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지옥을 천국으로 만들기 위해

  • 입력 2023.07.02 18:00
  • 수정 2023.07.02 21:01
  • 기자명 임은주(경기 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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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은주(경기 여주)
임은주(경기 여주)

하지가 지나고 장마가 온다니 급한 마음에 토요일, 일요일 감자를 캤습니다. 다 못 캔 감자는 비가 잠깐 그치는 틈을 타 캐야 합니다. 심을 때의 한 상자가 캘 때는 스무 상자도 넘게 나옵니다. 감자는 잘 되었는데 그 감자들을 캐고 고르고 담고 하다 보니 잘 돼도 너무 잘 됐다는 약간의 불만이 나오고, 급기야 다 먹지도 못하는데 잔 것은 담지 말고 버리자는 아들의 제안도 나옵니다. 그래, 저거 주워가봐야 먹지도 않을 텐데 하면서도 아들 몰래 잔 감자들을 통에 담습니다.

후덥지근한 날씨에 감자를 캐고 들어와 씻고 밥 차리고 할 일들을 하다보면 창밖의 시원한 바람에 감자 캐고 나르던 고단함이 식어갑니다. 잘 때까지는 창문을 열고 있다 잘 때 닫고 새벽에 일어나 창문을 열면 들어오는 바람에 상쾌함을 만끽합니다. ‘아, 시원하다. 좋다~ 그런데 좀 있으면 이 시원함도 못 느끼겠지? 창문을 열 때 맞이하는 상쾌함도 며칠이면 끝나겠지? 그래도 즐길 수 있을 때까지는 즐겨보자’하는 생각이 듭니다.

경기 여주시 북내면 외룡리, 우리 마을에 지어진 SK가스화력발전소가 4월부터 시험 가동을 하면서 희고 검은 연기가 하늘에 치솟고 저주파소음이 귓속을 파고 들어오며 매캐한 기름 냄새가 진동을 하고 어느 날은 폭발음이 지속돼 소방차와 경찰차가 출동하기도 하였습니다. 조용히 살던 지역주민들에게는 너무나 힘든 일에 몇 차례 집회를 했습니다. 그 와중 5월에는 경기보건환경연구원이라 적힌 버스가 마을회관 앞에서 일주일 정도 대기를 측정한다고 머물렀고, 6월 7일에는 여주시의회에서 행정감사로 발전소를 방문하였습니다. 발전소 방문한다는 소식을 듣고 지역주민으로 같이 참석하고자 버스를 가로막고 소리소리 질러가며 싸워 겨우 들어갔는데 청정하고 무해하다는 이야기를 반복해서 들었고 냄새가 난다는 이야기를 하는 주민을 나무라는 태도에 어이가 없었습니다. 천연가스발전소에서는 검은 연기가 나올 수 없고 폭발음도 발전소가 안전하게 가동되도록 문제 상황을 체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현상이고 이제는 문제 상황도 다 잡아서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6월 8일. 이날부터는 신기하게도 발전소 돌아갈 때 났던 매캐한 기름 냄새도 안 나고 저주파 소음, 굉음도 안 들리고 연기도 눈에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뭔 일이지? 싶은 마음에 다른 분들에게도 확인을 하며 이유를 추측해보니 시험 가동을 하면서 시행착오들을 거쳤고 준공 때까지 잠시 멈춘 것 같습니다. 바로 옆에서 밤새도록 트랙터 로타리 치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고 아스팔트 도로 깔 때보다 더 심한 기름 냄새가 났고 굴뚝에서 굵디굵은 연기가 치솟았는데 갑자기 뚝 끊기니 그야말로 살 것 같았습니다. 천국에서 조용히 살다 아비규환의 지옥에 떨어졌는데 다시 천국에 온 느낌이 이런 것일까 싶기도 하였습니다. 있을 때 잘하라고 했는데 천국에 살면서 천국을 몰랐구나 하는 반성도 되었습니다. 창문을 열고 불어오는 바람에 행복했고 더욱 커진 새소리에 상쾌했습니다. 그렇게 불안한 행복을 느끼던 중 SK가스화력발전소의 준공일이 6월 30일이라는 사실을 접했습니다. 지옥을 겪어 보고 천국으로 올라왔는데 다시 지옥으로 떨어진다는 사실을 접한 것입니다.

지옥으로 떨어지지 않으려면 별 수 있겠습니까? 이윤추구를 위해 지역주민의 생존권, 건강권, 환경권, 재산권을 갉아먹는 SK 가스화력발전소를 규탄해야겠지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중앙정부가, 지방정부가 그 역할을 다하도록 요구해야겠지요. 추경예산으로 7월부터 12월까지 매월 1회 대기 측정을 실시해 유의미한 샘플을 만들어 관리를 철저히 하겠다는 여주시청의 계획에 묻습니다. “바람에 따라 연기의 방향이 달라지는데 한 군데서 고작 월 1회 측정으로 유의미한 샘플이 나옵니까?” 사방팔방에 상시대기측정기를 설치해 문제가 생기면 발전소 가동중단을 산자부에 요청하라고 외치겠습니다. 냄새의 원인을 조사하고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큰 울림으로 주민들의 건강한 생활을 해치는 굉음에 대한 대책도 촉구하렵니다. 아, 참으로 할 일이 많습니다. 그러나 지옥의 맛을 본 저는 지옥을 천국으로 만들기 위해 애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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