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외국민’의 소박한 소망

  • 입력 2023.06.11 18:00
  • 수정 2023.06.12 06:39
  • 기자명 임선택(충남 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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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예산에 내려온 지 3년, 누군가 물어보면 늘 이야기하는 일화가 하나 있다. 전입신고를 하고 주말을 지나 예산에서 맞이한 첫 월요일 오전 8시 30분경, 동네 이장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동네에 한 명 들어와서 전화했다고, 어디서 왔냐고 물어서 서울 촌놈이라고 대답했다. 다시, 무엇하러 내려왔냐는 질문이 돌아왔고 아무 생각없이 ‘농사’ 지으러 내려왔다고 전달했더니 돌아온 대답이 일품이었다. “미쳤구만.”

한평생 농사지어 살아온 동네다. 그리고 대를 이어 농사를 지어보겠다고 대답한 청년이건만 돌아온 대답은 ‘미쳤구만’이었다. 직접 농사를 짓고 있는 사람들도 미쳤다고 대답하는 농업에 가진 거 하나 없는 놈이 미친것 마냥 뛰어들었다. 글로만 배우던 현실이 나에게 닥쳐온 시간은 길지 않았다. 동네에서 잘 짓지도 않고 밥상의 필수작물도 아닌 고수를 지어 경매시장에 올렸더니 품삯은커녕 대출이자도 벌 수 없는 금액으로 책정됐다. 그날밤 잠을 이루지 못하고 새벽녘에 홀로 밥상에서 술을 마셨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생산부터 운영과 판로까지 모두 내가 마련해서 요술을 부려야 먹고 살 수 있는 직종, 그리고 대출신청과 각종 서류에 적히는 직업란에 찾아볼 수 없는 ‘농업’. 이것이 현실이었다.

그나마 밥상의 필수품목(?)으로 숨 좀 돌려보려 하면 늘 나오는 단어가 있다. 농산물 수입. 가격이 조금만 올라가면 정부와 언론은 마치 가계파탄의 주범인 양 몰아세운다. 생각없이 과잉생산해서 마치 해결할 수 없게 만든 장본인처럼 몰아세우고 소비자들에게 엄청난 부채를 떠안기는 것처럼 몰아세운다.

2022년은 그 정점이지 않았을까 싶다. 쌀값 폭락의 주범도 가계부담의 원인도 마치 농민들이 만든 것처럼 호도를 하더니 생산비 폭등도 농민들 당신이 책임지란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거부하더니 가루쌀이 어떻고 전략작물이 어떻고, 이렇게 듣기 좋은 말로 논에 다른 작물 심으라고 꼬드긴다. 매년 생산량과 소비량의 차이가 20만톤, 그럼에도 외국에서 들여오는 양은 40만8,700톤. 300원을 주장한 세월이 무색하게 아직도 200원대에 머무르고 있는 밥 한 공기 쌀값의 원가는 식당 주인들도 모른다. 계산하고 나오며 이런 이야기를 나누면 화들짝 놀라는 표정에 거짓말은 아닌 듯 싶고 돌아서면 씁쓸하기만 하다.

들녘 이앙기 소리가 요란한 지난 7일, 윤석열 대통령이 충남 부여군 임천면에 온다는 소식이 농민회를 휩쓸었다. 그놈의 가루쌀 모내기를 해보러 온다고 한다. 다들 가서 우리 목소리를 전달해야 하지 않겠냐며, 경찰의 차벽이 있더라도 피켓을 들어야 속시원하겠다며 다들 가자고 목소리를 높인다. 네비게이션이 모 농장 입구로부터 600미터 남았다고 표시를 한 순간 경찰들이 막아선다. 농민들이 주섬주섬 피켓과 현수막을 들고 모인다. 50여명도 안 되는 농민들에 비해 경찰은 족히 100명은 돼 보였다. 그러곤 마을 안쪽으로 몰아세우고 봉고차량을 앞에 세워 아무도 못 보게 막는다. 그러곤 마이크를 들고 당신들은 현재 미신고 집회를 개최하고 있으며 경우에 따라 사법처리하겠다고 떠들어댄다.

우리도 목소리를 높여 마이크에 대고 우리의 요구를 외쳤다. 죽창도 쇠스랑도 어떤 기구도 없이 피켓과 현수막만 들고 있는데 폭도로 몰린 듯한 우리네 모습이 처절하다. 그런 와중에 경찰들이 오토바이와 고급스러운 차량들을 이끌고 지나간다. 트럭 위에서 피켓을 조금이라도 보여보겠다며, 목소리를 높여 우리 소리 조금이라도 더 질러보겠다며 악을 썼다. 10초도 되지 않는 짧은 사이 모든 울분을 토해내겠다며 젖 먹던 힘까지 써가며 악을 질렀다.

듣기나 했을까? 보기나 했을까? 그러곤 다들 때지난 점심밥을 먹으며 한목소리로 이야기한다. 등외국민 신분에서 보통사람으로 거듭나기 위해 오늘도 내일도 투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며, 막걸리 한 잔 마시고 밥 한 숟갈 뜨고 다시 논 갈러, 하우스에 일하러 돌아가는 그 모습이 짠하기만 하다. 한 청년농민은 논 갈다가 급하게 트랙터를 트럭에 싣고 왔더니 그날 오후 내내 경찰들이 따라다녔다고 한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농민들은 물가폭등의 주범이 아니다. 생 각없이 생산 과포화 상태를 만든 장본인도 아니다. 미국 등 강대국의 눈치만 살피며 자국민이 고통받고 죽는 것에는 관심조차 없는 위정자들과 정부가 근본 원인이다. 잡초는 삭초제근해야 한다고 했던가. 등외국민 농민들이 바라는 것은 귀족 같은 삶이 아니다. 보통 국민으로 대접받는 세상, 일한만큼 인정받고 속 시원히 걸치는 막걸리 한 잔, 그날을 기다리며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트랙터에 시동을 걸고 장화를 신고 아스팔트와 정치판에서도 농사를 지어보려 길거리를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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