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우리가 더 잘한다

  • 입력 2023.07.09 18:00
  • 기자명 금창영(충남 홍성)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그도 열심히 살고 있을 것이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논·밭을 돌면서 농사짓다보면 오랜만에 가게 되는 밭이 있다. 인간의 접근이 쉽지 않은 그런 밭에서 짐승 피해를 막기 위한 갖가지 방법은 대부분 실패한다. 고라니가 다녀간 후, 줄기만 남은 콩대를 확인하면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민다. 그럴 때면 한숨 돌리고, 전화기를 꺼내 여기저기 전화를 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농부와 농부가 아닌 사람들의 반응이 나뉜다. 농부가 아닌 사람들은 어디선가 들은 이야기들을 나열하지만, 농부들은 우선 ‘힘들고 속상하겠다. 힘내라’는 말부터 한다. 그렇게 우리는 연결된 존재이다. 그런 이들 중에 최근에 만나 생각날 때마다 마음이 따듯해지는 이가 있다.

 

“국내 농기계 업체에 대한 통로를 간절히 아울러 긴급히 청합니다.”

그에게서 온 문자의 제목이다. 제목을 읽고, 나는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물이 났다. 곡성군농민회의 ‘탄소정의농사위원회’가 지난 4년간 무경운 논농사를 시도했다. 그 경험을 통해 무경운 국산이앙기를 개발하려 한다. 이에 주변 농기계업체와의 통로를 요청하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우리나라 농업의 현실과 나아갈 바를 알려주는 상징적인 일이라 생각한다.

 

속이거나 모르거나

사실 농민들은 잘 알면서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실이 있다. 바로 농림축산식품부가 농민의 편이 아니라는 것이다. 농식품부 공무원들은 국민들과 본인을 위해서 일한다. 당연히 농민보다 국민들이 우선한다. 양곡관리법으로 나라가 시끄러울 때 대통령과 국회의원들은 쌀을 국가가 책임지는 것이 자유시장원리에 어긋난다고 말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나 되는 이가 농산물이 자유시장원리로 돌아간다고 생각하고 있단 말인가? 이 정도로 바보란 말인가? 작년 3분기에 양파값이 두 배로 오르자 본인들이 나서 평년에 비해 다섯 배나 많은 양파를 수입했다. 농업과 관련한 수치 중에 좋아지는 것이 없어도 그들은 그 자리에 있다. 그들이 좋아하는 자유경쟁논리라면 진작에 퇴출되었어야 한다. 2010년을 전후해서 ‘역량강화’란 명목 하에 몇백억원씩 쓰고 있지만 정작 역량강화가 필요한 이는 농민들이 아니라 본인들이라는 것을 모른다.

지난 4월에 발표된 ‘탄소중립녹색성장 국가전략 및 제1차 국가 기본계획’을 보면 한숨이 나온다. 3,000만평의 스마트팜을 짓고, 저메탄 사료와 하이브리드 어선을 개발하는 것이 정말 지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리고 무엇보다 그 대책이란 것을 가지고 현장에서 직접 실행해야 하는 농민들과 대화한 적은 있는가?

 

우리가 더 잘한다

금융감독원에서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기 위해 시중 은행담당자를 모아 TF팀을 만들었다. 이들은 6개월간 매일 만나 논의를 했다. 그러고도 운영과정에서 생기는 문제를 조율하기위해 일주일에 한 번씩 5년간 만났다. 영국은 농업과 관련한 법률을 만들기 위해 3년간 농민들과 대화했고, 독일은 5년간 농민들과 만나 ‘독일농업의 미래위원회 최종보고서’를 발간했다. 그런데, 왜 우리나라 농식품부는 농민과 대화하지 않을까? 간단하다. 농식품부가 보기에 농민들은 역량을 강화해야 하는 존재이지, 대화의 상대는 아니다.

네덜란드에는 프리지아 북부지역협동조합이라는 곳이 있다. 이곳의 농민들은 선조들이 심은 생울타리를 보존하기 위해 조직을 만들고, 정부와 협상을 시작했다. 그들이 만든 헌장에는 지역사회를 우선하고, 미래를 돌본다는 말도 있지만 ‘우리가 더 잘한다’는 말이 있다.

익숙하지 않지만, 원래대로라면 농민들이 모여 무언가를 시도하면, 전문가들이 그것을 세련되게 만들고, 관료들이 제도로 만들어야 한다. 그게 정석이다. 그러니 지금까지는 틀린 방식이었다. 그러니 농민들이 조직을 만들고, 그간의 경험을 통해 농기계회사와 연결하려는 시도는 얼마나 가슴 벅차고, 아름다운가?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