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 국내산 먹겠다는 '가치·책임소비' 점점 줄어든다

농업 문제, 도시에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입력 2023.07.02 18:00
  • 수정 2023.07.05 14:51
  • 기자명 권순창·한우준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농정신문 권순창·한우준 기자]

한국농정이 의뢰한 설문조사에 응답한 서울시민 중 약 80%는 농민들이 요구하는 `공깃밥 한 공기(1,000원)당 쌀 원가 300원'에 대해 수용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열린 ‘농부시장 마르쉐@혜화’를 찾은 시민들이 농민들과 대화를 나누며 장을 보고 있다. 한승호 기자
한국농정이 의뢰한 설문조사에 응답한 서울시민 중 약 80%는 농민들이 요구하는 `공깃밥 한 공기(1,000원)당 쌀 원가 300원'에 대해 수용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열린 ‘농부시장 마르쉐@혜화’를 찾은 시민들이 농민들과 대화를 나누며 장을 보고 있다. 한승호 기자

농촌 주민과 농업 관련 전문가·언론들은 식상하다 할 만큼 일상적으로 농업·농촌 문제와 부딪히고 있지만 도시민들에겐 좀체 그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요행히 농촌에 밀접한 연고가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단편적·표면적인 정보들만 보면서 농촌을 이해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 사회 구성원의 절대다수는 도시민이며, 도시민들의 농촌 인식은 농촌의 지속성 보장과 농정의 효율적 설계에 알게 모르게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요소다. 본지는 농업·농촌 문제를 바라보는 도시민들의 시각을 살펴보기 위해 기존의 설문조사 결과를 분석하고, 나아가 본지 자체적으로 설문조사를 기획·진행해 기존보다 좀 더 섬세한 분석을 시도했다.

 

분명한 도시민-농민 간 인식 차이

옅어지는 ‘국내산 책임소비’ 관념

농업·농촌에 대한 도시민의 인식을 들여다볼 수 있는 가장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조사는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매년 발표하는 <농업·농촌에 대한 국민의식 조사>다. 2022년 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농업·농촌을 바라보는 도시민과 농민의 인식이 분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당연한 결과일 수 있지만 농업·농촌에 대한 애착심부터가 확실히 갈린다. 농민의 경우 애착심이 ‘많다(매우 많다, 대체로 많다)’는 답변이 70.6%, ‘적다(별로 없다, 전혀 없다)’는 답변이 5.2%로 긍정 답변이 압도적이었지만, 도시민의 경우 ‘많다’ 32.1%, `적다' 29.3%로 양쪽이 대등했다.

현실적인 문제로 들어가도 비슷한 양상이다. 현재 농촌지역 경제상황에 대해 농민은 76.1%가 ‘안좋다’, 2.7%가 ‘좋다’고 답한 반면 도시민은 이번에도 ‘안좋다’ 35.3%, ‘좋다’ 20.7%로 시각이 갈렸다. 농업·농촌에 대한 정부 지원은 농민은 73.1%가 ‘불충분하다’고 답했고 도시민은 21.6%가 ‘충분하다’, 26.7%가 ‘불충분하다’고 답했다. 10년 후 한국농업의 미래 전망에 대해선 농민 20.8%, 도시민 31.5%가 ‘희망적’, 농민 52.5%, 도시민 22%가 ‘비관적’으로 내다봤다. 농업·농촌에 대한 도시민들의 전반적 문제인식이 당사자인 농민들이 마주하는 것보다는 훨씬 가볍다는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도시민들도 막연하게나마 농업·농촌의 중요성에는 공감하고 있다. 도시민만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농업·농촌의 공익적 기능에 대해 63%가 ‘많다’고 답했고 ‘없다’는 답변은 6.3%에 불과했다. 또 농업·농촌의 공익적 기능 유지를 위해 세금을 추가 부담할 수 있다는 응답자가 65.7%(반대 23.9%)였으며 농촌 복지 예산을 늘려야 한다는 응답자도 46.5%(반대 8.8%)에 달했다. ‘우리의 미래를 위한 우리나라 농업·농촌의 중요성’에는 93.6%가 ‘중요하다’고 공감했다.

다만 어디까지나 ‘막연한 공감’의 한계는 있는 것으로 보인다. ‘평소 농업정책 또는 농업·농촌 문제 관심도’에 대해 도시민의 30.3%가 ‘많다’, 32.8%가 ‘없다’고 답했으며, ‘농업정책 또는 농업·농촌 문제와 나와의 관련성’에는 27.5%가 ‘많다’, 34%가 ‘없다’고 답했다. 34% 중 관련이 ‘전혀 없다’는 응답도 6.5%나 된다. 귀농·귀촌 의향은 37.2%가 ‘있다’고 답했는데, 2006년 71.3%에서 꾸준히 하락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국내 농업·농촌 존속을 위한 국산 농산물 ‘책임소비’ 관념도 옅어지는 추세다. 우리 농산물 가격이 수입산에 비해 훨씬 비쌀 경우 ‘수입산을 구입할 것’이라는 응답이 40.4%, ‘국산을 구입할 것’이라는 응답이 28.6%인데, 2010년 조사 결과(수입산 28.3%, 국산 45.1%)와 거의 정확하게 반전된 수치다.

국산 농산물에 대한 신뢰도 자체는 높은 편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2022 식품소비행태조사>에 의하면 수입식품 안전성에 대한 소비자들의 평점은 대체로 5점 만점에 2점대다. ‘보통’ 수준인 3점을 넘는 건 호주산 쇠고기(3.03)와 과일류(3.02)뿐, 채소류(2.9)를 비롯한 대다수 품목이 2점대고 일본산 수산물은 1.83점이다. 반면 국산식품 안전성 평점은 과일류 4.13, 채소류 4.11 등 모두 4점대 내지 3점대 후반이다.

문제는 경제적 부담이다. ‘밥상물가’는 실제 가계부담에 비해 소비자들의 체감이 유독 큰 요인이다. 동 조사에서 80% 이상의 응답자들이 전년대비 체감 장바구니 물가가 상승했다고 답했으며 이는 매년 똑같이 되풀이되는 응답이다. 기본적으로 국산을 신뢰하는 경향은 있지만, 수입산의 가격을 100으로 봤을 때 소비자들이 지불할 수 있는 국산 가격은 농산물·수산물 112.9, 축산물 113.8 수준으로 집계됐다.

 

 

열 중 넷은 1년에 한 번도 농촌 안 가

`농업인력 부족'은 인지 수준 높지만

`농지 투기' 제한은 45%만 찬성해

<한국농정>은 도시 소비자의 인식 수준을 보다 세밀하게 따져보기 위해 직접 설문을 진행했다. 그래서 소비자 인식을 구체적으로 엿볼 수 있는 몇 가지 대표 주제를 정하고, 여기에 각종 사건이나 정쟁으로 인해 도시에서도 익숙할 농업 의제들을 주로 연계해 질문을 선정했다. 설문은 온라인을 통해 20대 이상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했고, 대상자의 거주지는 도시민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 관내 농촌 지역이 없는 서울로 한정했으며, 소득 수준을 함께 물었다.

우선 친지 방문이나 농산물 직구입, 영농체험, 농촌민박여행 등 그 어떤 이유로든 1년에 최소 한 번이라도 읍·면 지역을 간다고 응답한 사람은 열 명 중 여섯 명이었다. 나머지 넷은 대개 1년에 단 한 차례도 농촌의 풍경과 생활상을 마주하지 않는 셈이다. 농촌을 1년에 몇 번이나 방문하느냐는 질문에 ‘대개 방문하지 않는다’라고 대답한 비율은 38.2%, 다음으로는 연 1~2회가 35.6%로 가장 많았고, 연 3~4회(16.1%), 연 5~6회(6.6%), 거의 매달(3.5%) 순이었다.

최근 대외여건의 급격한 변화로 인해 물가 상승이 지속되고 있는 점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 시점 서울시민들의 식재료 물가에 대한 인식은 어떨까? 가계지출 중 농산물 구입비용의 부담이 크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그렇다는 응답자와 아니라는 응답자의 비율은 각각 42.1%와 41.6%로 거의 동수를 기록했다.

‘국내 농산물’로 범위를 한정하게 되면 부담을 나타내는 비율은 대폭 상승했다. 조사에 응답한 소비자 열 명 중 여덟(80.5%)은 국내 식재료 물가에 대해 ‘자주 비싸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싸지 않다고 생각하는 이들의 비중은 3.2%에 불과했다. 가격과 무관히 국내산과 수입산 중 선호도에 따라 선택한다고 대답한 이들은 16.3%였다.

비싸다고 생각하는 이들의 소비행태를 ‘그럼에도’ 국내산을 구매하는 이들과 수입산을 적극적으로 고려하는 이들로 나눴다. 그 결과 이들 중 약 70%는 그래도 품질이나 안전성을 생각해 되도록 국내산을 구매한다고 답해, 여기서도 국내산 농산물의 높은 신뢰도를 확인할 수 있었다. 나머지 30%는 수입산으로 대체가 가능한 경우 수입산을 구매한다고 답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간 개전의 영향으로 정부와 정당들이 하나같이 ‘식량주권’을 외치기 시작했고, 그 모습이 매체를 통해 전파되면서 식량의 자급 가능성이 범국민적인 관심사로 자리 잡았다. 그러면 현재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 즉 사료용을 제외하고 국내에서 소비되는 곡물의 국내 생산 비율은 얼마라 가늠하고 있을까? 40~50%라고 대답해 식량자급률을 정확한 수치(지난해 기준 44.4%)에 가깝게 인지하고 있는 비율은 30.6%였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 부동산 투기 사태로 인해 널리 알려진 비농업인의 농지투기 문제에 대해선 엄격하게 제한해야 한다는 응답이 45.3%에 그쳤다.

현재 농업·농촌·농민이 겪는 문제 중 가장 심각하다 여기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61.5% 응답자가 ‘농업인력 부족’을 골라 해당 사안의 인지도 및 공감대 형성 수준이 상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21.5%는 ‘의료·교육·문화 등 열악한 사회인프라’, 11.5%는 ‘농가부채 증가’, 4.9%는 ‘수입농산물 범람’을 선택했다. 연이어 ‘농촌소멸’이 초래할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라 생각하느냔 질문엔 ‘식량 자급기반 붕괴(41.8%)’와 ‘지역 불균형 발전의 가속화(35.4%)’가 쌍벽을 이뤘다.

마지막으로 최근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권 행사로 인해 국가적 의제로 떠올랐던 ‘양곡관리법’과 관련해 쌀의 적정 원가는 얼마가 적당할지를 물었다. 쌀 생산농가들이 공깃밥 한 공기(1,000원) 당 300원 수준의 쌀 원가를 원하는 것에 대해 40.8%가 ‘300원이면 적정하다’고 답했으며, 또 그만큼(39.7%)은 ‘300원도 부족하다’고 답해 약 80%의 응답자는 밥 한공기 300원의 원가를 수용할 의사가 있음을 나타냈다. ‘300원도 과도하다’고 응답한 비율은 19.5%에 불과했다.

 

젊을수록 유대감·관심도 낮아져

응답을 연령별로 살펴본 결과 나타나는 대비가 선명하다. 전반적으로 젊은 층일수록 농촌을 향한 유대감이나 자급에 대한 관심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는데, 특히 현 2030세대의 경우 농업의 보존이나 식량자급의 가치를 크게 중요시 하지 않는 경향이 엿보인다.

우선 비농업인의 농지투기를 문제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50대 중에선 56.4%에 달한 반면, 연령이 낮아질수록 점차 비중이 낮아져 20대에서는 26.3%에 불과했다. 쌀 가격에 대한 생각 역시 ‘300원이 과도하다’고 응답한 비율이 20대에서만 유일하게 30%에 육박했다.

‘대체 가능한 경우 수입산 식재료를 구매한다’고 대답한 비중도 40대와 50대에서 각각 18.7%·22.3%에 그친 반면 20대와 30대에서는 각각 28.8%·33.7%를 기록했다. 다만 20대의 경우 국내산 식재료 가격에 대한 저항은 소득의 영향도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40대와 50대의 경우 응답자의 소득별 비중이 15~20% 사이로 고르게 분포된 반면 20대는 2,000만원 미만의 비중이 36.3%, 2,000만~3,500만원의 비중도 41.3%나 됐다.

30대의 경우는 또 다르게, 응답자들은 3,500만원에서 5,000만원의 소득 비중이 가장 높았음에도(34.6%) 수입산 식재료를 구매한다고 대답한 비율이 가장 높았다. 이를 종합해 추론하면 향후 소비자의 주축이 될 현재의 20대·30대는 소득이 연령대 평균소득 수준 혹은 그 이상으로 높아지더라도 국산 농산물의 가치에 크게 투자하지 않고자 하는 이들이 더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한편 ‘잘 모르겠다’가 선택지로 존재하는 문항의 경우, 젊은 층일수록 선택비율이 크게 높아지는데 이는 해당 연령대의 낮은 관심도가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예컨대 농산물 구입 비용에 대한 부담을 판단하는 문항에서 50대 이상 응답자의 경우 ‘잘 모르겠다’는 8.3%에 그친 반면 연령층이 낮아질수록 응답비율이 높아져 20대의 경우 30%에 육박했다. 비농업인의 농지소유 문제 역시 20대나 30대는 판단을 내리지 못한 비율이 각각 37.5%와 33.3%에 달한 반면, 50대에서는 16%에 그쳤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