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로컬푸드와 푸드테크, 공존할 수 있을까?

  • 입력 2023.06.18 18:00
  • 수정 2023.06.19 06:36
  • 기자명 김덕수(강원 춘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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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수(강원 춘천)
김덕수(강원 춘천)

오뉴월에 된서리라고 하더니만, 초여름 날씨에 접어든 6월 초 어느 날 이웃 화천군에 지름 2cm에 이르는 커다란 우박이 내렸다. 이제 막 자리를 잡아 10여일 뒤 첫 수확을 기다리고 있던 오이, 호박 등이 그야말로 초토화되고 말았다. 그뿐만이 아니다. 한창 봉지 씌우기를 하고 있던 복숭아, 사과 등 과수농가들은 우박피해로 인해 한해농사를 정리해야 한다고 푸념하고 있다.

몇해 전부터 간간이 나타나던 기후위기의 징조가 이렇게 농민들에게 다가왔다. 기후위기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 농민들은 앞으로 매년 농사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기후위기를 초래한 주범이 탐욕스런 자본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오로지 이윤추구를 위해 환경을 파괴하고 난개발을 통해 상품을 생산해 온 자본주의 구조에서 기후위기는 예견된 일이었다. 문제는 이윤을 일부 자본가들만이 고스란히 빨아들이고 있는데, 그 피해는 고스란히 개발도상국, 그리고 민중들이 받고 있다는 것이다.

언제부터 지구환경을 걱정했는지 몰라도 이제야 탄소중립선언이니, RE100 재생에너지 사용이니 하면서, 초국적 기업들이 앞다퉈 기후위기 지구환경 살리기에 나서고 있다.

우리나라의 농업구조 또한 눈에 띄지는 않게 조금씩 변하고 있다. WTO 개방농정 아래 글로벌화를 명목으로 규모화·단작화·상업화의 가치기준에 맞춰 정부가 대규모로 지원하고, 일부 농민들은 그에 편승해 한국농업을 선도하는 모양새를 갖춰왔다. 하지만 30여년이 지난 지금 되돌아보니, 그야말로 일장춘몽이었다. 화학비료, 정체불명의 농약 등이 대량 살포되면서 땅은 점점 황폐화되고, 농업은 생명산업이 아닌 투기로 변질돼 왔다.

20여년 전부터 우리나라에 도입되기 시작한 ‘로컬푸드 운동’은 농민운동과 함께 이런 흐름을 조금이나마 늦추는 데 앞장선 주역이다. 처음에는 친환경농가들로부터 시작됐으나, 이제는 전국적으로 지자체와 결합하면서 많은 지역에서 로컬푸드가 확산돼가고 있다. 심지어 농협 하나로마트에서도 로컬푸드 매장을 따로 운영하고 있다. 로컬푸드 운동의 성과가 비약적으로 성장한 것만은 분명하다.

로컬푸드가 규모화·상업화·단작화의 농업구조를 다품종 소량생산, 땅과 환경을 살리는 농업으로 바꿀 수 있을지 아직은 확신할 순 없지만, 그 흐름에는 농민운동 진영도 함께해야 할 것 같다. 또한 기존 농업에서 배제되어 있는 여성농민들이 생산의 주체로 우뚝 설 수 있는 여건도 로컬푸드 운동이 제공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흐름에 다시 먹구름이 낀다.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 소위 푸드테크 산업이 대두하고 있다. 먹거리 산업에 첨단 기술을 접목해 생산성을 높이겠다는 기조이다. 이에 로컬푸드 운동에 동참했던 일부 지자체에서도 푸드테크 산업을 농업의 신성장동력으로 집중 홍보하는 중이다.

푸드테크와 지역농업이 과연 상생할 수 있을까? 자본의 투자를 전제로 하는 푸드테크 산업은 농업의 신성장동력이 아닌, 대기업의 신성장동력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결과는 뻔하다. 10여년 전부터 호시탐탐 노려오던 대기업의 농업 진출의 길을 터주는 꼴이다.

로컬푸드 운동으로 규모화·상업화를 지양하고 과거 농업의 전통을 살려내는 방향전환을 이제 막 시도하고 있는데, 푸드테크가 이러한 농업변화를 가로막고 대기업의 이익, 즉 자본의 농업침탈을 가속화해 나가는 전략산업이 될 것 같아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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