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장을 맛보다㉘] 온천욕 하러 다니던 온양온천의 풍물오일장

  • 입력 2023.07.16 18:00
  • 수정 2023.07.19 16:14
  • 기자명 고은정 제철음식학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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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정 제철음식학교 대표
고은정 제철음식학교 대표

아산으로 통합되기 전의 온양은 왕이 온천을 즐기러 다니던 곳이라 온궁(溫宮)으로 불렸지만 이제는 역사 속의 지명으로 서서히 잊히고 있는 중이다. 수도권 전철 1호선이 지나면서 ‘온양온천’역으로 불리고 있으니 명맥을 유지한다고나 할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온양온천역의 역사 한쪽의 고가다리 아래로 4, 9로 끝나는 날마다 장이 서는데, 그 풍경이 실로 장관이라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

온양온천의 풍물오일장은 다른 지역의 오일장과 크게 다르지 않으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곳에서만 느껴지는 색깔이 있다. 전철이 지나는 고가다리 아래에 서는 비슷한 형태의 춘천오일장은 근처에 대형 주차건물이 있지만 이곳엔 없다. 전철을 이용하지 않고 차를 가져왔다면 주차를 하는 것이 큰 문제가 된다. 나도 주차를 하느라 근처를 몇 바퀴나 돌고나서야 겨우 자리를 잡았다. 장이 서지 않는 날 주차장으로 사용하는 곳에 장이 서기 때문이란다. 춘천오일장에는 비록 고가다리 아래지만 양옆으로 반듯하게 줄지어 있는 건물들이 있다. 옷도 팔고 그릇도 팔고 건어물도 팔고 음식도 있다. 그런데 온양온천의 풍물오일장엔 그런 건물들이 없다. 장을 중심으로 주변에 있는 쇠락한 건물들 유리창엔 임대라 붙여진 글씨들이 많았다. 그래서 가게가 아니라 장터 안에 천막을 치고, 그 아래에 솥을 걸고 음식을 파는 곳이 몇 개 있을 뿐이다. 그래도 근처 식당에서 먹은 뼈해장국은 국물이 진국이었다.

 

전철 고가 아래 주차장 부지에서 열리는 온양장의 전경.
전철 고가 아래 주차장 부지에서 열리는 온양장의 전경.

 

아무튼, 아산(온양)은 천안에 버금가는 오이 생산지다. 특히 배방면이 오이로 유명한데 교육이나 컨설팅을 다니던 때 봤던 오이들이 기억에 남아있다. 장이 서는 날 바로 따서 아직 가시들이 찌를 듯 살아있는 못생긴 B급 오이들을 찾았다. 그러나 아쉽게도 내가 생각하고 찾던 그런 오이는 장터 어디에도 없었다. 그래도 오이지를 꼭 담아야 해서 성에 차지 않는 오이를 한 접 샀다.

아산은 계란을 수출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오일장에 계란이 많이 보인다. 계란의 사촌인 메추리알을 엄청나게 가지고 나오신 분이 계시기에 농장에 가보고 싶다고 하니 안 된단다. 농장은 여주에 있고 메추리는 잘 나오지 않아서 보기 힘들다는 이유로 거절을 하신다. 오일장에 나오는 상품들이 모두 그 지역의 생산품이 아닌 것은 알고 있지만 가끔 이런 상황을 접하면 당황스럽다. 그래도 메추리알은 한 바구니 샀다.

 

온양장에선 다른 장에서 흔히 보기 힘든 돼지파도 만났다.
온양장에선 다른 장에서 흔히 보기 힘든 돼지파도 만났다.

 

자리를 옮긴다. 아직은 마늘이 대세다. 그 옆에 다른 장에서는 만나기 쉽지 않은, 얼핏 보면 쪽파 씨앗 같은 것이 보이는데 마늘처럼 엮어 놓고 판다. 보통 어디서고 쪽파 종자를 엮어 팔지는 않는다. 가까이 가서 자세히 보면 푸른 잎이 안 보이는 ‘돼지파’다. 충남지역, 특히 아산 지역에서는 돼지파의 종자를 잘 보관했다가 김장 때 마늘처럼 다져 넣고 김치를 담근다. 물론 마늘도 다져 넣지만 이곳 분들의 얘기에 의하면 쉽게 무르지 않고 골마지가 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느 해 나도 동료의 어머니께서 농사지어 나눠주신 걸 얻어 김장을 했었다. 그녀의 친정이 아산이라는 걸 기억해낸다.

 

장에 나온 할머니가 오이지를 건네기 위해 포장하고 있다.

 

골마지가 끼지 말아야 하는 김치와는 달리 골마지가 끼면 드디어 익었다 생각하고 먹기 시작하는 여름 음식의 꽃은 오이지다. 오일장의 오이들은 마땅치 않았지만, 오이지를 너무 예쁘게 익혀 들고 나오신 어른이 계셨다. 오이지를 꺼내 파는 손에는 반지와 팔찌가 빛을 받은 오이지와 함께 반짝거렸다. 유치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한 악세서리가 거친 할머니의 손과 묘하게 어울렸다. 나도 돌아가면 오이지를 담글 것이다. 반지 끼고 팔찌 하고 음식 하는 내 모습을 상상하다 실없이 웃는다.

오일장은 빠르게 둘러보고 가는 곳이 아니다. 어슬렁거리며 돌다가 옆에서 물건 사는 사람에게 왜 사는지 물어도 보고, 물건 파시는 분들께 이런저런 질문을 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석 같은 정보를 얻기도 한다. 어슬렁거려야 보이는 것들도 있다. 싸가지고 나오신 도시락을 펼쳐 놓고 서로 더 먹으라고 권하는 손짓의 살랑거림도 그렇고, 웃음소리 뒤에 묻히는 소소한 일상의 대화도 그렇다. 아예 항아리 째 들고 나와 덜어 팔고 있는 된장도 재미나다.

카메라를 들이대면 포즈를 취해주시는 분들이 고맙다. 그렇게 온양온천의 풍물오일장에서의 시간이 흐른다. 돌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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