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어느 지역농협 젊은 이사의 한숨

  • 입력 2023.07.16 18:00
  • 수정 2023.07.18 10:50
  • 기자명 김성보(전남 나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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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보(전남 나주)
김성보(전남 나주)

“와따 형님, 오랜만이요, 엊그제 시청 앞 사거리에서 본께 현수막 들고 홍보하던디 아직도 팔팔하시데요. 안척하고 갈라 했는디 신호가 바꿔부러 말도 못하고 그냥 가부렀소.”

“짜식~ 그래도 큰 소리로 안척하고 가지 그랬냐.”

농민회 후배는 엊그제 트럭을 몰고 가다가 시청 앞 사거리에서 ‘바다야 미안해! 대통령 잘못 뽑아서!’라고 쓰인 현수막을 들고 있는 나를 보며 지나갔던 얘기를 들려주었다.

“그란디 뭣 좀 물어봅시다, 우리농협 조합장이 지난 1월 정기총회에서 부결되었던 우리조합 상임이사제도를 도입하겠다고 이사회 안건으로 다시 올렸는데 어떻게 하면 쓰겄소.”

자초지종은 이러했다. 2022년도 결산정기총회에 올라왔던 부의안건에 상임이사제 도입이 올라왔는데 대의원의 반발로 무산되어 폐기되었다. 그런데, 상반기가 지나자 조합장이 상임이사제도 도입 안건을 다시 올린 것이다. 후배에게 물어보았다. 현 조합장이 재선이냐 물으니니 현재 3선 조합장이라고 말한다.

그러면 그렇지, 3선이면 12년 조합장 임기마치고 다시는 조합장 선거를 나올 수 없다. 하지만 지역농협 정관 개정을 통해 상임이사제도를 도입하게 되면 3선 조합장이 또 다시 출마해 장기 집권할 수 있다.

후배의 얘기를 듣고 있자니 너무나 안타깝고 답답했다. 농협을 개혁하고 조합원을 위해 농협 이사로 역할을 하고 싶은데 조합장의 끈질긴 장기 집권 야욕을 멈추잔 뜻에 동조하는 동지 한사람 꼬시기도 힘들다는 현실에 무력감만 느낀다고 하소연이다.

나도 한때는 농협 이사를 했다. ‘돈 선거’ 없이 농민회 정신으로 헤딩했다. 결과는 턱걸이로 당선되었다. 그때 이후 느꼈다. 의로운 애국의 길, 농민의 길보다 어려운 것이 농협 선거구나.

후배에게 신신당부했다. ‘그래도 자네의 신념이나 생각, 주장을 단념해서는 안 되네. 이사회 회의록에라도 자네 주장을 기록으로 남겨야 하네. 누군가 한 명이라도, 그 사람이 자네여야 한다’, ‘혹여라도 임시대의원회에서 조합장이 힘으로 안건을 통과시키더라도 그 누군가 한 사람인 자네가 꼭 반대 발언을 했으면 하네.’

하지만 후배는 힘겨워했다. 말할 용기가 없다기보다는, 대의원과 조합원들의 반응이 냉담할까봐 홀로 계란으로 바위 치는 자신을 지켜야 하는 고통을 이겨낼 수 있을까하는 두려움이었다.

나는 생각해본다. 농촌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삶이 존재한다. 마을에서는 청년이자 막둥이로, 어쩌다 농협 이사로 조합원을 대변하기 위해, 그리고 농민회 임원으로서 책임을 다하기 위해 내 가정보다 더 열심히 지역사회를 위해 살아간다. 농민의 권리와 농촌의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50대의 농촌청년은 온 힘을 다해 지역일꾼으로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

감투라고 하면 감투일 수 있는 농협 이사는 조합원을 대표해서 의결권을 행사하며 이사진은 조합 경영을 집행하는 집행기구이기도 하다. 그러나 조합장이 또 다른 욕심과 탐욕을 부릴 때 한두 사람의 문제제기는 있을지언정 잘못된 의지를 꺾어 내기는 쉽지 않다. ‘조합장님! 그것은 안돼요, 조합원의 의사와는 무관하요, 조합의 재정에 압박이 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조합원과 대의원이 꼭 있어야 하는데, 이게 쉽지 않다.

2023년 대한민국은 민주주의가 살아있는지 죽었는지 모를 혼란의 시국을 겪고 있다. 국가지도자의 철학과 균형 잡힌 리더십이 필요할 때인데도 불구하고 미국에만 종속되고, 반성 없는 일본을 감싸주며 줏대 없이 나아가는 국가지도자의 횡포에 국민과 국가가 모두 힘들어하고 있다.

나는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라 칭하며 자기 입맛대로 대통령의 통치권을 무소불위로 휘두르는 미친 권력이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 확신한다. 마찬가지로, 조합원을 무시하고 대의원을 각성시키지 않으면서 주는 대로 받으라는 농촌지역 조합장의 횡포와 욕심도 오래가지 못한다.

선량한 이사 한 사람의 포기하지 않는 진정성과 설득력이 결국 무소불위의 권력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조합원도, 농민도, 국민 모두가 자기 권리를 지키기 위해 용기를 내어 소리치길 주저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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