경우 4월 평년보다 열흘 이상 빠른 개화로 인한 냉해와 결실 불량으로 전년보다 착과량이 16% 줄었다. 중심화 결실율은 전년에 비해 89% 적다(농촌경제연구원 농업관측정보 6월호).

5월 말과 6월 초순엔 우박으로 인해 전국적으로 수천ha의 과수원이 초토화됐다. 설상가상으로 전국 곳곳에서 과수화상병이 번지고 있다. 올해 과수 농가들은 냉해와 결실 불량, 우박에 과수화상병까지 3중, 4중의 재난을 겪고 있다. 여기서 냉해, 우박은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거대한 힘이라고 하자. 내리는 우박을 비로 바꾸지 못하는 인간의 나약함이다. 하지만 과수화상병은 다른 이야기이다. 막으려면 막을 수 있었던 우리의 문제인 것이다.

2015년 국내 첫 발병 이전까지 과수화상병은 유럽과 미국에만 존재하던 병이다. 어디서 왔는지 원인이 무엇인지, 예방법이 무엇인지, 치료법이 무엇인지 아직 알지 못하는 무서운 전염병이다.

우리는 지난 3년간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었다. 일상생활이 멈추는 것은 물론 거리두기와 영업시간 제한 등으로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지불한 경험이 있다. 코로나19 위기는 극복했지만, 과수 농사를 짓는 농민들은 아직 팬데믹에 살고 있다. 최근 사과 주산지인 경북 안동과 봉화 지역뿐만 아니라 강원도 정선·양구, 전북 무주 등 전국 곳곳에서 번지고 있는 화상병으로 인해 과수 농가들은 모임이나 교육, 상호 교류에 대해 제약을 받고 있다.

코로나19는 백신을 만들기까지 수많은 사회적 비용을 지불해 우리 일상과 함께 하게 됐다. 그런데 과수화상병은 어떠한가? 백신도 치료방법도 없다. 걸리면 무조건 매몰해 폐원하는 방법밖에 없다. 과수 농사를 짓는 농민들은 한순간에 전 자산을 잃어버리고 만다. 수십년 과수 농사를 지으며 일구어낸 터전이 하루아침에 땅에 묻히는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전국 과수원이 화상병으로 타들어 가는데 정부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SPS(동식물위생검역)를 더욱 강화해 검역주권을 바로 세워도 모자랄 판에 검역을 완화하는 논의에 열을 올리고 있다. SPS는 자국민의 건강과 농산물 생산 기반을 보호하는 최소한의 안전조치이며 정부가 할 수 있는 적극적인 조치다. 그런데 CPTPP, IPEF 등 국제 통상 협상 과정에서는 이미 SPS 완화를 기정사실화 하고 있다.

정부에 다음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첫째, 준비는 됐는가? 몰려들어 오는 수입 농산물과 원료에서 병원균과 바이러스를 찾아내고 차단할 인력과 장비, 시스템이 준비돼 있는가? 수입국인 우리가 수출국의 병해충 상황과 생산 시스템을 감시·점검할 수 있는 역량이 준비돼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검역조치 완화는 시기상조요, 어불성설이다.

둘째, 감당할 수 있는가? 작금의 시기에 과수화상병 하나 감당하지 못해 수많은 농민들이 피눈물을 흘리고 있는데 또 다른 병해충이 전염병으로 퍼졌을 때 농업 생산 기반을 지킬 수 있는가? 새로운 전염병을 차단하고 막을 수 있는 역량이 되는가? 그렇지 않다면 검역조치 완화는 시기상조요, 어불성설이다.

새로운 동식물 전염병을 대비할 준비도 안 돼 있고 감당할 수조차 없는 게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지금이라도 모든 통상 협상에서 검역주권을 침해하는 모든 논의를 중단하고 우리 국민의 건강과 농업 생산 기반을 지키기 위한 적극적인 정부의 행동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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